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아침 이슬- 2024. 7. 26.

jaykim1953 2024. 7. 26. 06:15

지난 월요일, 22일 아침 인터넷 뉴스에 속보가 떴습니다. 제목은 “아침 이슬 김민기 별세” (관련기사: 아침 이슬 김민기 별세…향년 73세_hankyung.com- 2024. 7. 22.) 김민기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김민기씨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 당시 저와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형님이 김민기씨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미대에 함께 입학하였다고 합니다. 저의 친구 형님과 김민기씨는 ‘도비두’라는 이름으로 듀엣을 이루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비두는 ‘도깨비 두 마리’의 준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독특한 괴짜 두 사람을 같은 학과 학생들은 도비두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두 사람이 서울 음대에 재학중이던 1년 선배 김광희씨와 함께 미국의 팝송 가수 피터 폴 앤 메리 (Peter Paul & Mary)를 모방하는 두 남자와 한 여자 보컬 팀을 구성하여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공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김광희씨는 후에 세노야, 가난한 마음 등의 노래를 작곡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7 4. 25. 참조)
김민기라는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 당시 재수생이었던 양희은에게 그의 곡 ‘아침 이슬’을 취입시키면서 입니다. 그 때까지의 대중가요와는 다른 신선한 노래 스타일로 젊은 층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 이후 김민기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을 타이틀로 하는 음반이 나왔고 그 음반에는 많은 새로운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김민기 작사 작곡으로 알려졌으며, 그 음반에 실렸던 아침 이슬은 물론이고 친구(친구- 김민기)는 김민기의 대표 곡으로 불릴 만큼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김민기 라는 이름은 수많은 방송 금지곡의 작곡가이자 저항 가요의 가수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저항의 근성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노골적으로 저항을 드러내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은유적으로 부드럽게 부조리한 면, 어긋난 인과 관계,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읊조리기는 하나 저항과 대립을 자극하는 투쟁적인 표현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 독재 시절에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그의 노래를 해석하여 방송 금지곡으로 만들고 그를 반정부 세력으로 몰아 부쳤었습니다. 아마도 군부 정권의 이러한 탄압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반항과 저항의 싹을 키우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군부 정권의 탄압을 받는 동안 노동 현장에 취업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상록수’라는 노래입니다. (상록수 - 김민기) 그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것을 노래로 표현하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마이너리티(minority)에게 시선을 돌려서 그들의 상황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가운데 즐겨 들었던 그의 작품은 ‘종이연’이라는 노래입니다. (종이연- 김민기) 이 노래는 처음에 ‘혼혈아’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검열을 거치는 과정에서 제목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주한 미군의 위안부가 낳은 아이가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엄마는 없어지고 편지 한 장이 덩그라니 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아이는 그 편지를 옆 집 아저씨에게 들고 가 읽어 달라고 하자 그 아저씨는 편지를 읽고 한숨을 쉬면서 엄마는 헬로 아저씨 따라서 떠났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자 이 아이는 종이연을 높이 날리며 혼자 남겨진 슬픔을 달랩니다.
김민기씨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종이연에서는 홀로 남겨져 버려진 혼혈아의 슬픔을 읽었습니다. 상록수에서는 서럽고 쓰린 지난 날만 있을 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손을 잡겠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김민기씨와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어두운 구석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개발 독재의 시대에는 그런 어두운 면을 노래하는 김민기의 노래가 집권자의 눈에는 거슬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의도하지 않게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집회에서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대표 곡으로 알려진 아침 이슬이 불리고 그런 상황이 그를 더욱 탄압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티스트로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연극계에서 학전이라는 무대를 30년 이상 지켜온 기둥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김민기씨의 음악을 들어 보면 그가 꿈꾸었던 사회는 어떠했을까 상상해 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작은 연못(작은 연못- 김민기)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작은 연못 안에서 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한 마리가 죽게 되면 그 물이 썩어 들어가서 아무도 살지 못하는 연못이 되고 맙니다. 두 마리 물고기가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면서 깨끗한 연못을 오래 지키는 것이 그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김민기라는 분이 예술이 아닌 금융 분야에서 일을 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저 혼자 해 보았습니다. 그에게 어울리는 금융분야의 일감은 미소금융(微小金融, microcredit)일 것입니다. 미소금융은 소액 대출을 바탕으로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대상으로 금융업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소금융은 주로 영세사업자 또는 자본력이 열악한 초기 사업자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하여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아마도 김민기씨가 금융업을 한다면 이러한 미소금융을 영위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듬어 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의 미소금융은 그의 노래 제목 처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 방울 아침 이슬이 되어 영롱하게 빛났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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