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의심- 2015. 11. 6.

jaykim1953 2015. 11. 6. 10:18

예전 TV 프로그램 가운데 반갑다 친구야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0년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 프로그램을 방영해 주는 채널이 있어서 이 프로를 재미 있게 보곤 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옛날 초등학교 (제가 다닐 때에는 국민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과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 중에도 저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밝고 해맑은 친구들이었지만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에게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변하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또는 중,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가운데에는 졸업 후 성공하여 잘 된 친구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생활이 많이 어려워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십여 년 이상 교류가 없다가 이러한 사람들과 갑자기 만나게 되면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반 담임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셨습니다. 자기의 짝과 함께 서로의 집을 방문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각자의 집으로 짝을 데리고 가서 자기 집과 짝의 집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의 짝은 J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J의 집으로 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학교가 끝난 후 J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 내내 J우리 엄마한테 친구 온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는데…’ 하며 불안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유를 모르는 채 J에게 괜찮아 그냥 친구가 집에 놀러 가는 것인데 왜 그래?’ 하면서 안심 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J의 집에 다다르고 나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J가 집에 다다르자 우리 앞에 나타난 J의 어머니는 등에 어린 아이를 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J를 보자마자 달려 나와 J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그러면서 이 놈의 XX야 학교 끝나면 바로 바로 집에 와서 동생 봐야지 뭐하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그 자리에 얼어 붙었고 J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있는 동생을 받아서 자기 등에 업었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 없이 저를 바라 보았습니다.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내일 학교에서 보자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 다음날 J는 제게 미안하다면서 자신의 사정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J의 어머니는 J가 어렸을 때에 일찍 돌아 가셨고 지금의 어머니는 새엄마라는 것이었습니다. J의 아버지는 J가 사는 동네에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고 계시고 새엄마는 동네 가게에서 일을 봐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면 J는 집에 가서 어린 동생들을 봐주어야 하였습니다. J의 동생들은 새엄마가 나은 아이들이고 J만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아이였습니다. J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J의 새엄마는 알게 모르게 J를 학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J에게 그 날은 J가 저의 집으로 가는 날인데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J말을 해도 허락해 주지도 않을 것이고, 일찍 가던 늦게 가던 집에 가면 어차피 또 때릴 텐데 뭘…’ 하며 씨익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방과후 저는 J를 데리고 저의 집으로 갔습니다. J의 집에 비하면 꽤 여유가 있었던 저의 집에서 J는 부러운 눈 빛으로 저의 집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간식도 맛 있게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서둘러 J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J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몹시 불편하였습니다.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저와 고등학교 동창인 H의 이야기입니다. H는 저와 둘도 없는 단짝이었고 2학년 때에는 여름방학에 해수욕장으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였습니다. H는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하였고, 노래도 잘 부르고, 성격도 쾌활하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성적은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대학 입학 시험에 한 번 실패하여 재수를 하였습니다. 재수를 하는 동안 H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H의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H는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습니다. 그런 H를 다시 만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 광화문 네거리 한 복판에서였습니다.

제가 H를 우연히 만났을 때쯤에는 저의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H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가 꽤나 알려져 있었습니다. H가 동창들을 찾아와 어음을 맡겨 놓고 돈을 빌려 갔으나 어음 만기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음은 부도가 났다는 것입니다. H에게 이런 방법으로 10~20 만원에서 많게는 100~200 만원까지 돈을 빌려주고는 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큰 길 한복판에서 H를 만난 저는 반가운 마음에 H에게 제 명함을 건네 주며 연락 한 번 하라고 하였습니다. 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H를 만난 이야기를 하자 제 동창들은 제게 잘 생각하여 H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충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H에게 얼마를 주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 남달리 친한 친구였으니 다른 친구들보다는 오히려 더 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H를 길거리에서 만난 후 꽤 여러 달 동안은 지갑 속에 수표를 준비하고 다녔습니다. 혹시라도 H가 찾아 오면 준비된 수표를 건네려고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H를 길거리에서 마주친지 벌써 25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H는 저를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저와 H를 모두 잘 아는 제 친구 한 사람은 ‘H에게 아마도 최후의 양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너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너한테만은 찾아 오지 않는 모양이다라고도 이야기합니다.

J는 지난 50여 년 동안 소식을 들어 보지 못하였습니다. H와도 25년 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음에는 전혀 소식을 알지 못합니다. 저도 이따금은 이들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이들이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이들이 신용불량자라도 되어 있다면이런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누군가 금융권 사람들은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의심부터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대책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의심이 많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금융권에서 일을 하여 왔기 때문에 의심이 많아져서 J H가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은 고객의 신용도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 때는 우량기업이었던 거래고객들이 어느 날 신용불량상태가 되어 금융기관에 커다란 부담이 되는 예는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인수 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많은 기업들을 보면 한 때에는 최고의 우량기업이었던 KDB대우증권, 현대증권, 동부건설 등이 그렇습니다. (관련기사: 현대증권,동부건설 M&A, KDB대우증권 인수) 그러나 지금은 초라하게 새로운 인수자에게 팔려 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량기업이 내일도 우량기업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금융기관은 항상 거래고객의 신용상태를 감시하기 위하여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모습이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거래고객을 바라본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금융기관 본연의 의무를 착실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도 좀 더 눈을 부릅뜨고 의심의 눈초리로 거래고객들을 지켜보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저의 솔직한 심정은 J H가 모두 잘 되어서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