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치맥- 2021. 12. 31.

jaykim1953 2021. 12. 31. 05:51

영어 위키백과(Wikipedia)에서 chimaek을 찾으면 우리나라 말 ‘치맥’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닭튀김(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원(origin)은 한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닭튀김의 기원이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외국인 `최애 한식` 치킨…정작 한국인 절반은 한식 아니라고 답해_mk.co.kr_2021/12/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맥은 우리나라에서 시작하여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 배우가 ‘치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K드라마가 인기 있는 인근 국가들에 퍼졌고, 특히나 중국에서 치맥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위키백과에는 치맥의 기원이 한국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약 20년 쯤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 세계적인 닭고기 튀김 체인인 KFC가 한국에서 유난히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하여 KFC 본사에서 컨설팅 회사를 통하여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KFC가 한국에서 사업이 부진한 이유를 두 가지를 가장 먼저 꼽았습니다. 첫번째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닭튀김을 배달시켜 먹는 문화가 있는데 KFC에서는 그 당시만 하여도 배달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닭고기 튀김을 먹으면서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 그 당시의 KFC 매장에서는 술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본사의 강력한 통제로 인하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어렵다던가 하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기는 하였으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이유는 배달과 주류 판매의 두 가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KFC가 배달도 하고, 맥주도 매장에서 판매합니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어서 이미 시장 점유율을 많이 빼앗긴 뒤가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세계적으로 치맥이라는 상품이 한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까지 생기면서 KFC 튀김 닭의 존재는 점점 취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에는 ‘소주에는 오징어, 맥주에는 땅콩’이라는 안주의 공식(?)이 있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당시에 만에 하나 정부가 규제를 하여서 ‘맥주 안주로는 땅콩만 가능하고 다른 안주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면 치맥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한 동안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땅콩’이라는 안주거리도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어떤 술에는 어떤 안주만 사용하라는 규제를 할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술안주 규제 못지않은 규제가 있습니다. 3주 전에 국내 언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신용대출을 규제하고 있으나 몇 가지 조건에 부합되는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신용대출 규제, 결혼·수술 사유는 예외_chosun.com_12/10/2021) 이 기사를 보면 국내 은행들의 신용 대출 한도를 차주의 소득 이내로 타이트하게 규제하여 왔으나 1월부터는 일부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예외가 허용되는 조건은 본인 결혼과 장례·상속세(배우자, 직계가족까지 포함), 출산(본인과 배우자), 수술 및 입원(본인, 배우자, 직계가족) 등 4가지다.’ 라고 합니다. 본인의 결혼, 장례·상속세, 출산, 수술 및 입원의 4 가지 경우에만 예외가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규제를 하는 방법에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 있고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이 있습니다. 포지티브 방식은 위에 본 바와 같이 허용되는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고, 네거티브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 것을 열거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을 허용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포지티브 방식은 심한 규제, 저개발 국가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네거티브 방식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규제이고 선진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위의 기사에서 열거한 본인의 결혼, 상속세, 출산, 수술 및 입원의 4 가지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지티브 방식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는 금융 규제에 있어서는 후진국입니다’라고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에 담보가 없으면 신용대출을 합니다. 그리고 대출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수만 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 개인마다 별의별 사정이 다 있을 수 있고, 상황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모두 무시하고 정부가 정한 단 4 가지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고, 그 밖의 모든 경우에는 타이트한 규제에 묶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자율 따위는 전혀 논외입니다.

이러니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를 떠나려고 합니다. (관련기사: " 벌고 규제 심하고"…한국서 싸는 외국계 은행들 _economist.co.kr_12/12/2021) 오죽하면 정부의 규제에 꼼짝 못 하는 금융기관들마저 드러내 놓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정상적인 상황 아니다…탄식 쏟아지는 금융업계_hankyung.com_12/14/2021)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 공여하는 신용한도의 연간 증가율까지 규제하고 나선 것입니다. 금융기관이 스스로 자산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하여 저신용도의 대출을 줄여가고 고신용도의 대출을 늘리려 하는 것조차 당국의 규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소주 안주는 오징어, 맥주 안주는 땅콩만 인정한다’는 규제를 연상케 합니다. 이런 규제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치맥’은 영원히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금융계에서는 이러한 규제 밑에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이 가능한 금융기관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금융의 최후진국 수준으로 억누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인 연준(聯準, Fed)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실행합니다. 금리의 변동, GDP 변화, 부동산 가격 변동, 실업률의 변화 등 다양한 조건의 시장 충격 시나리오에 의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통하여 검증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하여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자산 구조의 개선과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물론 금융 선진국에서도 직접적인 규제와 감독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처럼 허용하는 상품을 일일이 나열하고 그 밖의 것은 모두 금지하는 식의 전근대적인 규제는 하지 않습니다.

자산의 건전성을 제고하라고 요구하면서 무분별한 신용대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주의 소득을 초과하는 신용대출은 안 되지만 특별히 열거한 4 가지의 경우 – 본인 결혼과 장례·상속세(배우자, 직계가족까지 포함), 출산(본인과 배우자), 수술 및 입원(본인, 배우자, 직계가족) – 에는 소득의 50% 초과하여 신용대출을 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1억 원을 초과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규제는 정말이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창피한 규제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을 정부 정책의 하부 실행기관 정도로 취급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입니다.

금융은 하나의 산업입니다. 국가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산업입니다. 나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산업이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에서 감독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의 감독이 포지티브 방식의 할 수 있는 업무를 나열하고, 심지어는 금액까지 일일이 정하여주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금융을 산업으로 인정하고 자율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소주에는 오징어, 맥주에는 땅콩만을 안주로 인정하고 그 밖의 안주는 금지하였더라면 오늘날의 치맥은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간섭하고 지시하는 금융으로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부의 이와 같은 규제가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세계 금융 시장의 변방에서 기웃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 금융시장 규모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1. 12. 10. 참조) 이제는 정말이지 질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정부가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지시하는 규제는 피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한 발자국이라도 선진 금융 시장에 접근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