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잊고 싶은 기억- 2013. 12. 27.

jaykim1953 2013. 12. 27. 10:42

 

 

지난 월요일 아침 (미국 시간 일요일 저녁) 월 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의 머릿기사에 이런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Unwanted Memories Erased in Electroconvulsive Therapy Experiment’ (관련기사: wsj-12/22/2013_ topstories) 우리 말로 옮기면 전기충격요법 실험으로 원치 않는 기억을 지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충격에 의하여 사람의 뇌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이러한 방법은 후에 의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신적인 충격이나 심리장애, 약물중독 (mental trauma, psychiatric disorders and drug addiction) 등의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 것 뇌에서 지워 버린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섬찟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우고 싶은,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저희 학교는 한 반에 학생수가 100명에 육박하였고, 한 학년에 약 20반이 있었습니다. 워낙 학생 숫자가 많다 보니 졸업식을 하면서 졸업장을 각 개인에게 주지 못하고 각 반의 대표가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장을 받고 나중에 교실로 장소를 옮겨 개별적으로 담임선생님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에서 저희 반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것은 반장이었던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국내 최고의 중학교라고 하는 경기중학교에 저희 반에서 4명이 지원하여 둘은 붙고 둘은 떨어졌습니다. 졸업식에서 저희 반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친구는 경기중학교에 합격한 친구였습니다. 다른 반은 모두 반장이 대표로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았으나 저희 반만은 반장이 아닌 학생이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저의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졸업식 전 날 제게 전화를 하여 내일 졸업식이 10 30분이니 그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담임선생님이 알려준 시간 보다 조금 일찍 10 10분쯤에 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은 이미 10시에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담임선생님은 아마도 졸업장 수여가 끝난 다음에 제가 나타나기를 원하였던 모양입니다. 저희 반은 6학년 3반이어서 졸업장 수여가 비교적 일찍 진행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담임선생님 의도보다 일찍 도착하여서 졸업장 수여 순서를 모두 지켜 보았습니다. 제가 10 30분에 맞춰 갔더라면 졸업장 수여 순서를 보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저는 졸업식 내내 다른 반 반장들이 단상에 올라가 대표로 졸업장을 받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저만 유일하게 반장이면서도 대표로 졸업장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비교육적이고 유치한 처사였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저희 반 대표로 졸업장을 받은 아이의 어머니가 치맛바람을 일으켜 자기의 아들이 반대표로 졸업장을 받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반장인 저를 졸업식에 늦게 참석하도록 일을 꾸민 것은 담임선생님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제게는 정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어렸을 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습니다. 또 내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잊어서는  되는 기억들도 있습니다특히나 금융업을 영위하는  있어서는 잊지 말아야  것들이 있습니다.

 

신용평가를 하는 데 있어서 과거의 기록들은 매우 중요한 데이터 베이스입니다. 과거에 연체, 미납 등의 기록이 있는지 여부는 신용 정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 자료입니다.

 

금년 1 25일 제가 쓴 금요일 모닝커피- Let it be-에서도 언급하였던 내용입니다. (관련 링크: 금요일모닝커피_Let it be_2013/1/25) 지난 2001년에 정부는 99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의 기록들을 일괄 삭제하도록 모든 금융기관에 명령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연합 2001. 4.20. 신용불량자 99만명)

 

이 조치는 금융 산업의 기본을 뿌리째 흔드는 조치였습니다. 신용불량자의 기록을 없앤다고 하여서 신용불량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용불량자 기록은 각 금융기관이 계속 보관하고 업데이트하여야 합니다. 금융기관은 고객의 신용 상태에 따라 신용도가 좋은 소비자를 우대합니다. 그리고 신용상태가 안 좋은 고객에게 대출을 하게 되면 금액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출 금리도 상대적으로 높게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실도 줄일 수가 있고 부실에 따른 비용도 충당하게 되어 정상적인 금융 비즈니스가 가능합니다. 선의의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신용불량자에게는 보다 높은 금융비용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상적인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하여서는 신용불량자의 기록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신용불량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선의의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여수신(與受信)은 금융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용을 주고 받는 사업입니다. 신용을 주고 받을 만한 상대방을 제대로 찾아내고 걸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에 신용을 제공하였다가(주었다가) 돌려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그러한 상대방은 잘 기억하여 두었다가 다시는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울 수도 있는 세상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을 지울 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지워야 할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도 있습니다.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한 해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하는 연말입니다. 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도 있겠지만, 이런 기억들을 전기 충격으로 지워버리기 보다는 넓은 아량으로 덮어 두고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더 많이, 더 오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좀 더 밝고 좋은 글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