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같은 이름.... - 2021. 5. 7.

jaykim1953 2021. 5. 7. 05:28

지난주 목요일 4월 29일 국내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제목은 ‘씨날코를 아십니까’ 였습니다. (관련기사: 씨날코를 아십니까_chosun.com_2021/04/29)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4.19 혁명 직전의 자유당 정권 부패상을 언급하면서 당시 정권의 제 2인자라 불렸던 이기붕에게 전달되었던 뇌물을 부인인 박마리아가 꼼꼼히 기록하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기사 가운데 잊혀졌던 이름이 하나 등장합니다. ‘씨날코’입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은 이기호 제일은행장이 보낸 코카콜라와 씨날코다. 씨날코는 코카콜라에 버금가는 독일의 청량음료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아마도 이 당시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기사에서 언급된 ‘씨날코’를 인터넷으로 검색하였을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씨날코’는 독일의 청량음료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독일의 음료 ‘씨날코’는 수입되지 않았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 팔리던 시날코는 국내 영세 업자가 만들어 낸 청량음료로 오렌지 소다 부류의 음료였습니다. 오렌지 향이 나는 탄산 음료였습니다. 1961년의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면 “유해성 색소를 포함한 청량음료 가운데 협성 청량음료사 제품 ‘시날코’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1961/8/14_경향신문_유독성 색소-시날코) 협성 청량음료사는 영세한 소형 음료 제조사였습니다. 제품 이름은 외국의 유명 청량음료로부터 차용하여 ‘시날코’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실제로는 독일의 ‘씨날코’ 음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 판매하는 ‘시날코’라는 이름의 청량음료는 국내 업자가 만든 오렌지 소다 ‘시날코’ 뿐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만든 청량음료 ‘씨날코'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위의 기사 내용 가운데 ‘유해성 색소와 중금속’을 함유하였다는 음료 가운데 ‘코카 콜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카 콜라의 제조사는 용산구 보광동에 소재한 ‘무린 청량 음료사’ 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카 콜라와는 무관한 영세 청량음료 제조업자가 자기가 생산한 청량음료를 ‘코카 콜라’ 라고 이름 지어 판매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유해 색소를 섞어서 만들었다가 적발당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의 우리나라 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과거의 기록을 보고 내용을 유추하다 보면 시날코를 독일에서 수입한 음료로 잘못 아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씨날코’라는 음료를 접하다 보면 그 음료가 무엇인지 검색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원래의 ‘씨날코’인 독일 음료에 대한 설명이 나오게 됩니다. 60년 전 국내 영세 업자가 외국의 유명 상표를 도용(盜用)하여 이름만 ‘시날코’였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는 이러한 청량음료 한 상자가 최고의 권력자에게 뇌물로 쓰였던 시절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코카 콜라’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간 저의 기억으로는 저도 그 당시에 국산(?) 코카 콜라를 마신 기억이 있습니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 꼬마에 불과하였던 저의 기억으로는 코카 콜라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가짜 코카 콜라는 병에 들어 있었고 미국에서 수입된 진짜 코카 콜라는 캔에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짜 코카 콜라는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진짜 코카 콜라 병이 아닌 밋밋한 투명 유리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들여 온 진짜 코카 콜라는 군납용으로 파손이 되지 않는 캔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두 음료의 맛은 달랐습니다. 캔에 들어 있는 진짜 코카 콜라는 요즘에 맛볼 수 있는 원조 코카 콜라인 반면 병에 들어 있던 국산 가짜 코카 콜라는 무언가 맛이 다른 검은색 탄산음료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OB 콜라라는 음료도 있었습니다. 이 음료는 OB 맥주를 생산하던 동양맥주 주식회사가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이 회사의 계열사인 한양 음료 주식회사가 뒷 날 미국 코카 콜라의 한국 에이전트가 되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진짜 코카 콜라를 보급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한양 음료가 수입하여 판매를 시작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진짜 코카 콜라 병에 들어 있는 코카 콜라를 맛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청량 음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금융에 발을 들여 놓았던 시기까지도 원서(原書)라 불리던 모든 외국의 서적들은 국내에서 복사하여 제작한 해적판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원서들도 대부분 해적판 복사본이었습니다. 지적소유권, 저작권, 상표권 등의 개념조차 거의 없었던 시절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였었습니다. 그 때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어떻게 독일의 유명 청량음료 상표인 씨날코라는 이름을 버젓이 써붙인 청량음료가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라이센스 계약이나 상표권 사용 계약도 없이 만들어져서 팔릴 수 있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는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같은 상호로 인한 소비자의 혼동이 유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프루덴셜 (Prudential) 이라는 보험회사의 상호는 서로 다른 두 회사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회사는 미국의 프루덴셜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프루덴셜입니다. 미국의 프루덴셜은 Prudential Financia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금융 그룹으로 보험회사를 포함한 금융기관들로 이루어졌습니다. (prudential financial - logo) 그리고 영국의 프루덴셜은 Prudential plc.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영국의 보험회사입니다. (prudential plc - logo) 이 회사 이름 말미의 plc. 란 private limited company의 약자로 우리나라의 유한회사와 유사한 형태의 회사입니다. 일반인에게 주식을 공개하지 않고 사적(私的)으로 구성된 주주 집단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의 회사입니다. 같은 명칭으로 나라에 따라 plc를 다르게 정의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회사의 형태에 대하여서는 좀 더 유의하여야 합니다.

 

Prudential Financial 과 Prudential plc. 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두 회사가 같은 국가에서 영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먼저 진입한 회사가 프루덴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나중에 들어온 회사는 이름을 달리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미국의 프루덴셜 보험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프루덴셜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회사는 미국의 프루덴셜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우리나라에 진입한 영국의 프루덴셜은 PCA 생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PCA 생명은 후에 미래 에셋 생명에 합병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프루덴셜 plc회사는 미국에서 PPM America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PPM America 웹사이트) 그리고 미국의 프루덴셜 파이낸셜 회사는 영국에서 PGIM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PGIM 웹사이트) 회사의 이름이 우연히 같다 하더라도 국경을 넘나드는 사업이 활발하지 않았을 때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국제적인 영업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상호로 인한 혼돈과 충돌이 불가피하였을 것입니다. 두 회사의 크기를 비교하면 미국의 프루덴셜이 자산 규모로는 약 3 배 가까이 큽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서로 윈-윈 (win-win) 할 수 있는 신사협정을 맺고 지켜 왔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프루덴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우리나라에서 시날코를 만들던 영세 사업자는 감히 독일의 씨날코 제조사와 견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시날코라는 이름을 빌려 썼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비즈니스 규범을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여 우리나라의 상표권, 지적소유권이 침해당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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