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부터 약 2주 동안 저는 이태리 북부를 여행하였습니다. 밀라노를 시작으로 베로나, 피렌체, 베니스, 돌로미티를 돌아서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로 가서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의 공연을 보았고 다시 이태리로 들어와 코모 호수의 벨라지오를 거쳐 밀라노로 되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왔습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이태리를 두루 돌아 보느라 2천 3백 킬로 미터를 운전하였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문물을 경험하는 즐거움도 만끽하였습니다.
저의 첫 기착지였던 밀라노에서 시내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낯익은 간판의 건물을 발견하였습니다. 다름 아니라 Banca Commerciale Italiana 건물이었습니다.
Banca Commerciale Italiana는 줄여서 흔히 BCI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Banca Commerciale Italiana는 그냥 BCI라 부르지 않고 BCI 밀란(BCI Milan)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 BCI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은행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BCCI- Bank of Credit & Commerce Internation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은행도 있었고, 현재는 Banco de Crédito e Inversiones(BCI Bank 홈페이지)라는 남미에 있는 은행도 있습니다. 유사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은행들과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하여서 Banca Commerciale Italiana는 BCI 밀란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BCI 밀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3년 미국의 뱅크 오브 어메리카(Bank of America) 로스앤젤레스 딜링 룸에서 외환 딜러로 일할 때였습니다. 일본 옌화 거래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로커를 통하여 거래를 하고 확인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상대방 이름이 ‘BCI 밀란, 뉴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뒤에 붙은 ‘뉴욕’이라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듣고 밀라노에 있는 은행과 거래가 된 줄 알고 되물었습니다. “밀란?” 하고 되묻자, 상대방 브로커는, “예스, BCI 밀란, 뉴욕”이라고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뉴욕’이라는 말을 확실히 알아듣게 되어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밀란? Or 뉴욕?” 그러자 상대방은, ”BCI밀란, 뉴욕”이라고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두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주고받다가 제가 짜증을 내면서, “도대체 어느 도시에 있는 은행이냐?”고 묻자, 브로커는 “뉴욕에 있는 은행이고 은행 이름은 BCI 밀란”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BCI 밀란, 뉴욕과는 여러 번 거래가 있었습니다. BCI 밀란의 뉴욕 사무실도 일본 옌화를 상당히 활발하게 거래하였던 은행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도 BOA의 명성에 빠지지 않게 나름대로 열심히 일본 옌화 거래를 활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BCI 밀란, 뉴욕과 자주 거래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실 로스앤젤레스의 딜링 룸을 떠난 이후 BCI 밀란이라는 이름을 다시 들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밀라노에 가서 직접 Banca Commerciale Italiana의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을 보니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위 사진에서 제가 서 있는 뒷편의 건물은 불과 3층짜리 그리 높지도 않고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 건물입니다.
제가 밀라노에서 BCI 밀란 건물을 보고 감회에 젖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이 은행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궁금해 지기도 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어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보았습니다. 이 건물이 1894년에 처음 세워진 BCI 밀란의 본점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BCI 밀란은 1999년 몇 개의 은행들과 합병되면서 Intesa BCI가 되었고, 2003년에 Intesa Sanpaolo (Intesa Sanpaolo Group Bank 홈페이지)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BCI 밀란이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은행들과 합병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바뀌면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BCI 밀란은 이제 흘러간 옛 추억에 젖어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나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2003년에 BCI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넘은 과거의 일입니다. BCI 밀란은 은행 경력이 20년 정도 되는 사람조차도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행들의 이합집산이 빈번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연 년 전에 제가 우리나라 은행들의 변천사를 훑어본 적이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9. 14. 참조) 지금은 그 때와 또 달리 많이 변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은행들도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익숙하던 은행 이름들도 이제는 하나 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은행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우스개 이야기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나은행 직원들은 자신들의 은행이 HSBC 라고 합니다. 과거의 하나은행, 서울은행, 보람은행, 충청은행의 네 은행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은행이 지금의 하나은행이고 과거의 하나은행, 서울은행, 보람은행, 충청은행, 이 네 은행의 이니셜을 따오면 HSBC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은행, 보람은행, 충청은행은 이제는 이름조차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은행들이 흡수, 합병을 통하여 없어지고 합쳐지고 또 새로운 은행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은행 산업은 발전해 나갑니다. 한 때는 이탈리아에서 최고, 최대 은행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BCI 밀란도 그런 흡수 합병의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BCI 밀란은 없어졌지만 BCI 밀란의 옛 본점 건물 앞을 다녀와서 과거의 향수에 한 번 젖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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