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저는 오래간만에 싱가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는 40년 넘게 알고 지내는 오래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싱가폴에 있는 저의 친구들도 모두 금융기관에서 근무하였던 터라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금융 관련 토픽이 주를 이루었으며 지난 해에 싱가폴을 시끄럽게 달구었던 자금 세탁 사건 (관련기사: billion-dollar-money-laundering-case_SINGAPORE- 2024. 6. 16.)도 이야기 거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자금 세탁 건은 규모가 너무 커서인지 정확한 내막을 상세하게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신문에 보도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자세한 내막은 잘 알지 못하고 그저 말레이지아계 중국인이 연루된 가짜 서류을 동반한 금융 사기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금액의 부동산 관련 금융을 일으켜 그 자금을 세탁하여 착복한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엉뚱하게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부동산 가격이 조금 주춤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자금 세탁 사건 이전이었습니다. 약 1-2 년 전쯤 싱가폴의 부동산 가격은 최고가를 찍었고 그 이후 조금씩 주춤거리며 내리막 추세를 보이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자금 세탁 사건을 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부동산 경기는 전반적인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또 역으로 전반적인 경제 분위기에 따라 부동산 경기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 부동산 가격은 지역적인 편차가 있기는 하나 주거용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요 지역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공급감소세에 집값 폭등 재현 되나-sedaily.com- 2024. 6. 26.)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서는 경제 환경이 너무나 어렵다는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부동산 시세만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자영업자와 소매업을 하는 업자들은 부동산 임대료의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역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은 대전의 성심당 빵집조차도 건물 임대료 상승을 버거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성심당 가게가 입주해 있는 대전 역사의 소유주인 코레일은 단번에 악덕 건물주로 내몰리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성심당 월세 4억 악덕 건물주 비난-hankyung.com- 2024. 6. 19.) 그런데 이 기사를 잘 읽어 보면 한편으로는 코레일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코레일의 자체 내부 규정상 건물의 임대료는 매출의 일정 부분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규정은 일반적으로 코레일 역사(驛舍)에 입주하는 업체들에게 적용하는 임대료 비율로 보입니다. 그런데 성심당이라는 빵집은 흔히 코레일 역사에 입점하는 다름 임차인들과는 수준이 다른 매출을 보이는 가게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심당의 매출에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규정하는 임대료율을 적용하면 엄청난 금액의 임대료가 예상되는 것입니다. 임대료를 금액 기준으로 비교하면 성심당은 코레일 대전 역사에 입주한 주변의 상점들에 비하여 엄청나게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결국 성심당은 그렇게 큰 금액의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겠다고 반발한 것입니다.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빵집을 경영하는 성심당으로서는 당연히 코레일에 재고를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코레일입니다. 코레일은 정부 투자 업체이고 과거에는 철도청이라 불리던 조직입니다. 코레일의 구성원들은 공무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코레일도 철도 사업을 하면서 영리를 추구한다는 면이 조금 다를 뿐, 조직원들의 근본적인 근무자세는 공무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코레일에서 융통성 있게 성심당을 위하여 임대료를 내려주는 협상을 받아들일 턱이 없습니다. 만약 성심당에 임대료를 낮춰주려는 시도를 하였다가는 뒷날 정부 또는 국회의 감사를 받게 되면 누가 무슨 권한으로 규정에 정해진 임대료를 깎아 주었는지, 또 그에 연관된 반대급부를 뇌물로 받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하여 가혹한 조사를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내부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성심당이 대전 역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당당 직원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성심당이 대전역사에서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담당 직원의 잘못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담당 직원은 코레일의 내부 규정을 잘 지켰을 뿐 개인적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도 않았고 부당한 편의를 제공하지도 않았습니다. 코레일의 내부 규정이 잘못 되었으면 잘못 되었지 담당 직원의 잘못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지금처럼 성심당의 임대차 계약 연장에 따른 임대료가 과도하게 높다는 사회적 여론 조성이 서로를 위하여 안전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담당 직원도 규정을 안 지키는 부담이 없고, 성심당도 임대료가 터무니 없이 높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항변할 수 있습니다. 추측컨데 이 상황의 결말은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성심당은 코레일의 대전 역사에서 계속 영업을 하게 될 것이고, 코레일은 예외 규정을 두어 성심당에게 무리한 임대료를 요구하지 않고 적정선에서 타협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담당 직원은 아무런 부담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성심당과 같이 지역에서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업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번 사건은 성심당이 대전 역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진작에 결론이 지어졌을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고 힘 없는 업체였다면 코레일의 내부 규정을 앞세우는 직원 앞에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담당 직원의 입장에서도 규정을 어겨 가면서까지 입주 업체의 형편을 챙겨주는 것이 스스로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는 것인지 알 것이므로 절대로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성심당의 사례는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지면서 차라리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업체들이 규정을 앞세운 앞뒤가 콱 막힌 답답한 상황 속에서 울분을 터뜨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담당 직원이 융통성 있는 일처리를 할 수 있고, 보다 합리적인 규정이 만들어져서 알려지지 않은 사업자들의 영업 환경이 더 나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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