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74억 원- 2019. 9. 20.

jaykim1953 2019. 9. 20. 14:43

지난 한 달 여 기간 동안 국내 뉴스 가운데 가장 뜨거운 뉴스는 법무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검증이었습니다. 그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능력, 도덕성을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도, 지극히 우연히도 그가 사모 펀드에 투자하였다는 금액이 74억 원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기에 그 금액에 관련된 저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관련기사: 매경_20198/15_ 조국 74억)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5년 전인 1974년 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당시 무역업을 하던 박영복이라는 사기꾼이 국내 금융기관 십 여 곳으로부터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74억 원의 사기 대출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매경_1974/4/18_박영복 74억) 이 당시의 74억 원이라는 금액이 얼마나 큰 금액인가를 알아 보면, 당시의 국내 총여신 1,034억 원의 7.16%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관련기사: 국내총여신 천34억_1974/2/5) 그 당시의 74억 원과 지금의 74억 원을 비교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1974년의 74억 이 국내 총여신의 7%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금액이었으나, 지금의 74억 은 국내 총여신 1,600조 원의 0.0005%에 불과합니다. (자료 출처: 한국은행 경제 통계 시스템. http://ecos.bok.or.kr) 45년의 세월이 흐른 뒤 74억 원이라는 금액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00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돈의 가치를 따진다면 14,000 분의 1로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나라 여신 시장의 규모와 비교하여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의 74억 원이라는 금액의 돈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더구나 개인이 투자하기에는- 비록 온 가족의 이름으로 투자한다고는 하여도- 일반 사람은 선뜻 나서기 어려운 금액의 돈입니다. 이런 큰 금액의 돈을 사모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보통의 뱃짱이 아니거나 투자의 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투자입니다.

먼저 45년 전의 사건을 훑어 보겠습니다.

1974년 박영복이라는 사기꾼은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수출 금융을 철저히 이용하였습니다. 수출을 하기 위하여서는 거의 모든 지원과 도움을 마다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출 금융이라면 일단 돈부터 지불하고 서류와 관련 증빙은 사후에 보완하는 금융기관의 관행을 철저히 우롱하였습니다. 그 당시 들리는 뒷 이야기로는 박영복이 가지고 다니는 도장 주머니에는 도장이 수십 개가 있었고, 그가 세운 수출 회사 법인이 여러 개가 있어서 금융기관에서 수출 금융을 받을 때면 어느 회사의 어떤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 박영복 자신도 헛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혹 도장이 바뀌어서 찍힌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금융기관에서는 이를 발견하지 못 하거나, 혹은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눈 감아 주고 사후 보완을 통하여 정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수출 금융을 많이 해주는 금융기관이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금융기관들마다 앞 다투어 수출 금융을 지원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이러한 약점을 십분 이용하여 박영복은 그 당시 천문학적인 금액의 사기를 칠 수 있었습니다.

박영복의 은행 접근은 우선 예금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출 수요를 금융기관이 감당하지 못하여 항상 예금이 부족하였던 시절입니다. 그런 은행들의 약점을 간파한 박영복은 우선 은행의 지점장을 찾아가 거액의 예금을 하겠다고 하면서 얼굴을 익혔습니다. 이 때 예금에 사용한 돈은 순진한 피해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돌려주겠다고 현혹하여 끌어들이거나 혹은 사채를 동원하였습니다. 일단 적지 않은 금액의 예금을 맡기게 되면 박영복은 당장 그 은행의 최고 VIP 대접을 받았습니다. 은행원들과 식사와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가까워졌고, 자신은 수출기업의 기업주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수출을 하다 보면 자금이 남을 때도 지만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다며 자신이 어려움에 빠지면 자금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미리 해 놓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난 뒤 갑자기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며 수출 금융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수출 금융 뿐 아니라 일반 대출도 함께 요청합니다. 일반 대출을 위한 부동산은 아무 부동산이나 등기 부등본을 뗀 다음 도장을 위조하거나, 은행원들에게 거짓말로 얼버무려 우선 대출금을 받아낸 다음 담보 물건을 이리저리 빼돌렸습니다. 실제로 박영복 사건이 터지고 난 뒤 감독원의 검사 결과 부동산 담보의 대부분은 허위 가짜였고, 그 나마도 여러 금융기관에 중복하여 담보로 제공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금융기관에 제공한 각종 수출 관련 서류는 대부분 위조되었거나 가짜 서류였습니다. 박영복은 이 사건으로 징역에 처해졌으며 출감 후 다시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모두 20 여 년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지난 2006년 다시 사기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2006/1/15- 박영복 다단계 사기) 그가 다단계 사기 사건 이후 출감하였는 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그가 살아 있다면 이제는 그의 나이도 80대 중반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현재의 74억 원을 사모 펀드에 투자하였다고 하는 사례를 펴 보겠습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지금은 법무부 장관)는 이 투자에 관하여 정확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모 펀드에 관련된 내용의 대부분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연 어떤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사모 펀드의 형태에 견주어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모(PE, private equity)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는 GP (General Partner)와 LP (Limited Partner)로 구분됩니다. 이 둘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GP는 경영에 참여하고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파트너- 투자자입니다. 그 반면 LP는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투자의 결과 발생한 수익에 대한 배당 만을 받는 파트너- 투자자입니다. GP는 자신의 경영 참여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그러한 책임 부담에 따른 보상을 받습니다. LP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경영 결과에 대한 책임 부담이 없으므로 일정 금액의 수익 배당을 받기만 하고 경영 행위에 참여함으로서 부담하는 책임이 없으므로 그에 따른 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LP들은 GP의 투자 권유를 받고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LP들은 GP를 신뢰하고 경영을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LP는 투자를 하기 전부터 이미 GP를 잘 알고 있거나 GP의 과거 투자 성과에 대하여 잘 알고 신뢰하는 경우에 투자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사모 펀드가 투자한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GP의 역할입니다. GP는 자신의 펀드가 자한 회사의 사외 이사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집행 임원으로 그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여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높아진 가치를 바탕으로 그 회사의 지분을 높은 가격에 되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BC라는 사모 펀드가 XYZ 회사에  한다면 ABC는 XYZ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 만한 지분을 확보하고 XYZ 회사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바로 잡아서 회사의 수익을 올리고 가치를 높입니다. 그런 다음 가지고 있는 XYZ 회사의 지분을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 때에 XYZ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ABC 사모 펀드의 GP 들입니다.

많은 사모 펀드들은 GP들이 주동이 되어 자금을 모으고 투자처를 찾습니다. LP들은 투자를 하기는 하지만 펀드의 운용이나 펀드가 투자한 투자 대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위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펀드가 어떤 대상에 투자 되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펀드들은 대체로 일정 기간의 간격을 두고 투자 상황에 대한 보고를 LP들에게 합니다. LP들은 이러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어떠한 대상에 투자가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됩니다.

최근의 금융 시장 추세는 새로운 상품, 새로운 펀드 구조를 시도합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는 사모 펀드도 새로운 구조, 새로운 역할을 하는 새로운 금융 상품으로 거듭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금융 감독 당국은 이를 규제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바라기로는 금융 당국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모 펀드를 규제하려 하기 보다는 박영복과 같은 금융 사기 행각을 예방하는 데에 더 주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