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시작하는 이번 주말은 음력 설날- 구정입니다. 설날이면 가까운 친척들이 한데 모여 새해 인사와 덕담을 주고 받습니다. 때로는 덕담뿐 아니라 아쉬움과 탄식도 함께 나누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에서는 영웅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 말입니다.
반드시 설날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이따금 “왜 우리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틀에 박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심심치 않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잘 못 되어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키워지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교육의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대학을 중퇴하였고, 이렇다 할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에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천재는 천재 스승이 가르쳐서 천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이 훌륭하지 못하여서 훌륭한 인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리 우수한 선생님이 가르쳐도 배우는 학생이 따르지 않는다면 교육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 반대로 제자가 훌륭하면 종국에는 스승을 뛰어 넘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와 같은 이들의 인생을 바라보면 많은 굴곡과 기존의 사회와 사고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일대기 또는 자전적 전기를 보면 마음 속에 남모르는 불만과 야심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저의 추측이 너무 앞서간 것일까요?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낸 것입니다. 기존의 제품과 시스템에 단순한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의 제품과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패러다임의 변화 (paradigm change)라고 부르지 않고 패러다임의 이동 (paradigm shift)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와 같은 이들이 보여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동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가능하였다고 합니다. 학교 교육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고와 창의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세상, 새로운 제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천재성 있는 사람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요? 제 의견이 틀리기를 바랍니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들과 같은 인물이 가까운 미래에 나오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 기성세대 혹은 학부모와 부모님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냉정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여서 자신의 아들이 혹은 자신의 딸이 학업을 중단하고 인도로 명상 여행을 가겠다거나, 이름도 없는 작은 게임회사에 들어가서 1~2년 일해 보겠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이들을 잘한다고 격려하고 훌륭한 결정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주겠습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부모가 자식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훈계를 할 것입니다. 공들여 키워 놓았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한다고 땅을 치며 한탄할 것입니다. 크게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언어 연수차 1년 혹은 길어야 2년 해외 여행을 다녀오되 그 기간 동안 휴학을 하고 돌아와서는 학업을 계속하여야 하는 것을 당연시 할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자기의 아들 딸만큼은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여 탄탄대로의 출세가도를 달리거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전도 앙양한 젊은이가 되는 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 상대자로서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번듯한 신랑감, 신부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듣기 좋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매우 ‘보수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동안 있어 왔던 규범과 원칙에 대하여서는 아주 잘 적응하고 정해진 규칙에 의한 일을 매우 잘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기존의 틀에서 깨어나가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금융 산업이 매우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의 맨하탄 거리에서 아직도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은 (1) 한 국가를 대표하여 고위층 인사들과 교류하는 외교관이거나, (2) 금융 기관 종사자 중 하나일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일반 기업에서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런데도 금융기관에서만큼은, 특히 고객을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일상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있습니다.
비단 넥타이를 매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것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미국의 은행가에서 오가는 ‘보수성향’의 극을 보여주는 우스개 소리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어느 은행의 대출부서에 오래 된 대출관련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대출 상환이 모두 끝나고 서류 보존 연한도 지난 것들도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이를 본 어느 젊은 신입 사원이 이 서류들 가운데 보존 연한이 지난 것들만이라도 폐기하자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상급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흔쾌히 대답하였습니다. “OK, 보존 연한이 지난 것은 모두 폐기 처분 해. 그런데 혹시 모르니까 모두 카피를 해서 한 부씩 남겨 놓도록 해.”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도 매우 보수적입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언급한 제2 금융권의 연대보증도 그러한 예입니다. (관련기사: 2013.1.23. 경향- 제2금융권 연대보증) 대출을 일으킬 때에 누군가 대출에 대한 보증을 하여야만 대출이 가능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행을 끊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20년이 넘었으나 금융 현장에서는 아직도 제2 금융권을 중심으로 그러한 관행이 남아 있습니다. 금융 기관에서 과거의 관행을 없애고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정부와 감독기관의 서슬 퍼런 독려 속에서도 관행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소극적입니다.
금융 기관은 ‘보수적’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꼼수에 가까운 관행을 고치지 않고 숨기려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저와 함께 외국은행에서 근무하였던 직장 동료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하나를 소개합니다;
미국 달러화의 이자 계산에는 1년을 360일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와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가지 경우의 차이를 보면 절로 실소를 머금게 됩니다.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이자를 받을 때-대출 이자의 계산- 에는1년을 360일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즉, 이자 계산의 공식이; [원금 X 이자율 X 실제 경과 일수 ¸ 360] 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1년이 경과하게 되면 이자율의 365/360만큼 이자를 지급하게 되어 5/360에 해당하는 초과 이자를 고객이 부담하게 됩니다.
그 반면 은행이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할 때-예금 이자의 계산-에는 1년을 365일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이 경우의 이자 계산 공식은; [원금 X 이자율 X 실제 경과 일수 ¸ 365] 가 되어 실제로 1 년이 경과하여도 추가 지급되는 이자 없이 약정 이자율만을 정확하게 지급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윤년에는 1년을 366일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이자율을 5% 라고 하고 위의 계산을 해보면, 대출 이자의 실제 이자율은 5.0694% (5% X 365/360) 가 되고, 예금 이자율은 동일하게 5% (5% X 365/365) 입니다. 윤년에는 대출 이자율은 5.0833% (5% X 366/360) 이고, 예금 이자는 그대로 5% (5% X 366/366) 입니다. 결국 예금 이자는 정직하게 이자율 대로 지급하고 대출이자는 눈에 띄지 않게 조금 더 얹어서 받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은 아직도 미국 내의 은행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에서의 이자 계산에서 양편 넣기를 없애려는 정부와 금융 감독기관의 노력은 3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불과 수년 전까지도 암암리에 지속되어 왔습니다. (2013. 1. 4. 금요일 모닝커피 참조: 새해) 언젠가는 금융기관들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그에 적응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다른 산업 분야보다 조금 ‘보수적’ 이어서 받아 들이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뿐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두 아들이 탈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금융기관과 대기업에 무난히(?) 취직을 하여 준 것을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서 제 손자가 행여 잘 다니던 대학을 중도에 그만 두고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한다면 저희 아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내심 제 손자가 후세에 한국의 스티브 잡스 혹은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내 손자는 무난히 좋은 대학 잘 마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서 전도 앙양한 젊은이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꼭 저희 집 안에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 게이츠가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느 누군가의 아들 딸 가운데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 또는 한국의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우리나라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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