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느 독립유공자 한 분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성함은 노태준 선생입니다. 이분은 1911년생으로 저의 선친과 나이가 같습니다. 노태준 선생의 부친은 노백린 장군입니다.
노백린 장군은 구한말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사관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후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기도 하였으나 곧 귀국하여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구한말 대한제국 군대에서의 그의 마지막 계급은 대령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의하여 대한제국이 강제로 합병되자 만주로 떠나가 그 곳에서 광복운동을 하였습니다. 1914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비행 조종 훈련을 받고 직접 비행기 조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찍이 공군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해외 동포들의 성금으로 공군 창설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군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후에 상해 임시 정부에 합류하여 군무총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1926년 51세의 나이에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노백린 장군의 둘째 아들이 노태준 선생이십니다. 노태준 선생은 철기 이범석 장군의 휘하에서 광복군 지대장을 역임하였고, 해방후에는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조선민족청년당(일명 족청- 族靑)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범석 장군이 국무총리 시절에는 그의 비서실장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노태준 선생의 형님은 경성 치과의학교 (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의 전신)를 졸업하여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해방후 육사 8기로 입학하여 임관후 치과 군의관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노태준 선생의 누님은 세브란스 의과대학에서 간호원으로 일하였고 남편이 이원재 선생입니다. 이원재 선생은 노태준 선생의 매형입니다. 그리고 이원재 선생의 여동생이 이원숙 여사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분의 이름을 나열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이 아마도 노백린 장군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원숙 여사입니다. 혹시 이원숙 여사의 이름을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음악가 삼 남매 정트리오는 아실 것입니다. 이원숙 여사는 정트리오의 어머니십니다. ('정트리오' 키운 자식교육의 신화, 이원숙씨 별세 - mt.co.kr-2011. 5. 17. 참조) 이원숙 여사는 일찍이 명동 시공관 (* 주: 후일에 국립극장으로 바뀜) 바로 앞에 ‘고려정’ 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였습니다. 이원숙 여사는 초기에는 고려정 사장님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후에는 정트리오의 어머니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노태준 선생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일찍이 부친을 잃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때 그의 매형인 이원재 선생께서 노태준 선생을 동생처럼 보살펴 주셔서, 노태준 선생은 누님의 집에서 매형의 보살핌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상해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으로 투신하여 그의 선친 노백린 장군의 기백을 이어갔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철기 이범석 장군이 국무총리 시절 그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것 이외에는 정부 직책을 맡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 때 신문사를 창간하여 언론 사업을 하기도 하였으나 해방 직후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사업을 접고 칩거하였습니다. 약주를 즐겨 하면서 저의 선친과는 동갑내기 술 친구로 자주 회동하였습니다. 중국어에 능통하였고 키는 크지 않지만 당당한 체격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종로통에 있는 기원으로 출근하다시피 하여 바둑을 즐겼습니다. 그의 바둑 실력은 3급 수준이었으며, 마작도 즐겼습니다.
1968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노태준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한 치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노년의 노태준 선생은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이 직장을 다니며 그의 생활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가 환갑도 되지 않았던 1970년 59세의 나이에 그는 저녁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잠들듯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에 불편한 것, 못 마땅한 것이 있어도 못 본 척하고 참고 지내던 그의 성격처럼 조용히 혼자서 마지막을 맞이하였습니다. 종점에 다다른 버스에서 운전 기사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도중에 버스 뒤쪽에 앞 좌석 등받이를 잡고 앞으로 쓰러져 있는 노태준 선생을 발견하였습니다. 버스 기사가 발견하였을 때에는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다음이었습니다.
1926년 상해에서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부친 노백린 장군이 쓸쓸히 혼자서 생을 마감하듯이 노태준 선생도 버스 안에서 쓸쓸히 그의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노백린 장군과 노태준 선생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독립 운동에 매진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쓸쓸하게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두 분은 모두 국립 현충원 동작동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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