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미국의 슈퍼 보울- 2022. 2. 18.

jaykim1953 2022. 2. 18. 05:31

미국 시간으로 지난주 일요일 2월 13일에는 미국 전체가 열광하는 스포츠 행사인 슈퍼 보울(Super Bowl) 2022 경기가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로스앤젤레스 램스 (Los Angeles Rams)와 씬시내티 벵골스(Cincinnati Bengals) 사이에 벌어진 미국 풋볼 시즌의 마지막 경기입니다. 경기 결과는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23대 20의 스코어로 이겼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면서 로스앤젤레스의 승리를 축하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저 자기가 사는 도시의 팀이 승리한 것에 만족하는 듯하였습니다. 일부 열렬한 스포츠 팬 친구들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한 친구 H는 그리 기쁘지만은 않다고 하였습니다. H의 말로는 씬시내티 벵골스가 슈퍼 보울에서 한 번 우승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경기에 져서 안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씬시내티 벵골스는 1982년과 1989년에 슈퍼 보울에 출전하였었으나 두 번 모두 당시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던 쌘프란씨스코의 포티 나이너즈(49ers)에게 졌습니다. 그리고 이 번 2022년에 세 번째 슈퍼 보울에 출전하였으나 로스앤젤레스 램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모두 세 번의 슈퍼 보울 출전 기회가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일종의 동정심(同情心)이 작동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H가 씬시내티 벵골스가 진 것을 안쓰러워하는 것이 일견 수긍이 갑니다. 미국 풋볼 리그인 NFL (National Football League)에는 모두 32개의 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슈퍼 보울에 출전해 보지도 못한 팀이 4 팀, 출전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한 팀이 8 팀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와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는 각각 4번씩 슈퍼 보울에 출전하였으나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였습니다. H가 씬시내티 팀을 측은히 여기는 심정이 이해가 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뜻하지 않은 함정이 있습니다. 슈퍼 보울에 출전조차 해본 적이 없는 4개의 팀이 있는 것에 비하면 씬시내티 벵골스는 이미 두 번 출전해 보았고, 금년에 또 한 번 출전하여 3번이나 슈퍼 보울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스앤젤레스 램스도 이번에 처음으로 슈퍼 보울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이번 슈퍼 보울에서는 누가 이겨도 처음으로 슈퍼 보울에서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H가 특별히 씬시내티 팀을 동정하는 것이 사실은 크게 설득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씬시내티 벵골스가 이번 슈퍼 보울에서 승리하였더라면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슈퍼 보울에서 승리해 본 적이 없는 팀으로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이좋게 두 팀이 모두 승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상 일이 이렇듯 어느 한쪽에게 기분 좋은 승리를 제공하기 위하여서는 상대방에게 뼈 아픈 패배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승패가 갈리는 상황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가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듯이 한 쪽은 정당한 수익을 보상 받지 못하였고 다른 한 쪽은 과도하게 보상 받았음에도 문제가 없는 듯이 사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대선판에서 자주 회자되는 대장동 개발 사업이 그러합니다. 금융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상황이 마치 패자의 아픔은 승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강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정확한 내부 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을 보더라도 정상적인 건설 프로젝트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화천대유 1000배 수익”…“文 정부 부동산 폭등 호재”_joongang.co.kr_2021.9.15.)

대장동 프로젝트의 주주구성을 보면;

 

- 보통주 (약 4억 원 규모): 시행사 (화천대유) 5천만 원, 특정금전신탁 (천하동인 특수 법인들) 3억 5천만 원

- 우선주 (약 50억 원 규모): 성남 도시개발공사 25억 원, 금융기관(하나은행 등) 25억 원

- 차입금: 약 1조 원

 

위와 같은 구조로 자금이 형성되었습니다.

자본금의 구성부터 특이합니다. 첫째 보통주의 금액이 너무 적습니다. 우선주 금액의 1/10도 안 되는 작은 규모입니다. 보통주 투자자는 만약의 경우에 발생하는 손실을 떠안는 리스크를 부담합니다. 그런데 전체 프로젝트 규모가 1조 원이 넘는 사업을 하면서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을 단지 4억 원만 부담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금액만을 투자하면서 무한의 리스크를 부담한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실 가능성에 대한 대부분의 리스크 부담이 우선주 50억 원에 전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름만 우선주일 뿐 의결권도 주어졌다고 합니다. 우선주에 의결권이 주어졌다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경영 책임을 가진 보통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익을 배분하는 과정은; 차입금의 이자를 가장 먼저 지급하고, 남은 금액으로 주주들에게 수익금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당시 성남시장 측의 주장은 우선주에게는 확정 수익을 지급하기로 하였으니 확정 수익만을 지급한 것이고 나머지 수익을 보통주 주주들에게 배분하였다는 것입니다. 보통주 주주들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간 이유는 그들이 그만큼 손실에 대한 리스크 부담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조 원이 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시행사가 단지 4억 원에 불과한 자본금을 불입하였다면  어떤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도 이러한 프로젝트에는 투자를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젝트 구성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공공성을 앞세운 프로젝트라면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의 프로젝트를 구성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선주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확정 수익을 보장해 주고, 남은 금액으로 무한의 리스크를 부담한 보통주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하여 주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구성을 보면 보통주 투자자들은 프로젝트 규모에 비하여 너무나 작은 리스크를 부담하였습니다. 결코 무한의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성남시장의 주장대로 공공성이 큰 프로젝트였다면 그렇게 큰 금액의 수익을 낼 것이 아니라 공급 가격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어야 합니다.  

슈퍼 보울 경기에서는 승자가 있기에 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주거단지 건설 프로젝트는 승자 패자를 가르는 승부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소요자금 구성의 금융기법을 통하여 투자를 하고 양질의 주택단지를 공급하면서 수익을 올려 투자자들에게 투자 수익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투자 수익은 리스크 부담에 대한 보상입니다. 리스크 부담에 대한 보상을 하려면 제대로 리스크를 부담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하여야 합니다. 1조 원 프로젝트에 4억 원의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은 아무리 금융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납득이 가지 않는 구조입니다. 더구나 단지 4억 원의 리스크를 부담한 투자자에게 수천억 원의 수익을 돌려주는 것은 제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여도 궤변에 불과합니다.

당시 성남시에서는 공공주택단지 사업이라는 공공성이 큰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비정상적인 수익배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를 설계하고 허가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정상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면 할수록 점점 정상적인 프로젝트에서 거리가 멀어지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안 지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 책임져야 할 사람이 이러한 구조가 정상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일을 진행하였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눈 감아 준 것이라면 부정(不正)을 저지른 것입니다.

금융은 승부를 가르면서 어느 한쪽에 승자가 있기 때문에 반대편에 패자가 생기는 영화 게임(零和 game, zero sum game)이 아닙니다. 금융은 리스크 부담을 통하여 수익을 올리고, 수익의 크기는 리스크 부담에 기여한 정도에 의하여 나누게 됩니다. 금융 거래의 결과 패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많은 일반인들이 금융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궤변을 일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무능하였거나 혹은 부정하였다는 것을 자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사건의 해결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못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