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대로? - 2024. 11 22.
지난 주 국내 언론에 조금은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습니다. 실패한 스타트 업 회사에 투자한 벤처 캐피탈이 창업자의 집을 가압류하였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파산한 창업자 집까지 가압류…'투자금 반환' 분쟁 격화-sedaily.com- 2024. 11. 13.)
일반적으로 가압류라는 조치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동산 또는 부동산에 채권의 상환을 강제하려는 조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 벤처 캐피탈 회사는 마치 창업자에게 대출을 해 준 듯합니다. 그리고 대출이 상환되지 않아 채권 회수에 나선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면 벤처 캐피탈은 이 회사에 대출을 한 것이 아니고 RCPS의 형태로 5억 원을 투자하였다고 합니다. RCPS는 상환이 가능하고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한 우선주-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6. 7. 22. 참조)
RCPS는 발행사가 상환 재원을 확보한 경우에는 대출을 상환하듯이 상환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채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선주 형태의 자본금입니다. 그리고 우선주이므로 일정한 규모의 배당을 최우선적으로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RCPS를 발행할 때에는 각종 조건(covenant)들이 따릅니다. 이 기사에 언급된 회사의 RCPS에는 어떤 조건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RCPS라는 형태의 증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진 전문 투자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RCPS 형태의 투자자들은 실패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에 성공하면 일반주로의 전환을 통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투자합니다.
이 기사에서 언급한 회사는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청산 절차를 밟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 캐피탈이 창업자의 주택을 가압류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입니다. 이 벤처 캐피탈은 이런 식으로 실패한 투자를 채권 회수하듯 창업자의 주택을 가압류하려는 것입니다. 투자에 성공하면 투자 수익을 최대한 누리고, 실패하면 채권 회수하듯 하려는 것입니다. 투자에 성공하면 리스크 부담을 한 투자였으니 그 대가를 받아가고, 투자가 잘못되면 투자가 아닌 채권-채무의 거래라고 우기며 채권을 회수해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아마도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에 자신이 없고, 자신의 잘못을 법적인 문제로 비화시켜 물타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를 하기로 의사 결정하였으면 그 결과에 대하여서는 투자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결과가 안 좋다고 하여서 말을 바꿔 투자가 아니고 대출이었다고 주장하며 법정으로 가서 채권 추심 절차를 밟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태입니다. 조금 유치한 표현을 빌면 아주 ‘치사한’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경영상의 의사 결정 결과를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에 투자 조건에 대한 약정이 있었으면 투자자와 회사 사이에 그 조건의 충족 여부를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에서는 이를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9. 2. 22. 참조) 이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들입니다. 참고로 저의 경험에 의하면 투자자와 회사 사이의 분쟁을 법정으로 가지고 가서 시원한 결말을 받아내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투자자에게도 혹은 회사에게도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법정은 계약서의 내용을 법대로 해석하고 그에 따른 의견을 낼 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정말로 흔치 않습니다. 정말로 중대한 거짓이나 고의적으로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면 법원의 결정이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범죄시하지도 않으며 어느 한 쪽이 환호할 만큼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투자자와의 분쟁을 법정으로 가지고 간 회사는 투자 계약의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법정 투쟁을 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차후 투자자를 모집할 때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스타트 업 회사들이 앞으로 웬만하여서는 앞의 기사에서 창업자의 주택을 가압류한 벤처 캐피탈 회사의 투자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벤처 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가 잘못되는 날에는 창업자의 주택이 가압류 될 것을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투자와 관련하여 투자자와 해당 기업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문제의 해결방법은 양측이 원만하게 타협하는 것입니다. 법정으로 문제를 가지고 가면 서로의 감정만 나빠지고 만족스러운 해결 방법이 나오기도 쉽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상대방을 쓰러트리려고 애를 써 보아야 상대방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상황만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게 된 상황이라면 조금씩 양보하여서 적당한 선에서 절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였을 때에 법정으로 가게 되면 채무 조정을 하고 상환 기간을 늘려 주면서 상환액을 일부 삭감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럴 때에도 불필요한 법정 비용을 들이기 보다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상을 통하여 적정선에서 상환 기간을 조정하고 채무액을 일부 탕감하여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하여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원만하게 조정해 나가면 후에 계속되는 영업에서도 좋은 평가와 신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정에서 악에 받쳐 투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거니와, 그 이후의 영업에서도 좋지 않은 평판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금융업도 하나의 비즈니스입니다. 원만한 비즈니스는 법정 투쟁을 통하여서 보다는 타협과 협상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