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듣기 어려운 말 가운데에 ‘달라 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좀 더 실감 나게 이야기하려면 ‘딸라 변’ 이라고 된 소리를 내어서 발음합니다. 이 말은 우선 미국 통화 달러(dollar)와 이자(利子)를 의미하는 변리(邊利)의 줄임 말인 변(邊)이 합하여져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요즈음 말로 바꾸면 ‘달러 이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달라 변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습니다. 달라 변이란 실제로 달러화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아니고 마치 달러화와 같이 구하기 힘든 돈을 구하여 쓴다는 의미에서 구하기 힘든 만큼 이자도 높은 고리(高利)의 사채 (私債)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1960년대의 미국 달러화 이자율은 5% 미만이었습니다. 대출 이자율은 5% 전후였고 예금 금리는 그보다 더 낮았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5%를 넘어섰습니다. 그 반면 그 당시 우리나라 원화의 이자율은 정기예금 금리가 12~15% 였으며, 대출금리는 표면 금리가 15% 전후를 오갔으나 실제 실효금리는 20%를 넘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실제 달러화의 이자율이 우리나라 원화의 이자율보다 훨씬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던 달러 변은 월 3~5%, 연 36~60%의 초(超) 고금리 악성 채무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달라 변을 쓰는 주체가 반드시 개인들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때는 기업들도 하루하루의 유동성 부족에 쫓기다가 급기야는 달라 변을 땡겨서 쓰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1972년의 8.3 조치를 유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11. 23. 참조) 이 당시 기업이 쓰던 사채의 이자율을 일률적으로 연 15.5% 수준으로 낮추도록 강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기존 사채 금리의 1/3 수준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기업이 쓰던 달라 변은 연율로 환산하면 45~50% 수준의 매우 높은 고금리였습니다.
그런데 금리와 실물경기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합니다. 경기가 좋고 활황일 때에는 금리는 상승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안 좋을 때에는 금리가 떨어집니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이자 부담을 많이 하더라도 자금을 빌려서 사업을 하여 돈을 잘 벌 수 있으므로 이자율이 높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돈을 빌립니다. 이렇게 빌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자율은 다시 더 오르게 됩니다. 경기가 좋을 때에 이자가 오르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그 반면 경기가 좋지 않으면 자금을 빌려서 섣불리 사업을 하다가 이자 부담도 이겨내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기가 안 좋을 때에는 대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듭니다. 대출 수요가 줄어들면 대출의 가격인 이자율은 당연히 낮아지게 됩니다. 금리와 실물 경기의 상관 관계에 대하여서는 이미 여러번 이야기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8. 7. 6. 참조)
그런데 최근에 금리와 부동산 경기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담당 장관이 언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김현미 "최근 전세난은 저금리 때문"…또 '부동산 남탓') 이 기사를 보면 시중에 늘어난 유동성이 전세 시장으로 몰리면서 전세난이 비롯되었고, 거기에 전 정부에서 풀린 부동산 규제로 인하여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잘 못된 진단으로 보입니다. 일단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 넘쳐나는 돈의 일부는 당연히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으로 전세 가격이 상승하였다는 것은 조금은 갸웃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이 유입되면 그 자금은 투자의 목적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부동산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면 전세라는 거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기는 합니다만- 부동산에 투자를 목적으로 전세 거래를 하지는 않습니다. 전세를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 살아 가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衣食住) 가운데 하나인 주(住)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유동성이 풍부하다고 하여 전세를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유동성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부동산 매입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시장을 왜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저금리로 인하여 유동성이 풍부해졌고, 그 때문에 전세시장에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은 조금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선진국의 예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자연스럽게 주택 구입 수요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집을 많이 짓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통계는 housing starts 와 new home sales 입니다. Housing start 란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건축허가를 받은 건수의 통계입니다. New home sales 는 새로 지어진 집이 몇 채나 팔렸는가를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먼저 new home sales 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주택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게 되면 뒤따라서 housing start 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데에는 건설 기간이 필요하므로 housing start 는 앞으로 2~3 년 앞을 내다 보고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통계를 보면 현재의 주택 시장 상황과 향후 2~3 년 또는 3~4 년 후의 주택 시장을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이 당장 내일 정부가 어떤 규제를 새로 도입하고, 관련 규정을 어떻게 바꾸려는지 예측이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주택시장과는 많이 다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0. 9. 18. 참조)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려는 우리나라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은 번번히 과녁을 빗나가는 화살처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새로운 더 강력한 추가 조치를 유발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주택 시장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효과가 나타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부작용이 너무나도 큽니다. 속전속결의 조치를 취하려 하기 보다는 긴 안목으로 주택의 건축 기간을 감안하여 중장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긴 호흡으로 깊이 숨을 들이 마시면 더 강한 숨을 내 쉴 수 있듯이 길게,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주택시장에서는 당장 눈 앞에 드러나는 효과를 기대하고 내어 놓은 정책은 기대만큼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주택 시장에서 벌여 온 정책들이 이러한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정부는 각종 세금을 대폭 인상하여 부동산 시장에서 유동성을 거두어 들이려는 듯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금융 규제를 통하여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부동산 보유자들은 자신의 거주지를 지키기 위하여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유동성 차입의 길은 막혀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보유자들은 까딱하다가는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동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달라 변을 다시 써야 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아닌 드러내 놓고 수요와 공급 모두를 짓누르는 양상입니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막히게 되면 기존의 부동산 보유자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만에 하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부동산 담보 대출을 안고 있는 많은 금융기관들은 담보가액이 부족한 부실 대출이 발생하게 되어 금융시장에도 작지 않은 충격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마도 지금의 정부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효과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이 과도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고 옥죄게 되면 어느 정도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고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언론에서 예상하는 수준의 부동산 관련 세금 상승이 현실로 다가 온다면 부동산 시장은 괴멸되고야 말 것입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20/11/04_10년 뒤엔 보유세가 4배)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는 제도권 금융이 아닌 사채 시장에서 달라 변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것이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정부가 빨리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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