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분수(分數)- 2013. 5. 16.

jaykim1953 2013. 5. 20. 09:19

 

지난 주말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습니다. 입에 올리기조차 낯 뜨거운 50대 후반의 고위직 인사가 국가원수의 해외 방문에 동행하여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내용이야 각종 언론 매체에 자세히 보도되었으니 저보다도 독자분들이 더 상세히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치 않게 주위 분에게서 재미 있는 정보를 하나 들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불과 7~8개월 전에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이 극적으로 아이러니컬하다는 것입니다. 책 제목은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를 망치는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오히려 국민을 탓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 가운데 분수(分數)를 알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이야기를 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라고 탓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과거에도 적잖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초반 소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학생들이 군부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하며 데모를 하였습니다. 그 때 최고통치권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였습니다. ‘국민 각자가 자기가 맡은 본연의 임무와 책임에 충실하여 본업으로 돌아가기를…’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학생들은 본연의 책임과 임무인 학업에 열중하고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돌아서서 비웃었습니다. 자기 자신부터 군인으로서의 임무와 책임에 충실할 것이지 정권을 장악하겠다고 나서서 공포 정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의 일입니다. 국내 은행 가운데 한 곳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고, 당시의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행장을 추대하기 위하여 행장추천위원회가 나섰습니다. 그 때에 추천된 인물 가운데 정부의 고위층 인사와 연이 닿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가장 강력한 행장 후보로 알려졌습니다. 행장추천위원회에서는 후보자들을 한 사람씩 모두 면접을 하였습니다. 문제의 강력한 행장 후보를 인터뷰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행장추천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강력한 행장 후보의 경력 가운데에 금융 분야의 경력이 전혀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질문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금융 분야의 경력이 전무합니다. 은행을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강력한 행장 후보의 답은, ‘저는 지난 20여년간을 은행의 고객으로서 은행 업무에 관심을 갖고 지켜 보았습니다. 저의 인격과 학식으로 은행경영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행장추천위원 한 분이 혼잣말을 하였답니다. ‘이 사람은 20여년간 환자로 병원을 드나들면 의사도 할 수 있겠네…’

이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거래를 정치의 잣대로 재단하거나 평가한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2의 지역 금융기관을 표방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지방은행들, 월남한 이북출신의 동포들의 자본을 공적인 금융기관으로 흡수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은행들정부 주도로 설립되었던 이러저러한 여러 은행들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다시 정부가 나서서 기존의 금융기관에 부실 은행을 인수시키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하였습니다. 피인수 금융기관에 대한 실사, 평가 등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정부에서 정하여준 금융기관이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2008년의 세계적인 금융 위기 때 우리나라의 산업은행이 쓰러져 가는 리먼브러더스 (Lehman Brothers)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 때에 정치권에서 나서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하며 무릎을 꿇려 앉혔습니다. (관련기사: 2008. 9. 20. 문화일보_홍준표) 우리나라의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여서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인수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실사 평가에 따른 가치와 비교하여 보아야 합니다. 인수가격이 충분히 싸다면 인수를 신중하게 고려해 볼 만 한 것입니다. 가격이 비싸다면 당연히 재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비판하였던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발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인수를 계획하였던 책임자는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한국일보_2009_11_민유성) 제 생각도 정치권의 생각과는 많이 다릅니다. 가격이 맞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격만 맞는다면 그 당시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함으로써 큰 돈 들이지 않고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투자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금융계에는 금융을 쉽게 보는 풍토가 남아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대형 금융지주회사, 금융기관의 CEO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인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대학 교수, 총장, 정치권 관련 인물 등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고책임자로 임명 되는 사람 가운데도 전문 금융인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전문 금융인 출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훌륭한 경영성과를 올릴 수 있는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경영은 전문 금융인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順理)입니다. 금융기관의 경영을 정치하듯 하여서도 안 되고, 학생들 가르치듯 하여서도 안 됩니다. 식품 영양학 교수가 만든 음식은 영양면에서는 훌륭할 수 있으나 음식으로서의 상품성에서는 전문 쉐프 (Chef)가 만든 음식보다 뛰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문 금융인이 아닌 사람 가운데에서 뛰어난 경영 실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요행수를 바라기 보다는 금융을 전문으로 하고 금융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금융기관을 경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융기관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경영 책임자를 발견한다면 감독기관과 주주들이 부실 경영을 조사하여 책임자를 적절히 징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임명 과정에 관여하였던 사람들도 함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마치 정권의 전리품인양 나누어 주고, 금융을 전문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언제까지나 후진성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 빨리 전문 금융인들이 최고책임자가 되어 금융기관다운 금융기관의 운영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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