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記憶- 2020. 10. 23.

jaykim1953 2020. 10. 23. 05:23

얼마 전에 인터넷 social media를 통하여 읽게 된 문장 하나를 소개합니다.

‘What do you want yourself to be remembered for by the people around you who know you?’

조금 복잡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 문장의 뜻은, ‘당신 주변에 있는, 당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의 무엇이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라는 말입니다. 이 글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사람은 자신의 친구들이 스스로 어떤 것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댓글로 알려주면 이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친구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의 댓글로 달린 글들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은 ‘너의 가장 좋은 친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의 우정이 기억되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I’d like to be remembered for the friendship as one of the best friends of yours.)

이 글들을 그냥 읽어내려 가면 지극히 감성적이고 우정 어린 글이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냉정히 바라보면, 댓글을 쓰는 친구가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 best friends-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정을 보여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는 자신이 B에게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우정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B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는 A가 아닐 수도 있고, B의 시각으로는 A가 그리 좋은 우정으로 기억되는 친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가 B에게 원하기를 자신이 가장 좋은 우정을 가진 B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면 B는 어찌 하여야 할지 곤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당신 주변에 있는, 당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의 무엇이 기억되기를 원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 바람직한 모습, 남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행동, 훌륭한 인품 등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 세상에는 그렇게 좋은 점들을 갖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지 않은 면을 기억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이 기억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나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미래에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잊혀지고 싶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다릅니다. 금융 현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합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지나온 행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업성이 있는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빌려 주는 입장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리저리 살펴 보며 행여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그 사람의 지나간 행적 가운데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부분, 부정적인 면을 조심스럽게 주목할 것입니다. 돈을 빌리는 것 뿐이 아니라 모든 금융 거래는 한나의 약속이며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에 대하여 과거의 행적과 성향을 면밀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1970~90 년대의 우리나라 금융은 심사라는 기능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사부라 불리는 부서에서는 여신 고객의 부도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으로 쫓아가서 각종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주업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사부에는 자연스럽게 법을 전공한 직원들이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여신 고객에 대한 사전 심사의 기능은 없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 18. 참조) 그 당시의 기업 여신은 대부분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대상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신을 제공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신용상태를 심사하기 보다는 정부 정책의 가이드 라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여야 하였습니다. 사실은 이 당시 외국은행도 조금은 어수룩한 면이 있었습니다. 고객의 말을 쉽게 믿어 주고 고객의 사업을 좋게만 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경향으로 인한 좋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예를 한 가지 되짚어 보겠습니다.

1970년대 말 국내에서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혜성과 같이 나타난 Y 재벌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 그룹에는 무역, 건설, 금속 회사 등의 주력 기업이 있었으며, 해운사업에 막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선박 매입을 위한 금융이 필요하였고, 선박 금융은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액의 외화 여신이어서 국내 은행들이 쉽사리 취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Y 해운의 임원 한 사람이 제가 근무하던 Bank of America 를 찾아 왔습니다. 이미 영문으로 잘 준비한 사업계획서를 들이밀면서 여신을 요구하였습니다. 서울 지점 내부에서는 사업성 검토 결과 긍정적인 결론을 냈습니다. 검토 과정에서 Y 사의 임원은 하루 종일 은행 지점에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즉석에서 시원시원하게 답하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신을 일으키려면 일본에 있는 지역 본부의 승인이 필요하였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 Y사의 임원은 지역 본부에 보내는 승인 서류를 준비해 주면 자신이 들고 동경으로 가서 직접 설명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서는 내부 회의를 거치고 동경의 지역 본부에 전화를 하여 서류를 밀봉하여 Y사 임원에게 들려서 동경으로 보냈습니다. Y사 임원이 아침에 지점으로 자료를 들고 찾아와 대출 상담을 하고 담당 심사역, 부지점장, 지점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동경 지역 본부로 전화를 하여 다음 날 Y사 임원이 찾아 가기로 약속을 마친 시간이 오후 은행 문을 닫을 즈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Y사 임원은 첫 비행기로 동경으로 날아가서 동경의 Bank of America 지역 본부로 찾아가 밀봉된 심사 서류를 전달하고 즉석에서 지역 본부 심사역들의 추가 질문에 답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임원의 영어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서 그 때 이 임원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던 동경 지역 본부의 심사역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었습니다. 어쨋든 전광석화와 같이 심사가 진행이 되었고, Y사 임원은 당일로 동경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이미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에는 Y 해운에 대한 대출 승인 텔렉스가 도착하였습니다.

Y 해운은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서 대출을 받은 후 1 년도 채 되지 않아서 부도가 나서 다른 대형 선박운용사에 인수 되었고, Y 그룹은 해체 되어 공중 분해 되었습니다. 그 이후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은 동경의 지역 본부로부터 심사 승인을 받아 내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Y 사의 경험에 의한 학습 효과인지 모든 심사 자료는 일단 진위 여부를 의심 받았고, 기업의 설명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Y 사가 기대하였던 것은 은행이 Y 사를 전도앙양한 젊은 사업가들의 패기 찬 기업으로 기억 되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은행에서는 Y 사의 이름은 거의 해적 수준의 속임수와 거짓으로 가득 찬 사악한 집단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흔히 쓰이던 말로 ‘철없는 젊은이들의 재벌 놀음’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Y 그룹의 총수는 훗 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하여 커다란 재벌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족함 없는 넉넉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만약 ‘당신 주변에 있는, 당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의 무엇이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답할는지 궁금합니다. 그도 아마 자신은 성실한 기업가였으나 시대를 잘 못 만나고 운이 없어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하였던 것으로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를 기억하는 일반인들이 과연 그가 기대하는 것 처럼 그를 기억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Y사,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Y사의 임원은 매우 유능하고 실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가 위하여 일하였던 기업이 과연 그가 은행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밝은 미래를 가진 사업성 있는 기업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실력이 있었던 것에 비하여 도덕성은 매우 결여 되었고, 그러기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아무런 스스럼 없이 은행의 심사역들 앞에서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반드시 의식하여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나의 모습이 무엇으로 비쳐질 것인지는 한 번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의 Y 사 임원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일, 떳떳지 못한 일은 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