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가르치는 내용 가운데 미국 헌법의 첫 세 단어를 묻는 질문(What are the first three words of the US Constitution?) 이 있습니다. 정답은 “We the people.” 입니다. ‘국민인 우리는…’이라는 뜻입니다. 한 두 단어를 더 열거하면,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 라는 문장입니다. 즉, ‘미합중국의 국민인 우리는…’이라고 시작합니다. 헌법의 중심이 ‘(미국의) 국민이 우리’ 이며, (미국의) 헌법은 우리가 중심이 되어 우리에 관한 것을 기술한 것임을 상기시키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보기에는 이 말이 그리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미국에는 “We the people”이라는 재단도 있고,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홈 페이지에 만들어 놓은 청원 플랫폼의 이름도 ‘We the people’ 입니다. 지난 번 미국에서 있었던 학교 안에서의 총기 소지 문제에 대한 청원도 바로 이 ‘We the people’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단어 세 개로 함축되는 내용이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입니다.
세 개의 단어에 관하여서는 제게는 또 다른 기억에 남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영어입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교과서에 있던 joke 입니다. “What three words do you use most?” (네가 가장 자주 쓰는 세 단어가 무엇이니?)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I don’t know.” (난 몰라)라고 답하면, “That is right!” (맞았어.)라는 것입니다.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되는 나이 어린 중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I don’t know’ 라는 것을 중의법(重義法)으로 표현한 우스개 말입니다.
제가 금융 관련 업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따금 생각하는 또 다른 세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Let it be.’ 입니다. 금융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제도와 우리나라의 금융제도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차이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을 세 단어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저는 ‘Let it be’ 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60년대 말 영국의 세계적인 팝 뮤지션 비틀즈 (Beatles)가 발표한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가만 놔 둬” 혹은 “(있는) 그대로 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간섭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금융 선진국에서의 금융 산업은 정부의 간섭이 적을 때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금리를 규제하지 않고, 환율에 개입하지 않고, 새로운 상품 개발을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금융이 발전하였습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과도한 자유방임으로 인한 금융소비자 대중에의 파급효과를 감안하여 적절한 규제를 하여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바탕에는 금융 상품에 대한 규제의 강도를 높이기 보다는 시장 규제의 최소화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래 금융의 시작은 사사(私私)로운 두 개인의 계약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그 이후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생겨나면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금융업을 영위하는 사업 모델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에 대하여서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당연히 많은 제약과 규칙이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금융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는 금융기관끼리의 거래에는 정부의 개입을 적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구태여 80년대 영국의 빅뱅 (Big Bang, *주: 1986년에 시행된 규제 철폐 조치. Deregulation 이라고도 불립니다) 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금융 선진국에서의 금융 발전은 규제를 없애려는 움직임 속에서 발전하여 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반면 우리나라의 금융제도는 가급적 모든 것을 규제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금융권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금리, 환율, 수수료율 등 모든 것이 창구지도라는 이름으로 정해져 있었고 모든 금융기관은 정해진 이자율, 환율, 수수료율을 적용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대출 상품에서 우대 금리와 비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업체까지도 지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개별 은행이 심사를 통하여 우대 금리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체에 우대 금리를 적용하여야 하는지 지침이 정하여져 있었습니다. 한 때는 그야말로 규제를 위한 규제가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무늬만 자율 경영인 시절도 있었습니다. 1988년 12월 정부는 금리 자유화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출 금리는 우대 금리 비우대 금리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은행들이 같았습니다. 예금 금리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마치 노예 해방 직후에 스스로 생활을 영위할 능력이 부족한 노예들이 과거에 주인 집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 주던 것을 그리워 하였다는 것에 비유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요? 그러나 여러 과정과 과도기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30여 년 전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제는 나름대로 많이 자율화 되었습니다.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 모습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의 금융 규제는 금융 산업을 어렵게 만든 예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자율 상한선을 낮추려는 정부의 시도입니다. 법정 최고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정하면 모든 금융 소비자가 낮은 이자율에 돈을 빌려 쓰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기 조차 합니다. 법정 최고 금리를 낮추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아예 돈을 빌리지 못하거나, 제도권 밖의 사금융업체에서 더 비싼 돈을 쓰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지난 2001년 99만명의 신용불량자 기록을 일괄 삭제하여 준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연합 2001. 4.20. 신용불량자 99만명)이러한 조치는 금융 산업의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조치였습니다. 신용불량자 기록을 각 금융기관이 보관하고 있으면서 신용 상태가 좋은 소비자는 우대하고 신용불량자에게는 대출을 삼가거나 줄이면서 대출 금리를 높게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부실을 줄이고 정상적인 금융 비즈니스가 가능합니다. 무조건 신용불량자의기록만 없앤다고 신용불량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의의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려면 신용불량자 기록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신용불량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선의의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비단 금융뿐이 아닙니다. 요즈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골목 상권에 관한 정책도 비슷한 궤를 그리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에게 족쇄를 채우고 대기업이 사업을 넓혀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중소기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과점의 경쟁력은 맛 있는 빵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제과점이 대기업인지 혹은 중소기업인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빵이 맛 있고 위생적이기를 가장 먼저 기대합니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결과는 소비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정부가 개입하여 맛 있는 빵의 제조는 뒷전으로 밀리고 누가 빵을 만드는 가에 대한 규제를 한다면 제빵 산업에 관한 한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이 은근히 걱정됩니다.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위하여 통화량을 무제한 증발하겠다고 합니다. 지난 20년의 디플레이션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판단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는 의도, 그리고 통화량 증발, 자국 통화의 의도적인 가치 평가 절하 유도 등은 시장의 흐름에 강한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구태여 브라질에서 과거 40여 년 동안의 통화 가치 하락이 ‘1/2,750조’ 에 이르렀다는 예를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참조: 2011. 11. 18. 금요일 모닝커피 Greek Drachma) 지난 1970년대 우리나라가 겪었던 연 20%를 넘나드는 인플레이션을 되돌아보면 일본의 최근 움직임에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좀 더 신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같은 논리로 우리나라의 금융도 우리나라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주주 가운데에는 외국의 유수 금융 관련 기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 기관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 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이 해외 시장에 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전세계 금융시장의 커다란 하나의 시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 논리, 시장의 법칙에 맞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정부 또는 감독기관의 입 맛에 맞추어 규제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 기관들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만약 금융 기관을 위한 헌법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면 그 시작은 아마도 ‘We the financial institutions’ (금융 기관인 우리는)으로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부나 감독기관이 아닌 금융기관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감독기관과 정부도 규제에 대하여서는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 금융 분야에 대하여서는 ‘Let it be’ 를 허용하게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에 대하여 좀 더 배우고 공부하여 정작 규제가 꼭 필요할 때에 ‘I don’t know.’ 라는 말을 하지 않고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의 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세요, LET IT BE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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