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영하 18도 - 2016. 1. 29.

jaykim1953 2016. 1. 30. 12:44


제가 서울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오자마자 서울에는 한파가 몰아 닥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1 24일 일요일 아침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영하 18도의 한파라면 저에게 잊지 못할 두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65 12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12 7일에 시험을 보았고 12 12일에 합격자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중학교 입시가 대단한 이슈였습니다. 합격자 발표 하루 전인 12 11일 저녁 라디오 방송에서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각 중학교 합격자의 수험번호를 일일이 불러 주었습니다. 저도 그날 저녁에 긴장된 마음으로 라디오 앞에서 합격자 발표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최고의 중학교라고 하던 K중학교를 지원하였습니다. 제 수험번호는 295. 제 번호 차례가 점점 다가오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나운서는 낭랑한 목소리로 292번을 발표한 다음 제 번호를 건너 뛰고 297번인가 298번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멍해졌습니다.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정신 나간 듯 아무 생각이 없이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잠시 후 바로 1~2 미터 거리에 떨어져 앉아 계시던 부모님들이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저 멀리서 메아리 소리 마냥 왕왕거리며 들려 왔습니다. 저는 혼자 침실로 뛰어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설마 제가 입학시험에 낙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충격이 매우 컸습니다. 부모님이 따라 들어오셔서 저를 위로 하셨지만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마치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하였습니다.

크나큰 실망으로 그날 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 12 12, 저희 선친께서는 저를 데리고 동물원(당시 창경원; 현재의 창경궁)으로 가셨습니다. 한겨울 동물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이렇다 하게 갈 만한 곳이 없다 보니 저희 선친께서는 저를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인적 드문 동물원을 저는 저의 선친과 둘이 걸었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제 손을 꼭 잡고 선친의 코트 주머니에 함께 넣은 채 걸었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날은 추웠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만은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날 제 선친과 제가 나눈 부자지간의 이야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많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제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저희 선친께서 겪으셨던 어려움들, 막막한 현실을 맨주먹으로 헤쳐나가셨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날 제가 느꼈던 제 선친의 손은 아주 따뜻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체온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위로와 응원 속에 저는 후기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중앙중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12 14일이 원서 마감이었고, 12 16일에 예비 소집, 12 17일 필기시험이었습니다. 시험날인 1965 12 17일의 기온이 영하 18도였습니다. 영하 18!

그 전 날 일기예보는 영하 17도라고 예보하였으나 실제로는 영하 18도였습니다. 제 기억을 확인하려고 그 당시의 신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1965. 12. 16. 일기예보: 경향신문-날씨-1965/12/16) 그 날이 얼마나 추웠던지 12 18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라면서 동장군 후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관련기사: 동아일보_날씨-1965/12/18) 영하 10도의 날씨도 추운 날씨이지만 그 전 날의 영하 18도에 비하면 추위가 물러난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추웠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전기 시험에 떨어진 것도 슬프고 심란한데 기온까지 영하 18도로 떨어져 몸도 마음도 모두 얼어붙은 듯 추웠습니다.

다행히 저는 후기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중앙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전기 중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한 것은 불과 만 12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에게는 매우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그리고 후기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참담한 심정에 영하 18도라는 강추위는 저를 잔뜩 웅크려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후기 중학교 입학시험 때에 겪었던 것과 같은 강추위를 다시 두 번째 느끼게 된 것은 제가 군대에 입대하여서입니다. 1974 9월에 입대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기본교육을 받은 후 후반기 교육은 14주 동안 그 당시 원주에 위치하였던 통신훈련소에서 받았습니다. 입대한 날로부터 20여 주 동안- 140일 이상을 훈련만 받았던 것입니다. 요즈음 군에 입대하여 100일 휴가를 나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호강입니다.

제가 후반기 교육을 받던 원주는 산악지역이어서 인지 한 겨울의 추위가 무척 매서웠습니다. 걸핏하면 영하 15~20 도를 오르내렸습니다. 걸핏하면 영하 18도까지 내려 갔습니다. 그 때도 갓 군에 입대한 신병의 얼어붙은 마음에 몸과 마음이 모두 추웠습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도 그만한 혹독한 추위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설사 매서운 추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머무르면서 극심한 추위를 몸으로 느끼는 상황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한창 추위가 심한 한겨울에는 방학 기간이므로 제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외출을 안 하고 집에 머무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였던 지독한 추위의 기억들은 시험에 낙방한 극심한 절망상태, 또는 피할 수 없는 군대 훈련시기에 겪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추위가 더 춥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함께 느꼈던 추위가 있었습니다. 1997년 하반기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IMF 사태라고 부르는 외환보유고 부족사태를 맞닥뜨리던 시기였습니다.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들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과소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제의 어려움에 맞닥뜨리자 소비를 줄이느라 허리띠를 졸라 매어야만 했습니다. 1997년 말 겨울은 기록에 남을 만한 추위가 있었던 해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마음에는 경제 한파로 인하여 더 없이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한 동안 1,000 주위에서 머물던 코스피 지수가 1997년 말 거의 300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998년 상반기에는 300선 밑으로도 떨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우리나라 경제는 때 아닌 한 겨울의 추위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저와 함께 파리바 은행에서 근무하던 제 또래의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는 혈액암으로 6~7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울이 오면 그가 즐겨 하던 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지 그 다음 해 여름에 전염병이 없어요, 겨울이 안 추우면 다음 해 여름에 병이 돌아서 안 좋죠.’

맞는 말입니다. 겨울은 춥습니다. 그리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합니다. 그러나 몸으로 겪는 겨울은 춥더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겨울만은 춥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온도에 따른 추위뿐 아니라 그 때에 처해진 상황에 따라 추위를 더 심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영하 18도의 추위가 있었지만 그저 온도가 낮았을 뿐 우리의 마음 속까지 얼게 만드는 그런 일들은 없었기를 바랍니다. 또 앞으로도 마음 속을 얼게 만드는 추위는 다시 오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