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문득 ‘새해’라는 단어를 곱씹어 봅니다. ‘새해’라는 말은 ‘새’ (新)라는 관형어와 ‘해’ (年)라는 명사가 결합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해’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아주 오래 전에는 ‘새 해’ 라고 띄어 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하나의 합성어로 인식 되면서 ‘새해’라고 붙여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 말은 아름답고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원래의 아름다운 우리 말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젊은 층의 언어 습관에 의하여 많이 변형되었습니다. 우리 말이 잘 못 사용되고 있는 사례 몇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꼬시다: 이 단어는 흔히 이성을 유혹한다는 의미의 동사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우리 말 표현은 ‘꼬이다’입니다. 사전에 ‘꼬시다’라는 단어를 찾으면 고소하다는 말을 경상도 방언으로 ‘꼬시다’라고 하고 충청도에서는 ‘고숩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켠 구석에 ‘꼬이다의 잘 못된 표현’이라는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입에 ‘꼬시다’라는 말이 굳어 버린 지금 젊은 사람들이 ‘이성을 꼬인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꼬시다’라는 표현은 제 또래의 사람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들어설 무렵인 40여 년 전에 시작된 표현입니다. 엄밀히 보면 젊은 시절에 언어를 잘 못 사용한 저희 세대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세월이 좀 더 흐른 뒤에는 표준어로 굳어 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2. 쎄련: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고 하는 아나운서들조차도 ‘쎄련’이라고 발음합니다. 세련(洗鍊)을 ‘세련’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아마도 저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련’이라고 발음하면 ‘쎄련’ 되어 보이지 않는지 모두들 ‘쎄련’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우리 말 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는 ‘세련’입니다.
3. 거짓말 시키다: 이 말은 이미 50년 가까이 사용되어 온 잘 못된 표현입니다. ‘시키다’는 사역 동사입니다. ‘갑이 을에게 심부름을 시키다’ 와 같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 애가 네게 거짓말 시켰다’ 라고 말한다면, 이는 ‘그 애’ 가 ‘너’ 에게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거짓말을 한 사람은 ‘네’ 가 되고 ‘그 애가 너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는 뜻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사용법은 잘 못된 어법입니다. ‘거짓말 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가 무언가 거짓을 이야기하면 제게 ‘거짓말 시키지마!’ 라고 하지, ‘거짓말 하지마!’ 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4. 거칠은 벌판으로~: 운동경기의 응원가로 자주 쓰이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라는 노래는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칠다’ 라는 단어는 ‘ㄹ’ 변칙 형용사로서 관형어로 쓰일 때에는 ‘ㄹ’이 탈락하여 ‘거친’ 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거친 벌판’ 이 맞는 표현입니다. 과거에 TV 외화 시리즈 가운데 ‘날으는 원더 우먼’ 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하늘을) ‘나는 원더 우먼’ 이 맞는 표현입니다. ‘날다’ 는 ‘ㄹ’ 변칙 동사입니다. 최근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 노래 가사 가운데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날으는’ 놈이 아니고 ‘나는’ 놈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우리 말이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리 말을 지키자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또 보다 합리적인 표현을 하여야 할 때에는 우리 말도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논리적인 설명을 할 때에는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마시오’ 라는 표현에는 ‘술 마시는 것’ 과 (and) ‘운전하는 것’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말의 연결형 어미 ‘~고’ 는 대체로 and 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크고 무거운 짐’ 과 같이 or 의 의미로 사용되는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크고 무거운 짐은 가지고 타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크거나 혹은 (or) 무거운 짐’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크고 무거운 짐’이란 ‘크고 동시에 (and) 무거운 짐’을 뜻하므로, 크기만 하고 가볍거나, 무겁더라도 크지 않은 짐은 에스컬레이터에 가지고 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큰 짐도 에스컬레이터로 운반하여서는 안 되고, 무거운 짐도 안 됩니다. 따라서 정확한 표현은 ‘크거나 (혹은) 무거운 짐’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런 논리적 표현에서는 우리 말의 사용에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우리 말 뿐이 아니라 우리의 금융 관습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금융을 시작하던 35 년 전에는 이자 계산을 할 때에 소위 ‘양편 넣기’를 하였습니다. 양편 넣기란 이자를 계산할 때에 기산일(起算日; value date)과 마감일(maturity date)을 모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월 2일에 돈을 빌려서 1월 3일에 갚는다고 하면 현재의 금융 제도에서는 하루치 이자만을 지급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1월 2일 하루, 또 1월 3일 하루, 이렇게 2일을 빌린 것으로 간주하여 이틀 치 이자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자가 ‘낮’에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에서는 이자는 원금이 밤을 넘긴 날짜 숫자만큼, 즉 ‘밤 12시’에 발생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실제로 30여 년 전에는 기업에서 당좌대월(當座貸越) 1년을 사용하면 표면 금리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이자를 부담하였었습니다. 당좌 대월은 하루짜리 대출이므로 양편 넣기를 하면 이틀 치 이자를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당좌 대월을 1년 동안 계속 사용하면 매번 이틀 치 이자를 지불하게 되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이자를 부담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은행이 문을 열고 영업을 하였으므로 토요일에도 금요일에 기채된 대월의 이틀 치 이자를 내고, 월요일이면 실제로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2일 동안 대출을 썼음에도 3일 치 이자를 지급하여야 했습니다. 공휴일이 끼면 하루 치 이자 부담이 줄어 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자 부담이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행 대출은 3 개월씩 이루어지므로 3 개월에 하루 치 이자가 더 지급되는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때는 우리나라의 대출 금리가 30%에 육박하기도 하였고, 양건예금(兩建預金, compensating deposit: *주; 일명 ‘꺽기’, 대출금 중 일부를 강제로 예금시켜 실제 대출금의 이자 부담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용) 등으로 인한 실제 금리 부담은 그보다도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하루 치 이자도 오늘의 금리 수준에 견주어 보면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이러한 금융 관행은 불과 수년 전 금융감독원의 금융 개선 지시가 있을 때까지 암암리에 지속되어 왔습니다. (관련기사: 2010/01/22_금융관행개선_조선일보)
이자의 발생이 언제 되는가 하는 문제는 항상 논란 거리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원칙적으로는 밤 12시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외국의 금융기관에는 일중대월(日中貸越: daylight overdraft)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금융기관의 영업시간 안에 대월을 일으켰다가 당일 영업 마감 전에 상환하는 것입니다. 이자가 밤 12시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일중대월에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일중대월에 대하여 이자를 부과하였습니다. 이 경우의 이자율은 당연히 매우 낮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중대월 금리는 1일 대출 금리의 1/2 ~ 3/4 수준이었습니다. 지금도 은행간 거래에서는 일중대월에 대한 벌금(페널티, penalty) 형식의 이자를 부과합니다.
이제 2013년 새해도 밝았고, 2월말이면 또 다시 새 정부가 들어서서 앞으로의 5년을 기약해 봅니다. 희망찬 새해에는 우리의 금융제도도 건설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 발전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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