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폴 볼커 (Paul Volcker) - 2022. 4. 29.

jaykim1953 2022. 4. 29. 05:41

1985년 가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인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세계은행 및 국제 통화 기금 연차 총회 (IBRD & IMF Annual Meetings)입니다. 매년 세계은행이라 불리는 IBRD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와 국제통화기금이라 불리는 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가 개최하는 세계은행-IMF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한 번 열리고 다음 해에는 해외에서 열렸습니다. 2년에 한 번씩 워싱턴 D.C.와 해외에서 번갈아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1985년은 해외에서 이 총회가 열리는 해였으며, 그 장소로 서울이 선택되었습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연차 총회는 과거와 많이 달라지기도 하였으나 연차 총회는 계속 열리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세계은행-IMF 총회가 개최됩니다. (2022 World Bank Group/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nual Meetings 참조) 그리고 내년 2023년에는 모로코의 마라케쉬 (Marrakesh, Morocco)에서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됩니다. (Morocco, host country of the 2023 WBG and IMF Annual Meetings 참조) 그리고 총회에 참가하는 기관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세계은행의 산하 기관들 숫자가 늘어나면서 참여 기관의 숫자가 같이 늘어난 것입니다.

1985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은행-IMF 연차 총회는 총회 직전인 1985년 9월 22일에 있었던 G-5 재무장관회의에서 결의한 소위 플라자 어코드(Plaza Accord)로 인하여 더욱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회의였습니다. 플라자 어코드로 인하여 미국 달러화 가치가 인위적으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에 전 세계 중앙은행을 비롯한 전 금융기관이 비상한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세계은행-IMF연차총회 지원단으로 차출되어 미국 대표단(US Delegates)의 연락관(Liaison officer)으로 파견 나가 있었습니다. 미국 대표단은 그 당시 재무장관이던 제임스 베이커 3세 (James Baker III)가 단장이었고, 베이커 재무장관과는 상극으로 알려졌던 폴 볼커(Paul Vlocker) 연준 의장이 함께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커 재무장관은 부인을 동반하였고 폴 볼커 의장은 부인을 동반하지 않고 혼자 왔습니다. 저는 연락관으로서 대표단 일행과 근접한 위치에서 이들과 함께 행동하였습니다. 미국 대사관에서는 총력을 다하여 미국 대표단을 보좌하였습니다. 매일 순번을 정하여 대표단 사무실인 남산의 힐튼 호텔에 외교관 한 사람씩을 파견하여 저와 함께 대표단 일을 보좌하였고, 차량 지원도 하였습니다. 후에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Christopher R. Hill 참조)이 1985년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경제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미국 대표단에 파견 나와 있었습니다. 이 당시 며칠간의 교분을 바탕으로 저는 후일 크리스토퍼 힐 경제 담당관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당시 저를 포함한 미국 대표단 일행은 모두 대표단장인 베이커 재무장관과 연준 의장인 폴 볼커 의장을 가장 최우선 하여 보좌하였습니다. 베이커 재무장관은 폴 볼커 의장보다는 미국 정부 서열상 상급자였습니다. 그러나 폴 볼커 의장도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는 연준의 의장으로서 만만치 않은 권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서 있었던 G-5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회의가 힐튼 호텔에서 열렸었고, 그 회의 준비를 미국 재무성에서 파견 나온 직원과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저도 그들을 도와 회의 자료를 참석자에게 나누어 주고 참석자의 자리를 안내하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을 주무르는 막중한 회의의 생생함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G-5 재무장관 회의 진행 중에는 베이커 재무장관과 폴 볼커 의장의 의견 충돌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두 사람 사이가 안 좋다고는 하여도 사전 조율을 통하여 외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부 불화를 드러내는 것은 피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행정부를 대표하는 베이커 재무장관은 경제 전반의 운용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정권의 인기와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향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치인인데 비하여 폴 볼커 의장은 정해진 임기 안에 자국 통화의 가치를 지켜내고 경제를 건실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와 금융을 다루는 큰 그림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하더라도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들어가다 보면 미세한 의견 충돌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폴 볼커 의장은 그의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고집불통의 소신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이커 장관도 폴 볼커 의장 못지않은 뚝심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은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방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강한 주장으로 부딪치면서 둘 사이의 의견 조정이 쉽지 않았으나, 중앙은행의 통화 및 이자율 관리라는 기능은 폴 볼커 의장에게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였습니다. 1980년대 초 레이거노믹스가 시장에 처음 소개될 즈음에는 시장 이자율이 연 20%를 상회하는 엄청난 이자율 상승을 겪어야 했으며, 이러한 강력한 통화정책은 폴 볼커 의장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초고율의 이자율로 인하여 신음하는 서민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초긴축 상황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은 잡히고 경제는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겉으로는 불안정한 고속 경제성장을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성장의 열매는 속이 비게 되는 악순환을 초고율의 금리로 불과 3~4년 만에 단 칼에 휘어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폴 볼커의 공이 컸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도 성장과 안정의 갈림길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눈덩이처럼 커버린 가계와 기업의 부채로 인하여 금리 인상을 극구 거부하는 정치권이 한 편에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각종 정책적인 지원 명목으로 한없이 늘어난 유동성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고금리를 통하여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통화정책 책임자들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고물가·저성장’ 경고한 이창용, 한국의 ‘폴 볼커’ 될까…5월·7월 금리인상설_chosun.com_2022.4.21.)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2% 수준에 머무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섣불리 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를 하다가는 성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자율을 낮게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이 시작된 시점에 우리나라만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선진 경제를 가진 국가에서 고금리 정책을 쓰면 국가 간 유동성이 선진 경제의 고금리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여 금리가 낮은 우리나라에서 외국 자본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결국 금리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대세입니다. 금리를 인상하면 성장은 더뎌집니다. 저성장에 빠진 우리나라의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무분별한 재정지원으로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마구 늘려 놓은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물을 쏟은 사람들은 정권 교체와 함께 도망갔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성장을 멈추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금리를 조금씩 올려 가는 운용의 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득 25년 전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이 생각납니다. 그 당시 IMF 구제금융 속의 경제위기 파고가 높을 때였습니다. 이때의 TV 토론에서 A 후보가 상대 B 후보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B 후보님,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 위하여 성장이 필요하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B 후보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만약 선거에 이겨서 집권하신다면 성장에 우선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안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상대 B 후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대답을 하였습니다. “네, 저는 안정 속에 성장을 이끌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 12. 10. 참조)

안정 속에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대답한 후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낙선하여 ‘안정 속에 성장을 이끌’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과연 안정 속에 성장을 이끌 어떤 묘책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금리를 올려서 안정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금리를 낮추어서 성장을 유도할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안정 속에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참으로 지혜로운 경제와 통화 정책의 운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에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가 선임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섭니다. 언론에서는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가 키가 190 쎈티 미터가 넘는 장신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2미터가 넘는 장신의 폴 볼커 의장과 같은 뚝심 있는 통화정책 책임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듯합니다. 폴 볼커의 고금리 정책을 경험하였던 당시의 미국 경제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가 폴 볼커 의장과 같은 뚝심의 통화정책을 편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들이 이를 이겨낼 수 있을는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다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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