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집사람은 형제자매가 모두 5 남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는 처조카들이 많습니다. 촌수로 3촌이 되는 처조카는 모두 9명입니다. 처조카의 범위를 조금 넓혀서 5촌, 7촌까지 넓혀 나가면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납니다. 처조카들의 나이 분포도 50을 훌쩍 넘긴 조카부터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조카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금년에 대학에 입학한 처조카는 고등학교를 2년만에 조기 졸업하였으니 제일 나이가 연장자인 처조카와 가장 나이가 어린 처조카의 나이 터울은 33~34살이나 됩니다.
저의 처가는 조선시대 외척으로 세도를 날리던 ‘안동 김씨’입니다. 뼈대 있는 가문의 전통이 있어서인지 어린 조카들도 중요한 진로 결정을 할 때에는 친척 어른들과 상의를 하곤 합니다. 어찌 하다 보니 저도 처조카들이 의논의 대상으로 하는 어른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 책임감을 느끼면서 처조카들을 위하여 이따금 조언을 할 때도 있습니다.
몇 해 전 제 처조카 중 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자신의 인생 설계에 대한 청사진을 저와 의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수리 통계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 때 제가 그 아이를 위하여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입니다. 약 15억 명의 인구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중국어 가운데에는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 (方言, dialect)이 있어 단순히 중국어라고 지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통신의 발달과 교육의 효과에 힘 입어 표준어인 문화어(文化語, mandarin)를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가 압도적이라고 합니다. 사용 인구가 많은 것으로 2위의 언어는 영어입니다. 약 4~5억 명의 인구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록 5백만 명도 안 되는 인구이지만) 싱가폴 같은 나라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언어 사용 인구를 계산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튼 현재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국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거리에 나가 보면 영어 학원의 간판은 쉽사리 눈에 띄나 중국어 학원 간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전세계에서 영어보다 더 많이 쓰이는 언어는 분명 중국어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어를 배우기 보다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 자신도 중국어는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우스개 소리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8.15 광복 이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진주하자 어느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어려서 겨우 한진서(漢眞書) 깨우쳤는데 이젠 쓸모가 없어지고 새로 양진서(洋眞書)를 배워야 한다고 야단이니 쯧쯧쯧” 하며 세태를 한탄하셨다고 합니다.
한글이 처음 창제(創製) 되었던 시절에는 한글은 대접을 못 받고 오히려 멸시 당하면서 언문 (諺文)이라 불리고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가 제대로 된 글이라 하여 진서(眞書)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 공부를 하려면 진서를 배워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이 땅에 진주하면서 느닷없이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영어가 난무하고, 본 적도 없는 꼬부랑 영어 알파벳이 사방에 씌어 있으니 이를 한자(漢字) 진서에 빗대어 서양(西洋)의 진서라는 의미로 ‘양진서’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영어는 이미 세계 공통어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용어의 많은 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고,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제일 외국어로는 영어를 가장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국민이 모두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시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또 흘러 이번에는 다시 한진서(?)를 공부하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를 단순히 사대주의적인 생각이라고 몰아 부치기에는 전세계가 이미 하나의 시장, 하나의 세상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보다 잘 살고, 앞서 가려는 상업적인 전략에 중국어를 배우려는 것이지, 큰 나라의 힘에 무릎 꿇어서 그 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인구가 13억 또는 14억이라는 것은 중국 시장이 어떤 나라의 시장보다도 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만듭니다. 중국 시장을 상대로 하려면 아무래도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무기가 될 것입니다.
중국의 자본주의적 성격은 천안문 사태 다음 해인 1990년 상해 주식시장 개장 당시에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주식을 사두면 훗날 큰 돈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수 많은 중국 사람들이 상해 주식시장의 개장과 함께 주식을 사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상해시의 현재 인구는 2천2백만입니다- 주식을 사려고 몰려들다 보니 질서유지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 사람들은 거의 줄을 서지 않고 몰려 들었습니다. 경찰이 나서도 통제가 안되자 급기야는 기다란 몽둥이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이가 2~3 미터는 되어 보이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경찰관들이 양쪽에서 사람들을 가운데로 몰아가서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TV 뉴스에 방영된 장면을 보면 그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앞 사람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줄을 놓치지 않고 서 있다가 주식을 사게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터지는 것쯤이야 개의치 않는 듯 하여 보였습니다. 이런 예를 보면 중국 사람들의 상업적 마인드는 가히 서양의 유대인을 무색케 한다고 합니다. 이런 중국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맨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넘치는 중국의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중국의 생명보험 분야는 인수보험(人寿保险: 人壽保險)이라고 부르며, 일찍이 외국의 생명보험회사들이 진출하였습니다. 지금은 중국인수보험 (中国人寿保险股份有限公司) 이라는 중국 현지회사가 중국 내에서 가장 큰 시장 점유율 (약 35%)과 자산 규모- 3,824억 위안 (US$ 614억, 우리 돈 651조 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생명보험 시장이 아직은 성숙기에 접어들기 이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생명보험 시장이 성장을 지속하게 되면 시장 규모는 중국 인구를 감안할 때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삼성생명의 자산규모가 160조 원 (2011 회계연도 말 기준)임을 비교한다면 현재 이미 삼성생명 자산규모의 4배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만 남짓이고, 중국의 인구는 13~4 억 입니다. 생명보험 사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당연히 인구가 많은 시장이 더 큰 시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중국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생명 보험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당연히 매우 클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 대학을 졸업하는 처조카에게 하여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저의 처조카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통계학을 열심히 공부하여 보험 계리인 자격을 취득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단순히 시장의 크기뿐 아니라 보험사업은 성격상 계약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업의 성과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경영의 효율도 높아집니다. 보험에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대수의 법칙(大數의 法則, law of large numbers)이 있습니다. 이 대수의 법칙을 따른다면 당연히 중국과 같은 초대형 시장에서의 보험사업이 제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습득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꾸준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며, 부단히 연습하여야 할 것입니다. 보험계리인 자격 또한 그리 쉬운 자격증 아닙니다. 특별히 통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보험이라는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만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장의 변화를 내다 보며 중국 말과 중국의 생명보험 시장 성장에 대비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권하여 보고 싶습니다.
* 사족: 오늘 따라 문득 30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선친 생각이 납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우리 말은 모국어이니 당연히 유창한 언변을 자랑하셨고, 영어, 중국어, 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셨습니다. 저희 선친께서 보험 계리 공부만 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은 저의 주제 넘은 상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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