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코스프레- 2021. 6. 18.

jaykim1953 2021. 6. 18. 05:42

지난주 일요일에 보수 언론지에 실린 기사입니다. 제목은 “대선주자 ‘흙수저 마케팅’ 그만...당신들은 이미 금수저입니다” (관련기사: 당신들은 이미 금수저입니다_chosun.com_2021. 6. 13.)

이 기사 내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 기사에서 제 눈길을 끌었던 한 문장 때문에 이 기사를 언급하려 합니다. 그 문장은;

모두가 표심을 얻기 위한 ‘서민 코스프레(cospre)’라는 생각이다.

입니다.

이 문장에서 제가 주목한 단어는 단 하나, ‘코스프레(cospre)’입니다.

이 글을 쓰는 분이 한 번이라도 사전을 찾아보았더라면 최소한 영어에는 ‘cospre’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금방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국내에서 유가(有價) 발매 부수가 가장 많다고 자랑하는 신문에 게재한 글에 있지도 않은 단어를 알파벳으로 떡하니 적어 놓았습니다.

코스프레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입니다. 원래 영어에는 카스튬 파티 (costume party, 또는 코스튬 파티)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카스튬 파티란 할로윈 데이 (Halloween day, 매년 10월 31일)에 각종 의상으로 귀신 분장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풍습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러한 풍습을 할로윈 데이가 아닌 날에도 의상으로 분장을 하고 즐기는 것을 일본식 영어로 코스튬 플레이 (costume play)라 이름 지었고, 이를 줄여서 ‘코스프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코스프레의 처음 시작은 만화 영화의 주인공 의상으로 분장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분장하는 것을 모두 코스프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마치 자기네 언어인 양 사용하고 이름을 짓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예를 살펴보면. 198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발표된 노래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졌던 ‘사치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Nyc Nyusa "Sachiko" - YouTube 참조) 이 노래는 ‘닉쿠 뉴사’라는 이름을 가진 5인조 그룹이 불렀습니다. 이들이 지어낸 그룹 이름 닉쿠 뉴사는 영어로 NYC NYUSA라고 씁니다. 이는 NYC (New York City, 뉴욕 市), NY (New York, 뉴욕 州) USA (United States of America, 美國)의 글자를 그대로 읽으면서 일본식 발음을 가미한 것입니다. 아마도 미국의 뉴욕주에 있는 뉴욕시를 동경하여서 지은 이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일견 재치 있는 작명(作名)입니다.

사치코라는 이름은 한자로 ‘幸子라고 쓰며 조금은 나이 세대에 유행하였던 이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고 치면 ‘~’, ‘~ 같이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여자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쉽사리 찾아볼 있는 이름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도 조금은 예전 세대 사람들에게 낯익은 이름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은 구세대식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자기네 그룹의 이름은 나름대로 미국의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을 동경하는 듯한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일본 노래가 서양에까지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60년 전에 큐 사카모토라는 가수가 부른 ‘스키야키’라는 노래가 상당히 인기를 끌었었고 (Sukiyaki- Kyu Sakamoto), 1960년대 말에는 ‘Blue light Yokohama’라는 노래가 상당히 널리 알려졌었습니다 (Ayumi Ishida - Blue light Yokohama). 이 노래의 제목은 일본식으로 ‘부루 라이또 요코하마’라고 발음합니다. 노래 가사 중에도 ‘부루 라이또 요코하마’라는 말이 나옵니다. 1980년대 초에 제가 일본 동경으로 출장을 갔을 때 어느 토요일 오후에 일본의 현지 직원들이 저를 데리고 요코하마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요코하마에는 차이나 타운이 크게 자리 잡고 있어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해변의 등대에서 푸른 불빛을 켜는 ‘블루 라이트 타임’이 있었습니다.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노래의 인기에 얹혀서 블루 라이트를 실제로 켜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만들어 갑니다. 영어를 빌려다가 자기네 식으로 발음하면서 코스프레, 부루 라이또 요코하마 등과 같이 영어에서 단어를 차용해 왔으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우리가 따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코스프레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한다 하더라도 구태여 그런 말을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영어에 있지도 않은 엉터리 스펠링을 만들어 cospre라고 쓰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만, 일본 사람들은 워낙 모방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 ‘膵’ 자가 원래의 한자에는 없던 글자였고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글자라고 하는 것은 놀랍습니다. 명치유신(明治維新)을 겪으면서 서양의 문물이 일본에 물밀듯이 들어오고, 서양 의술(醫術)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췌장(膵臟, pancreas)이라는 장기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췌장은 한의학에서는 그 당시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장기의 이름을 일컫는 한자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장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까 고민하던 중 일본 사람들이 모을 췌(萃) 옆에 육달월부를 붙여서 膵라는 글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창의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금융에서도 그들 나름의 용어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대외적으로는 외환보유고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후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달러화로 표시된 부채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면서 그 대전을 지불하며 부채를 빌릴 때에는 무역수지의 적자와 자본수지의 흑자가 서로 상계되는 효과가 있어서 전체 국제수지표 상의 종합수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외국에서 달러화를 빌려와서 부족한 외환보유고를 채우게 되면 자본수지가 흑자가 되고, 종합수지에도 흑자를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빌린 돈이 다른 곳에 쓰이지 않고 부족한 외환보유고를 보충하는 효과를 보이는 부채를 임팩트 론 (impact loan)이라고 불렀습니다. (*주: 지금은 임팩트 론이라는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즉, 국제수지표에 충격(impact)을 주는 효과가 있는 차입금(loan)이라는 것입니다. 이 용어는 1970년대 말까지도 많이 쓰였습니다. 임팩트 론을 모두 상환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할 일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겐사키(現先)라고 불리는 채권 거래가 있습니다. 이는 원래의 채권시장 용어로는 리포(repo) 또는 리퍼체이스 (repurchase)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시장에서 거래를 일으키고 미래의 시점에 반대 거래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물시장-現-과 선물시장-先-이 동시에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일본에서는 이 거래를 겐사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겐사키 거래는 현물에서 채권을 매각하면 선물시장에서 재매입합니다. 반대로 현물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면 선물시장에서는 재매각을 하게 됩니다.  엄밀하게 이르면 현물시장에서 매입, 선물시장에서 재매각은 반대 리포 (reverse repo)라고 불러야 정확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그냥 리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본은 외국의 문물을 잘 받아들이고 잘 소화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용어와 명칭도 잘 지어 부칩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이 지어낸 이름을 꼭 다 따라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잘 취사선택하여 필요한 것은 취하도록 하여야 하겠지만 코스프레와 같은 용어를 따라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가까이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할 이웃이 일본입니다. 마냥 모든 것을 미워하고 배척하여서도 안 되겠고, 그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만 하는 것도 피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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