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유명(有名)해지기- 2021. 4. 23.

jaykim1953 2021. 4. 23. 05:36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또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게 됩니다. 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알려지기도 합니다. 좋은 의미로 알려진다면 굳이 피할 일은 아니겠지만 때에 따라선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일로 알려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쯤 전 국내 언론에서도 미국 월가 (Wall Street)에서 시작한 뒤숭숭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상당히 큰 금액인 190억 달러 (약 21조 원) 규모의 블록 딜 (Block deal)이 성사 되면서 관련 주식 가격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해당 주식의 시가 총액이 350억 달러가 증발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21조원 블록딜에 발칵 뒤집힌 월가 _hankyung.com_2021/03/28) 블록 딜이란 대규모의 주식을 단 번에 거래하기 위하여 주로 시장이 마감된 이후 거래 당사자끼리 직접 대량의 주식을 단일 가격에 팔고 사는 거래를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 번 사태의 중심에는 빌 황 (Bill Hwang, 한국명 황성국)이라는 패밀리 펀드 (Family Fund)의 펀드 매니저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관련기사: 크레디트스위스 " 황과 거래로 5 원대 손실"_YTN_2021/04/07)

 

이와 관련된 보도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빌 황은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저도 빌 황을 만나본 적도 있고, 그와 비즈니스를 연결하였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 ~ 25 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는 1982년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독실한 기독교 가정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 때 한국계 증권회사의 미국 사무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새로 옮긴 직장은 타이거 펀드였고 처음에는 애널리스트였습니다. 후에 펀드 매니저의 일을 하였고 실적도 나쁘지 않았으며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받아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창업자인 줄리안 로버트슨 (Julian Robertson)이 그를 신임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경력 가운데 타이거 아시아 펀드의 내부자 거래 (Inside trading) 의혹으로 인하여 처벌을 받기도 하였으며, 그로 인해 한 동안 자본 시장에서 거리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술, 담배는 물론 스포츠도 즐기지 않고 특별한 취미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타이거 펀드의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시기에 많은 증권 브로커들이 그에게 접근하려고 하였으나 마땅한 접근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골프를 친다거나, 술을 함께 마시면서 오랜 시간 같이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도 그는 이러한 취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도 그와는 점심 식사를 함께 한 기억은 있으나 저녁 시간에 만나본 기억은 없습니다.

 

이번 사태로 외국의 언론에도 그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How Bill Hwang Lost $20 Billion in Two Days_Bloomberg_4/9/2021) 외국 언론이 보도한 기사 가운데에는 그의 사람 됨됨이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시간을 가족, 사업, 자선의 세 가지에 균등하게 배분한다고 합니다. (Time distribution evenly among Family, Business & Charity.) 그는 매우 가정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사생활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그와 그의 사업, 그의 가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의 기사를 빌리면 현대의 금융시장에서 한 개인이 이번의 사태와 같은 큰 금액의 돈을 이와 같이 짧은 시간 안에 잃은 것은 전에 없던 극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빌 황의 부(富)는 한 때 30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One of the most spectacular failures in modern financial history: No individual has lost so much money so quickly. At its peak, Hwang’s wealth briefly eclipsed $30 billion. )

 

빌 황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그를 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가정에 충실하고 사업을 열심히 하였으며, 벌어들인 돈으로 좋은 일- 자선 사업-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누구에게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한 흔적도 없고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잘하였고, 그 결과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벌어 들인 돈으로 자선 사업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전대미문의 초대형 금융 손실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거래하였던 금융 상품이 획기적인 신상품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파생상품들이었습니다. 토털 리턴 스왑 (total return swap)이라던가 옵션 매각 (option writing), 레버리지 파이낸싱 (leverage financing) 등은 이미 30 ~ 40년 이상씩 사용되어 온 고전적인 금융상품들입니다. 빌 황뿐 아니라 많은 금융기관들과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그러한 상품이었습니다.

 

그는 토탈 리턴 스왑을 통하여 주식 포트폴리오를 숏 셀 (short sell)하는 효과를 내면서 거래 원금의 이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빌 황의 아키고스(Archegos) 펀드와 상대방이 맺은 스왑 거래는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상승하면 아키고스가 상승분을 상대방에게 지급하고 반대로 가치가 하락하면 아키고스가 상대방으로부터 차액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에 소요되는 금액의 이자 비용을 상대방이 아키고스에게 지급하는 스왑 거래입니다. 저금리 시대인 요즈음에는 아키고스가 받는 이자 금액은 원금에 비하여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반면 주식 포트폴리오의 가치 변화에 따른 정산 금액은 시장이 요동치면서 크게 오르내렸습니다. 아키고스는 주가가 하락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불행히도 주가는 하락하지 않고 기대 이상으로 상승하여 아키고스가 상대방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점점 커 갔습니다. 그리고 빌 황의 아키고스 펀드는 콜 옵션을 매도하였다고 합니다. 주식을 미리 약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상대방에게 매각한 것입니다. 가격이 상승하면 상대방은 옵션을 행사하여 낮은 약정 가격에 주식을 사서 비싼 현재의 시장 가격에 팝니다. 그렇게 하여 옵션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단, 가격이 하락하면 상대방은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므로 아키고스는 옵션을 매각하며 받은 프리미엄을 수익으로 챙길 수 있습니다. 이런 옵션 거래를 거래소를 통하여 하려면 증거금을 걸고 거래룰 하여야 합니다. 이 증거금을 마진 (margin)이라고 합니다.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에 적립하는 증거금은 이니셜 마진 (initial margin)이라 하고 옵션을 판 사람의 손실이 커지면 마진에서 손실 금액을 차감합니다. 그러다가 잔액이 일정 수준- 미니멈 마진 (minimum margin)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마진 콜 (margin call)을 합니다. 이는 증거금이 부족하니 증거금을 더 쌓으라는 요구입니다. 마진 콜을 받게 되면 옵션을 매각한 사람은 추가로 마진을 쌓아 이니셜 마진 금액만큼의 잔액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번 빌 황의 사태에서도 아키고스는 주가의 하락을 기대하고 콜옵션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손실이 불어나고 마진 금액이 부족하여지면서 거래소에서 마진 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키고스는 유동성이 부족하여 마진 콜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거래소에서 강제로 반대 거래를 일으겼습니다. 강제 매매로 손실이 발생하였고, 거액의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시장은 더 크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악순환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는 모두들 아시는 대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실이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실제로는 아키고스가 거래소에서 직접 옵션 거래를 한 것은 아니고 투자은행들을 통하여 거래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키고스에게 자금을 빌려 주었던 은행들도 적지 않은 금액의 손실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번 사태의 교훈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로 귀착됩니다. 거래 규모, 운용 자산 규모에 비하여 아키고스는 리스크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패밀리 펀드들이 헤지 펀드와 유사한 자산 운용 전략을 취합니다. 빌 황의 아키고스 펀드가 그러했듯이 여러 가지 파생상품을 이용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공(公) 펀드라거나, 금융기관의 자산 운용이라면 이러한 경우에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패밀리 펀드에는 이러한 기능이 거의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취약합니다. 이 번 아키고스 펀드의 사태가 패밀리 펀드의 리스크 관리 부재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투자 관리, 자산 운용 교과서에는 아키고스의 사례가 케이스 스터디로 다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빌 황 자신은 그리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나, 어쨌든 그는 이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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