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三不去- 2021. 4. 30.

jaykim1953 2021. 4. 30. 05:29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예(禮)를 중시하였습니다. 관혼상제 (冠婚喪祭)는 예를 실행하는 중요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저의 1 년 후배 집안에 초상이 있어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관혼상제 가운데 상(喪)을 치르는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초상집을 다녀오면서 문득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지키던 예절과 관습 가운데 초상과 관련된 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여자들의 잘못을 엄히 다스리는 방편으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습니다. 시집 온 여자가 이 일곱 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범하게 되면 재판을 거치거나 변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쫓겨나게 되는 것이 여자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사 칠거지악의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쫓겨나지 않는 세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를 삼불거(三不去)라고 하였습니다. 칠거지악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겠으나 삼불거는 혹여라도 미쳐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칠거지악을 범하였다 하더라도 여자를 쫓아내지 못하는 세 가지 경우를 삼불거라 하며, 첫 번째로 시부모 삼년상(三年喪)을 지낸 여자입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덕목 가운데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효(孝)에 주목한 기준입니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세 번의 제사 의식을 치르면서 효를 실행하였으므로 설사 칠거지악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여도 쫓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조강지처(糟糠之妻)입니다. 어려운 가정의 살림을 일으켜 물질적인 여유를 만들어 냈다는 내조(內助)의 공(功)이 있는 여자를 함부로 쫓아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는 시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여자는 쫓아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친정에 의지할 곳이 없는 여자는 인간적으로 쫓아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칠거지악이라는 당시로서는 준엄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있는 세 가지의 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불거 가운데 첫째는 효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시부모님 삼년상을 모신 여자입니다. 삼년상이란 초상(初喪), 소상(小祥), 대상(大祥)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발음은 ‘상’으로 같으나 한자로는 초상의 상(喪)은 죽을 상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에 치르는 의식(儀式)을 말합니다. 그리고 소상과 대상에 사용하는 한자는 상서로울 상(祥)으로서 제사를 의미합니다. 소상이란 초상을 치른 다음 해 – 즉 두 번째 해에 치르는 제사(祥)를 말합니다. 그리고 대상이란 소상을 치른 다음 해 – 즉 세 번째 해에 치르는 제사입니다. 대상까지 치르게 되면 탈상(脫喪)을 합니다. 세 번의 의식을 치른다 하여 삼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정확히 따져 본다면 이는 햇수로는 삼년상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만(滿) 2 년에 불과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만 나이보다 1살 혹은 2살이 많게 되는 연(年) 나이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초상을 치르는 돌아가신 해를 첫째 해로 꼽으면, 그다음 해에 소상을 치르는 둘째 해, 그리고 그다음 해에 대상을 치르는 셋째 해가 됩니다. 이렇게 삼년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관습으로는 이와 같이 어떤 사건이 일어난 해를 첫째 해로 세기 시작하여 연수(年數)를 계산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지 1 년이 되는 날 돌잔치를 하는 아기의 우리나라 식 연 나이는 2 살입니다. 그리고 60 번째 생일인 환갑을 맞이하는 노인의 연 나이는 61 세입니다. 이러한 관념이 과거의 우리나라 금융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자 계산을 할 때에 소위 양편 넣기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로부터 돈을 빌리는데 오늘 빌려서 그다음 날 갚으면 실제로는 만 하루 동안 돈을 빌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관습을 따르면 A는 오늘도 돈을 빌려서 썼고, 그다음 날에도 돈을 빌려서 썼으므로 이틀 동안 돈을 빌려 쓴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이자도 이틀 치를 부담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 4. 참조)

 

현대 금융 시장에서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나라식 양편 넣기 이자 계산은 불합리합니다. 서양식 금융의 시각으로는 이자는 한 편 넣기를 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4월 29일에 돈을 빌려서 4월 30일에 갚는다면 하루 동안 돈을 빌린 것이므로 하루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 한편 넣기 식의 이자 계산입니다. 우리나라식 양편 넣기로는 4월 29일에도 돈을 빌려 썼고, 4월 30일에도 돈을 빌려 썼으니 이틀 치 이자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양편 넣기를 하게 되면 전체 이자 계산 기간에 한편 넣기보다 하루치 이자를 더 지불하게 됩니다. 3 개월 또는 6 개월 동안 돈을 빌리는 경우에 하루치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이 그리 큰 부담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에서는 1980년대까지 양편 넣기 이자 계산이 횡행하였고 금융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그리 큰 저항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좌차월에서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좌차월은 원칙적으로 하루 동안 자금을 빌려주는 초단기 금융입니다. 그리고 1960~ 1970 년대에는 많은 기업들이 거의 매일 당좌차월을 사용하였습니다. 당좌차월을 사용하면서 이자 계산을 양편 넣기로 하게 되면 하루 동안 쓰는 대출에 대하여 이틀 치 이자를 지불하게 됩니다. 돈을 빌려 쓰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금융 관행이었습니다. 이러한 관행이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에서 1980년대까지도 있었습니다. 농협, 서민금고 등 소규모 금융기관에서는 2010년까지도 이런 관행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기사: 농협 서민금융사, 주말·공휴일 연체이자 부과 못한다_chosun.com_2010. 1. 22.)

 

우리나라에서 연 나이로 나이 세는 관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외국인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시간에 관한 개념이나 인식이 후진적인 듯이 비하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우리와 유사한 날짜 세는 방식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은 금요일 돌아가시고 삼일 (third day) 만에 부활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시각으로부터 부활하시기까지는 어림잡아 만 이틀이 채 안 되는 시간입니다. 금요일 오후 늦게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주일 새벽에 무덤에서 나오셨으니 아마도 만 이틀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부활하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에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표현합니다. 환갑이 만 60 세 생일이지만 환갑을 맞이하는 때에는 태어나서부터 햇수로 61번째 해를 살고 있으므로 연 나이로 61세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의 관습입니다.

 

설사 칠거지악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쫓겨나지 않을 삼불거 가운데 첫 번째는 시부모님 삼년상을 치른 여자입니다. 실제로 기간은 만 2년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를 부모님 삼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금융에서는 이런 경우에 만 2년의 시간이 경과한 것이므로 만약 초상으로부터 대상까지의 기간에 이자를 부리(附利)한다면 2 년치 이자를 부리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관습과 금융에 적용하는 시간의 개념은 분명히 구분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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