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체육 특기생- 2021. 6. 4.

jaykim1953 2021. 6. 4. 04:50

저와 대학 동기인 S는 축구 선수였습니다. 그는 저와 중학교도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제가 타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서로 다른 학교를 다녔습니다. S는 축구 선수 중에서도 얼굴도 잘생기고 몸매도 날씬하게 잘빠진 멋진 인물의 좋은 친구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남달리 띄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의 대학 진학입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운동선수들이 대학 진학 자격시험이었던 예비고사에서 낙방하여 예체능계 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주로 체육학과에 체육 특기생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예비고사를 통과하지 못한 운동선수들 때문이었습니다. 예체능계 학과는 예비고사를 면제해 주는 당시의 제도로 인하여 예비고사를 통과하지 못한 체육 특기생들은 대거 체육학과로 몰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S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비고사도 당당히 통과하였고 입시에도 응시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경영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입학시험을 사정(査定)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가산점이 주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그는 당당히 입시를 치르고 입학하였습니다. 다른 체육 특기생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가 남달리 눈에 띄었던 사건은 국가대표 선수 선발 거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국가기관, 축구협회의 위세가 하늘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축구협회가 선정한 국가 대표에 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합숙 훈련에 불참하고 대표 선수를 사퇴합니다.

그와 동갑내기이고 같은 축구 선수였던 차범근 선수는 국가 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독일로 진출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것에 비하면 S는 달랐습니다. S는 대학 졸업후 국내 금융기관에 취직하여 평범한 은행원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차범근 선수와 경기에서 자주 부딪쳤습니다. 공격수인 차범근 선수와 수비수였던 S는 포지션이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S의 기량이 좀 더 앞선다고 평가 받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S와 맞붙을 때면 차범근 선수가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뒷날 차범근은 세계적인 선수, 축구 지도자로 경력을 이어갔으나 S는 축구를 떠나 은행원으로 경력을 마무리하였습니다.

S 이전에도 체육 특기생 전형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하였던 농구 국가대표 센터였던 김영일 선수는 경기고등학교를 일반전형으로 입학하였고, 연세 대학교에도 체육 특기생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합격하여 선수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1964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변재혁 투수가 있습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60회 졸업생으로서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경기고등학교를 전국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도록 발군의 실력을 보인 선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투수도 타격에 매진하던 시절이었고, 변재혁 선수는 사이드 암 투수이면서 공격력도 좋은 선수였습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투수로 활약하였습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변재혁 선수는 한일은행에 취업하여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당시의 한일은행은 실업야구의 최강자로서 우리나라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인 OB베어스의 초대 감독을 역임한 김영덕 감독이 에이스 투수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김영덕 선수도 사이드 암, 변재혁 선수도 사이드 암 투수였습니다. 그리고 한 해 뒤인 1969년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 합류한 임신근 투수가 있었습니다. 김영덕 투수가 은퇴한 이후 한일은행의 에이스 투수 자리는 재일동포 출신의 김호중 선수가 맡으면서 변재혁 선수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작아졌습니다. 그 후 그는 일반 행원으로 경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재혁 선수와 함께 고려대학교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하였던 사람 가운데 J가 있습니다. J는 주전 선수는 아니었으나 포지션은 투수였습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그를 불러주는 실업 야구팀이 없었습니다. J는 어쩔 수 없이 운동을 그만 두고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영업부서에 배치받았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그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량을 가지고 있어 법인 영업을 무난히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1980년대 초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서 채권투자를 담당하고 있던 저에게도 J는 자주 찾아왔었습니다. 저도 간혹 그에게 주문을 주기도 하였었습니다. J는 항상 웃는 낯으로 상대를 대하는 마음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온 거래를 검토해 보면 채권 가격과 수익률의 계산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계산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그는 쩔쩔매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제가 J의 동료 직원에게 수익률과 단가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J의 동료 직원은 제게, ‘J는 단가, 수익률 그런 것 계산할 줄 몰라요. 궁금한 것 있으면 제게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계산이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곤 하였습니다.  J는 그 당시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운동에만 몰두한 운동선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 졸업과 함께 운동을 그만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은행들이 야구, 축구 팀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쉽게 은행팀에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은행팀에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바로 현업에 배치되었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현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아무래도 운동선수들이 학업을 등한시하여 기본적인 지식과 업무 관련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반면 긍정적인 면은 튼튼한 체력과 함께 힘든 일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높이 사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금융기관에 유독 운동 선수 출신이 많았습니다. 제 친구 축구선수 S, 고려대의 변재혁 선수 등이 모두 은행으로 진출한 케이스였습니다. 이들은 학창 시절에 운동만 한 것이 아니라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아 훌륭한 경력을 이어 갈 수 있는 바탕을 갖추고 있는 긍정적인 경우였습니다.

체육특기생들은 진학을 할 때에는 상당한 특혜를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특혜는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됩니다. 제 친구 S나 변재혁 선수와 같이 평범한 은행원으로 변신하여 무난한 경력을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동 선수 가운데에는 박찬호 선수나 손흥민 선수 같이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여러 중목에 프로팀이 생기고 운동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40세 전후까지는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재능과 실력을 갖춘다면 운동에 전념하여도 충분히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체육 특기생이라는 것은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잠시 누리는 혜택일 뿐입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체육 특기생으로서의 특별한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뚫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특혜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는 은행의 창구 업무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뒤늦게 현업에 뛰어든 운동선수들의 경력을 관리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은행의 창구 업무마저도 예전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은행이 취급하는 상품도 많아졌고, 상품 자체도 복잡해졌습니다. 이제는 은행 창구 업무도 더 이상 뒤늦게 현업에 들어서는 운동 선수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금융 산업이 과거의 금융 산업에 견주어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금융기관들도 중앙은행과 정부로부터 마치 체육특기생과 같은 특별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새로운 규제를 시행하면서 국내 금융기관에는 일정기간 유예해 주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금융위,  '바젤Ⅲ' 자본규제 3년 유예_seoulfn.com_2019/03/24) 그런가 하면 각종 특례를 적용하기도 합니다. (관려기사: 증권사, 中企 신용 공여 특례 적용_einfomax.co.kr_2021/02/01) 이러한 특혜성 조치는 마치 입학 전형에서 체육 특기생을 특별 대우하여 선발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체육 특기생이 특례 입학의 혜택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고 하여서 그들 앞에 탄탄대로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란 앞으로 체육 특기생들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시작을 도와주는 배려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체육 특기생에게 베풀어지는 혜택은 시작을 도와주는 배려 이상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내 금융기관에게 주어지는 혜택과 배려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 친구 S는 일찌기 스스로 자기 인생의 경쟁력을 갖추어 갔습니다. 그랬기에 대학 진학을 하며 경영학과에 일반 전형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S보다 8년이나 선배인 변재혁 선수는 더 일찍 스스로의 경쟁력을 다져 나가려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지원하였습니다.

모든 야구 선수가 다 박찬호, 추신수 선수와 같이 될 수는 없고, 모든 축구 선수가 다 박지성, 손흥민 선수와 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체육 특기생이라 하더라도 학업도 게을리하여서는 안 되고, 자신의 두뇌 개발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됩니다. 운동 선수로서의 자질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되 한계를 느끼는 순간 경력을 전환할 수 있는 밑바탕 실력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도 정부의 특혜에 기대기보다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