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에 대하여 기가 막힌다고 이야기하거나, 또는 격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가 주주에게 고율의 배당을 하였다면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으며, 정황을 자세히 알아보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2 주일 전인 지난 7월 8일자 국내 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면 적자가 나고 있는 회사에서 배당금을 받은 사모 펀드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biz.chosun.com/2016/07/07_적자 났는데 배당)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일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나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모 펀드 (Private Equity Fund)와 벤처 캐피탈 (Venture Capital) 등에서 즐겨 이용하는 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상환전환우선주)라는 상품의 구조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사모펀드나 벤처 캐피탈이 자주 사용하는 투자 상품은 크게 3 가지가 있습니다. CB (Convertible Bond, 전환사채), BW (Bond with Warrant, 신주인수권부사채), RCPS가 그것들입니다. 이들을 살펴보면;
CB는 채권을 발행하는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입니다. CB를 발행할 때에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전환가격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CB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면 전환 가격을 얼마로 하느냐에 따라 주식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전환 가격이 1만원 이라면 10억원의 채권이 10만 주로 전환됩니다. 그러나 전환 가격이 5만원이라면 2만주로 전환됩니다. 전환가격에 따라 보유 주식수가 달라지게 되므로, CB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가 주식으로 전환하였을 때의 지분률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모펀드나 벤처 캐피탈의 입장에서는 CB를 통하여 투자한 회사가 실적이 부진하고 주가 상승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만기에 CB를 상환 받으면 단순히 채권투자를 한 것과 똑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그렇지만 CB를 통하여 투자한 회사의 실적이 좋고 전망이 밝아 주가가 상승한다면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CB는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쓰이던 투자기법입니다.
BW는 채권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에게 추가로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BW도 CB와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기법이면서 초기에 채권에 투자하고 회사의 전망에 따라 주식을 갖게 되는 투자기법입니다. BW는 주식을 인수하려면 주식 인수 대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식을 인수하고 나서도 채권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BW를 가지고 있던 투자자는 신주 인수권을 행사하고 나면 채권과 주식의 두 가지 형태로 투자를 하게 됩니다.
CB와 BW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CB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고 나면 채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었으므로 주식만을 보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식 인수를 위한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CB와 BW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된 투자기법임에 비추어 RCPS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개발된 기법입니다.
RCPS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주식의 형태입니다;
1. 상환가능
원칙적으로 주식은 원금 상환이 되지 않습니다.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금액을 상환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식을 매각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우선주는 원금의 상환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원금 상환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투자원금에 대한 리스크를 없애줍니다.
2. 전환가능
사모펀드나 벤처 캐피탈은 투자로부터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전환이 가능한 것은 CB와 유사한 것입니다.
3. (배당)우선주
우선주는 일반적으로 의결권 없이 일정한 배당율의 배당을 우선적으로 배정받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결권을 갖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식이라고는 하지만 채권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RCPS 발행사가 손실을 기록하여도 RCPS를 보유한 주주들에게는 배당을 하여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상식적으로는 손실이 나는 회사가 배당을 하여서는 안 되겠지만 RCPS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RCPS에 대한 배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배당이라기 보다는 이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RCPS를 회사의 자본계정으로 취급하였으나 지금은 이를 부채로 취급합니다. 과거에는 부채비율을 산정할 때에 RCPS가 분모(자본)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분자(부채)를 구성합니다.
RCPS는 우선주이므로 최우선적으로 배당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RCPS 계약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손익이나 실적과 관계 없이 고율의 배당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배당률을 더 높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발행 첫 3년간은 5%의 배당을 약속하고 그 이후에는 1 년에 2%씩 배당률을 높여 갑니다. 즉, 4년째의 배당률은 7%, 5년째에는 9%, 6년째에는 11% 와 같은 식으로 상승합니다. (escalating interest rates) 이처럼 이자율을 상승하도록 만드는 이유는 배당 부담을 높여 원금상환을 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스타트 업 (Start-up)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초기의 투자에 대한 수요을 충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업 전망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모 펀드 혹은 벤처 캐피탈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고 합니다. 흔히들 엔젤(angel) 투자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엔젤 투자자와 부도덕한 기업사냥꾼의 차이는 사업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 업 비즈니스가 성공하면 투자자는 엔젤 투자자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가 성공적이지 못하면 투자자들은 투자원금을 회수할 다른 방도를 강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칫 돈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 사냥꾼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초기 투자자를 찾는 많은 스타트 업 사업가들은 행여 자신이 피땀 흘려 이룩한 비즈니스의 알맹이를 뺏기고 싶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에게는 적정한 이윤을 돌려주려 할 것입니다. 세상 일이 잘 되기만 하고 늘 좋은 일 만 벌어진다면 골치 아픈 안전장치나 성공했을 때에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 일들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야 하고, 성공하였을 때의 과실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자본시장에서 RCPS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형태로 투자자와 사업가 사이의 이해를 잘 조정하고 어느 한 쪽이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 나오게 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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