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설득 (說得)- 2022. 1. 21.

jaykim1953 2022. 1. 21. 05:50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여러 가지 단위가 사용됩니다. 길이, 넓이, 무게, 부피 등을 재는 단위는 각각의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단위가 사용됩니다. 길이를 잴 때에는 미터, 쎈티 미터, 킬로 미터 등이 쓰이고, 넓이를 잴 때에는 평방미터, 평방 킬로 미터 등이 쓰입니다. 이러한 단위는 흔히 미터법이라고 부릅니다. 미터법을 사용하게 되면, 길이는 미터, 넓이는 평방미터, 무게는 그램, 부피는 3평방 미터를 각각 사용합니다. 그런데 모든 나라에서 모든 상황에 다 미터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쉬운 예로 미국에서는 거리는 야드(yard)와 마일(mile) 등을 사용하고, 무게는 파운드(pound, lb), 온스(ounce, oz) 등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넓이는 평방 피트(square feet), 에이커(acre) 등을 사용합니다. 나라마다 관습에 따라 사용하는 단위가 다릅니다.

단위의 사용을 세계적으로 통일하려는 노력은 여러 번 시도되었으나 각국의 관습과 생활 패턴에 따라 쉽사리 통일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대부분의 경우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아파트의 면적에는 아직도 일상적으로 평(坪)의 개념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30평대, 40평대 크기의 아파트가 더 익숙하게 인식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 미터법이 제도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0년대 초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미터법이 도입되었으나 아직도 아파트 면적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평이라는 단위가 익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한 번 주입된 개념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미국의 항공우주국인 NASA에서도 미터법을 사용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NASA도 미터법을 사용한다_Sciencetimes_2007/01/22)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미터와 그램보다는 야드와 파운드가 더 많이 쓰입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지난 1999년 1억2천500만 달러가 투입된 NASA의 무인 화성기후궤도탐사선(MCO)이 화성에 도착한 직후 폭발해 버린 원인이 어이없게도 두 단위의 혼선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 문제는 심각한 검토 대상이 됐다. 당시 사고는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사가 탐사선의 제원을 야드 단위로 작성했으나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조종팀이 이를 미터법으로 착각, 탐사선을 훨씬 낮은 궤도에 진입시켰다. 그 결과 대기권과의 마찰을 견디지 못한 탐사선이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단위를 통일하여야 한다는 의견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느 단위로 통일하느냐 하는 문제에 다다르면 각기 자신이 익숙한 단위로 통일하기를 원합니다. 미터를 단위로 사용하는 유럽 대륙은 미터를 쓰기를 원하나 미국 등 마일과 야드에 익숙한 쪽에서는 마일과 야드를 사용하기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득의 노력 가운데 하나가 미터법은 십진법으로 이루어져 있어 계산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 야드는 3 피트(feet)이고, 1 마일은 1,760 야드입니다. 이렇듯 십진법이 아닌 복잡한 단위의 구성으로는 계산이 쉽지 않다는 불편함 때문에 미터법으로의 통일을 주장하는 쪽이 논리를 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바로 반론에 부딪칩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1 시간은 60분, 1 분은 60초이고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계산은 십진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십진법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가 취약해지게 됩니다. 어차피 거리, 시간이 연계된 계산에는 십진법의 논리가 먹혀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단위를 상대방에게 요구하기만 할 뿐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1970년 초에 영국에서 십진법의 파운드화 단위를 도입하기 전에는 영국의 화폐 단위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70년 이전에 쓰이던 1 파운드는 20 쉴링(Schilling)이고 1 쉴링은 12 펜스(pence) 여서 240펜스가 1 파운드였습니다. 5 쉴링을 1 크라운 (crown)이라고 불렀고, 1/2 크라운은 하프 크라운(half crown)이라고 불렀으며, 1 하프 크라운은 2 쉴링 6 펜스이고, 30펜스이며, 1/8 파운드였습니다. 또한 1/2 페니는 halfpenny라고 표기하고 헤이퍼니 [heɪpəni] 라고 읽었습니다. 이 당시의 금액 계산은 웬만한 머리로는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영국 사람들은 파운드가 십진법으로 바뀐 다음에 태어난 것을 고마워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어 오던 영국 파운드화의 복잡한 단위가 십진법으로 단순화한 것이 불과 50여 년 전인 1970년입니다. 지금은 단순화한 십진법 단위의 영국 파운드화 계산이 쉽고 편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1970년의 영국 파운드화 10진법 개정에도 저항은 있었습니다. 