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Live free or die. - 2021. 5. 28.

jaykim1953 2021. 5. 28. 04:59

1 년쯤 전의 일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자동차 번호판에 변화가 생겼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New York's new license plates finally hit the road) 새로 발급되는 번호판은 과거의 노란 바탕이 아닌 흰색 바탕의 번호판입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번호판 아랫부분에 씌어 있는 뉴욕주의 모토 (motto)입니다. 번호판은 맨 위에는 ‘New York’이라고 주 이름이 씌어 있고, 가운데 에는 최대 7 자릿수까지 숫자와 알파벳으로 차량 고유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부분에 ‘Empire State’이라는 뉴욕주의 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별명이 ‘Excelsior’로 바뀐 것입니다. 뉴욕주의 별명은 Empire State과 Excelsior State 두 가지가 모두 쓰입니다. Empire State이라는 이름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영 제국(帝國, Empire)의 지배를 받는 주(州)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Excelsior State은 한 발 앞서 가는, 좀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앞서 가는- 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각각의 주에 따라 자동차 번호판에 특색 있는 모토를 적어 넣습니다. 뉴욕주에서 Excelsior라고 쓰듯이 하와이에서는 Aloha State이라 씁니다. 그런데 미국의 뉴 햄프셔 (New Hampshire) 주에서는 조금 특색 있는 모토를 사용합니다. 다름 아닌 ‘Live Free or Die’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유롭게 살겠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입니다. 이 말은 아마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성하게 된 근본적인 건국 정신을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뉴 햄프셔는 미국의 독립에 참여한 초기의 13개 주 가운데 하나로서 청교도적이면서도 자유정신이 투철한(?) 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자동차의 안전벨트 착용을 법으로 요구하지 않는 주입니다. 미국 안의 거의 모든 주가 자동차 안전벨트의 착용을 법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뉴 햄프셔 주는 자동차의 안전벨트 착용을 요구하는 법이 없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자유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 뉴 햄프셔의 모토입니다.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것을 못 견디니 안전벨트를 강요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정신이 미국 전체에 통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를 속박한다거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강요 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이라는 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사실은 개인의 신상정보를 고스란히 제공하고,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을 근간으로 합니다. 미국 뉴 햄프셔주의 ‘Live free or die.’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있을 수 없는 통제를 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기로 전염되는 유행병의 확산을 예방하는 목적이라면 식당 등에서 실내에서 식사를 아예 하지 못하게 하고, 테이크 아웃 또는 배달 등으로 음식을 주문하도록 하고 식당 안에서 식사를 금지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실내에서 식사를 허용합니다. 단, 각각의 집단 크기는 최대 4명까지만 허용됩니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는 한 집단의 숫자는 4명 이하라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인원이 실내에 함께 있게 됩니다. 각각의 집단이 4명 이하이건, 5명 이하이건 결국은 그 식당 안에 있는 전체 사람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전염병의 확산 위험성이 커지게 됩니다. 실효성의 의문을 그대로 놓아둔 채로 개별적으로 모이는 집단의 크기를 4명 이하로 통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심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화를 따르면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합니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이 져야 합니다. 서구 문화가 반드시 우월하고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개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 줍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대안도 제시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안에서 식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개인이 식사할 장소를 결정하는 자유를 일부 제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을 허용하여 각 개인이 식사할 장소의 선택지를 늘려 줍니다. 또 실내에서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한다면 그에 대한 대안으로 실외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추가로 허용하여 줍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투자자에게는 투자 상품 선택의 자유는 무한대로 허용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면제해 주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돈을 맡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금입니다. 수익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 것입니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신용 상태가 좋은 곳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5천만 원까지는 예금 보험 공사가 원리금을 보장해 줍니다. 그 이상의 금액은 예금주가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투자입니다.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가 리스크를 부담합니다. 투자한 상품의 가치가 상승하여 투자 원금과 수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투자 상품의 경우에는 예금 보험 공사의 보장 대상이 아닙니다. 순전히 투자자 스스로 리스크를 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투자자들도 집단으로 떼를 쓰면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해 줍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나서기도 전에 각급 금융기관이 알아서 미리 투자자의 손실을 보전해 줍니다. (관련기사: 환매 중단된 펀드 선지급.. "고객 피해 최소화" vs "투자자 책임 원칙 훼손"_fnnews.com_2021/5/19) 손실이 발생하는 펀드를 제대로 환매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중개기관인 은행이 손실을 감수하고 개인 투자자에게 투자 원금을 돌려줍니다. 이유는 고객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은행은 손실이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은행 경영진은 은행을 제대로 경영하여 고객에게 좋은 금융 상품을 제공하고, 이익을 창출하여 주주들에게 배당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객 보호를 빌미로 은행에 손실을 끼친다면 이는 경영진에게 맡겨진 책임을 유기하는 것입니다.

 

리스크가 큰 상품에 투자한 것은 투자자의 의사 결정이고 투자자의 자유 의사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리스크는 투자자가 부담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아주 간단하고도 기초적인 논리가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는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번의 유사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부실 저축은행의 경우에도 원칙은 원리금 합계 5천만 원까지 예금 보험 공사에서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초과하여 정부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일이 있어 왔습니다. (관련기사: 부실 저축銀 예금주 피해보상_imaeil.com_2011/10/27)

 

금융산업을 흔히 여수신(與受信) 사업이라고 부릅니다. 여신과 수신 업무를 한다는 것인데, 여신이란 신용을 공여하는 것이고, 수신이란 신용을 제공 받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여신이고, 상대방이 나를 믿고 돈을 맡기는 것이 수신입니다. 신용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면 여수신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금융업은 낙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을 위하여서도 조금은 냉정하게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자와 예금주들에게 상품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는 것이 금융산업의 가장 기본입니다.

 

Live free or die. 라는 말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 하는 말입니다. ‘Die’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Live free’ 만을 목적으로 하면서 ‘Live free or die.’라고 말하여서는 안 됩니다. 리스크를 부담한다는 것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나 예금주가 리스크를 졌을 때에는 손실도 발생할 수 있고, 손실이 발생하면 투자자, 예금주가 부담하여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정부가 나서서 투자자와 예금주 보호를 외치면서 금융기관에 손실을 떠넘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