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뒷거래- 2014. 9. 12.

jaykim1953 2014. 9. 18. 17:14

저는 지난 월요일 저녁 서울을 떠나 영국 여행중입니다. 처음 이틀간은 수도 런던에서 머물렀고, 수요일에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Edinburgh)로 가서 1박을 하고 다시 런던 근교의 콧츠월드(Cotswold)라는 지역에 와서 방금 호텔에 들어왔습니다. 호텔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정확한 이름은 B&B (Bed & Breakfast)라는 민박집 같은 곳입니다. B&B란 잠자리와 아침을 제공해주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시리아의 IS (Islamic State,이슬람국가)가 미국인 기자에 이어 영국인 기자를 참수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에도 영국은 폭력집단으로 인식되는 IS와의 협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폭력집단과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7년 우리나라의 한 교회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갔다가 그 곳에서 선교단 전원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인질 가운데 두 사람은 사살 당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나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아프칸인질-2007_8-동아일보) 이 당시의 언론 보도는 한결같이 테러집단과 한국정부의 직접협상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어떤 국가도 테러집단과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집단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협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사후에 합의내용을 번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계에서도 비신사적이고 부도덕한 상대와 협상을 하였으나 후에 합의를 뒤집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1990 년대 초기에 국내에서 영업을 하던 외국은행 가운데 I은행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이 은행에는 K 라는 외환딜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K는 I은행 지점장과 면담합니다. 지점장실의 출입문을 닫아 걸고 밀담을 나눕니다. 그 내용은;

 

K: I은행은 히스토리칼 레이트 롤 오버(historical rate roll-over; *주; 과거에 맺은 외환거래가 만기 도래하였을 때에 수도를 일으키지 않고 만기를 연장시키는 방법. 현재의 환율이 과거 약정 당시의 환율보다 고객에게 불리하여도 은행에서 이를 감수하고 유동성 부담을 주지 않는 거래.) 거래를 통하여 고객에게 상당한 유동성 지원을 하고 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약 2천만 달러 (한국 원화 약1백30억 원 상당-당시 환율 적용)에 달한다. 이 정도 금액의 유동성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I은행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지점장: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K: 이러한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 입을 막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점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K: 에스페로(대우자동차가 개발하여 1990년에 시판하기 시작한 중형/소형 승용차) 승용차 한 대, 골프 회원권 하나, 그리고 현금 1억 원이다.

지점장: 좋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겠다. 그대신 당신은 당장 이 은행을 떠나고  이 건에 관하여서는 비밀을 지켜라.

 

이렇게하여 K는 I은행을 떠났고 일주일에 3~4번씩 골프를 즐기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약 1년이 지난 후 K는 다시 I은행으로 지점장을 찾아 왔습니다.

 

K: 내가 생각이 부족했다. I은행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것은 내가 받은 보상보다 가치가 더 크다. 현금 1억 원을 더 내놓으라.

지점장: 만약 내가 당신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K; 나와 절친한 친구가 H신문 기자이다.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

지점장: 당신과의 거래는 이미 1년 전에 끝났다. 더이상의 거래는 없다.

 

그로부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실제로 H신문에는 I은행이 엄청난 부정을 저지른 듯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관련기사:1991_9_6_불법환거래5백억조달) 기사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고, 사실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5백억 원이라는 금액은 그동안 여러번 있었던 거래를 누적하여 합산한 금액으로 실제로 유동성이 지원된 금액은 1백억~2백억 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K의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K가 정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건을 부풀리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어쨌든 이 기사가 있고 나서 은행감독원은 부랴부랴 I은행에 대한 특별감사를 하였고 I은행은 4일 동안 외환거래를 정지 당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I은행 서울지점에 기관경고의 처벌이 추가 되었습니다.

 

이후 국내에 들어와 있던 전 외국은행에 대하여 유사한 거래를 하였는지 특별감사를 시행하였습니다. 그결과 많은 은행들에서 유사한 거래가 적발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업활동이 정지된은행은 I은행 뿐이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었던 파리바은행도 유사한 거래를 한 것으로 지적을 받았으나 외환거래정지는 없었습니다.

 

이 당시 H신문의 보도만 아니었으면 I은행의 거래는 외환거래정지까지 갈 정도의 중대한 잘못이라고 판단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I은행은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고 국제금융시장의 관례에 어긋나는 거래를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거래의 결과 유동성이 창출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거래를 하였던 것입니다. 은행감독기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거래를 처벌할 만한 근거가 취약하여 ‘건전한 금융거래 풍토에 심각하게 저해되는 행위’로 이름하여 처벌하였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서는 부당한 거래의 내부고발은 적극 권장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잘못을 미끼로 경영진을 위협하는 비신사적이고 부도덕한 뒷거래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사소한 잘못을 마치 어마어마한 부정행위라도 되는 듯이 침소봉대하여서도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부도덕한 협상에는 절대로 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기관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6하원칙(六何原則)에 의한 올바른 보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영국과 같은 신사적인 사회전통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