전통을 존중하는 보수적인 영국의 사회 분위기 아래에서 그동안 잘 써오던 단위를 왜 애써 바꾸려 하느냐고 하는 불만이 없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사리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의회에서 십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고, 결과적으로 영국 파운드화의 십진법 개정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던 면적의 단위인 평은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 평=3.3 제곱미터입니다. 정부의 강력한 지침과 단속으로 이제는 아파트라던가 주택의 면적을 표시할 때에 평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단위 면적당 가격을 이야기할 때면 3.3 제곱미터당 얼마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관련기사: 분양원가 공개… 3.3m²당 975만~1076만원_donga.com_2022. 1. 18.) 그야말로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평당 가격이라는 용어에서 ‘평’을 ‘3.3m²’라고 표기할 뿐 내용은 평당 가격을 의미합니다. 제대로 미터법을 적용한다면 1m² 당 가격을 표기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이를 부득불 3.3m² 당 가격으로 표기한다는 것은 결국 ‘평’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평’이라는 단위가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지침을 정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일반인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여 ‘3.3m²’라는 단위가 ‘평’을 대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평이라는 면적 단위가 뿌리 깊게 남아 있듯이 무엇인가 새로운 단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여간하여서는 기존의 개념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를 납득할 수 있게 설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 될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정부의 지침을 지켜야 하므로 ‘평’이라는 단위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평’이라는 단위를 면적을 가늠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에는 주 4일제 근무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대선주자들이 주 4일제 근무에 대한 공약을 내고 있고, 금융노조를 위시한 노조에서 환영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은행노조 “임금 깎지말고, 주4일 합시다”_chosun.com_2022.01.020.) 현재의 주 5일 근무에서 주 4일 근무로 전환하게 되면 정확히 20%의 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근무시간의 감소는 임금의 하향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노조 측에서는 임금을 깎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줄어든 근무시간을 보완하기 위하여 추가 인력을 채용하라는 주장을 노조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금융기관 고용상황을 보면, 많은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을 위하여 조기 퇴직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금융기관 고용형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소위 철밥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어 은행에서도 직원들을 조기에 퇴직시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관련기사: 40세 이상, 명퇴금 3억원…신한 하나은행 특별퇴직 실시_mk.co.kr_2022. 1. 3.) 노조는 주 4일제로 줄어든 노동 시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추가 인력을 충원하라고 하지만, 경영층의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마당에 추가 인력을 뽑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일 것입니다. 노조와 금융기관의 경영층 사이에는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노조는 과거의 철밥통이라는 직장 이미지를 지키려고 할 것이고, 경영층은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이를 구조조정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마치 단위의 변화를 가져오듯 주 5일제 근무에서 주 4일제 근무로 전환하게 되면 노조와 경영층 사이에 서로의 논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연히 어느 한 쪽이 무리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주 4일제 근무는 표류하고 제대로 도입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평’이라는 단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여도 ‘평’이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을 뿐 ‘3.3m²당 가격’과 같이 실제적으로는 평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 4일제 근무를 도입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강제하여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날 수도 있습니다. 노조와 경영층이 서로 상대방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공연히 대선주자들이 나서서 주 4일제 근무를 기정사실화하고 어느 한 쪽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향으로 지침을 정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