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4년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나간 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가져 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된 헌 것보다는 새것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것이라고 없애 버리기만 할 것이 아니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오래된 고전적인 건물이 거의 없고 새로 지은 현대식 빌딩만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반도호텔이 있었습니다. 반도호텔은 화강암으로 지은 석조 건물로 지상 9층 지하 1층이었으나 4층이 없어서 실제로는 8층 높이에 불과하였습니다. 1층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건물이었고 2층부터는 건물의 가운데가 빈 공간(중원-中園)이 있는 ‘ㅁ’ 자 형태의 건물이었습니다. 호텔 방들은 ‘ㅁ’ 형태의 건물을 뺑 돌아 복도가 있고 복도의 양쪽으로 방이 있어서 안 쪽의 중원을 향한 방과 건물 바깥 쪽을 향한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객실 숫자는 불과 100여개 뿐이었지만 1960년대까지는 국내 최대이며 최고(最高)의 호텔이었습니다. 이 호텔은 70년대 중반 롯데그룹에 매각되었고 롯데그룹은 반도호텔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롯데호텔을 지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세워진 반도호텔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과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위한 미군의 R&R (Rest & Recuperation 또는 Rest & Recreation)시설로 이용되었습니다. 반도호텔과 조선호텔 두 곳이 미군 R & R 시설로 지정되었습니다. 미군의 R&R 시설이므로 이 곳에서는 한국 돈(당시 화폐단위는 환- 圜)은 받지 않고 쿠폰이라 불리는 달러화 표시 미군 군표를 대체 통화로 사용하였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있는 호텔에 한국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한국 돈도 받지 않는 그런 특이한 존재의 호텔이었습니다.
반도호텔은 1961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반도호텔보다 높은 빌딩은 후에 서울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바뀐 우남회관(雩南會館)이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계획된 우남회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인 우남으로부터 이름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건물이 완공된 1961년에는 4.19 혁명과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이 두 번 바뀌어 더 이상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사용할 사회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건물은 ‘서울시민회관’이라 불리며 문화행사의 장소로 사용되다가 1972년 12월에 화재로 없어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금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우남회관의 건물 모양은 공연장소인 4층짜리 주건물 남동쪽 코너 윗쪽으로 11층 높이의 탑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에도 4층은 없어서 실제로는 10층이었습니다.) 그 탑에는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 탑의 높이를 11층으로 한 이유는 반도호텔의 9층보다 높게 만들기 위하여서입니다. 대통령의 아호를 이름으로 가진 건물보다 높은 건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반도호텔보다 높게 지으려 하였던 것입니다. 1961년 서울시민회관이 완공되면서 반도호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 자리를 서울시민회관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1950~60년대에 무역업을 하시면서 반도호텔 2층에 사무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저의 선친 사무실은 여직원들의 타이프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직원분들이 바쁘게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선친 덕분에 저는 반도호텔을 무척 자주 가 보았습니다. 반도호텔 동쪽으로는 반도호텔의 바닥 면적만한 커다란 공터가 있었고 그 곳이 호텔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호텔 옆 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계단이 있고 지하로 내려 가면 그릴과 이발소가 있었습니다. 그 계단으로 2층, 3층, 그 위로도 올라 갈 수도 있었습니다. 호텔 옆 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면 복도가 있고 복도 오른 쪽으로 자개 꽃병, 장식용 가구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복도 끝에는 반도 양복점이 있었습니다. 복도 끝을 돌아서 좌측으로 가면 오른 쪽에는 약국이 있었고 약국을 지나 바로 우측으로 호텔 정문이 있었습니다. 정문을 지나면 호텔로비가 있고, 좌측으로는 연회장소로 쓰이던 다이내스티 룸 입구가 있었습니다. 로비 우측- 을지로를 등진 위치-에는 프론트 데스크가 있었고, 서쪽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두 대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론트 데스크 맞은 편에 계단이 있고 그 오른쪽에 커피숍이 있었습니다.
반도호텔의 2층에는 조흥은행이 있었습니다. 반도호텔에는 2~3층을 사무실로 임대하여 사용하는 회사들이 있었고 이 회사들은 대부분 조흥은행 반도지점을 거래하였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도 조흥은행 반도지점의 주요 거래고객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반도호텔이 없어지고 롯데호텔이 문을 연 다음에도 롯데호텔 2층에 문을 열었던 조흥은행의 지점이름은 ‘반도’ 지점이었습니다. 한 때는 은행 지점들이 모두 1층에 있어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이 있었으나 예외적으로 조흥은행 반도지점은 2층에 설치하는 것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도호텔 2 층에 조흥은행이 문을 열고 있었던 일종의 기득권을 인정하여 준 것입니다. 조흥은행 반도지점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롯데호텔에 문을 열고 있었으며 조흥은행 안에서도 주요 점포 가운데 하나로 인정 받던 곳이었습니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과 합병된 이후 지금은 신한은행 서울광장지점으로 통합되어 이전하였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반도호텔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교와 비즈니스를 상징하는 이름이었습니다. 9층에 있는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코카 콜라를 주문하면 캔으로 된 미군 군납용 코카 콜라를 가지고 와서 손님 앞에서 캔을 따고 유리 잔에 따라 주었습니다.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밤에는 술을 파는 장소여서 어린이가 들어가지 못하였고 낮에는 가벼운 스낵과 소프트 드링크를 팔아서 나이 어린 저도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왕성하게 사업을 하시던 저희 선친께서는 홍콩으로 자주 출장을 가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는 궁금하여 저희 선친께 여쭤 보았습니다. “홍콩에 가시면 아버지는 어디에서 묵으세요?” 그러자 저희 선친께서는 웃으시면서, “홍콩에도 반도 호텔이 있어서 거기에 묵는다.”고 하셨습니다. 1981년 제가 처음 홍콩에 갔습니다. 그 곳에는 반도호텔은 없지만 ‘페닌슐러’ (Peninsula, 반도) 호텔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호텔은 이미 30여 년 전에 없어졌으나 홍콩의 반도호텔- 페닌슐러 호텔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홍콩의 페닌슐러 호텔은 기존의 오래 된 석조 건물 바로 뒤에 현대식 고층 건물을 덧붙여 지어서 증축을 하였습니다. 이런 홍콩의 페닌슐러 호텔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반도호텔도 기존의 오래 된 건물을 살려 두고 그 건물에 덧붙여서 현대식 건물을 증축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60년대의 우리나라 호텔들은 이미 많이 없어지거나 예전의 명성이 퇴색하였습니다. 그 때의 호텔들을 기억해 보면; 명동의 메트로 호텔, 충무로의 사보이 호텔, 퇴계로의 아스토리아 호텔 (이상은 아직도 남아 있는 호텔입니다.), 남대문의 그랜드 호텔 (현 흥국생명 빌딩), 국제호텔 (지금은 없어지고 이 자리에 소공동 한진빌딩이 들어섰습니다.) 등이 당시에 이름을 날리던 호텔들입니다. 반도호텔은 이름뿐 아니라 건물까지도 형체도 없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미 사라진 반도호텔이야 어찌 할 수 없지만 지금 남아 있는 오래 된 호텔, 건물들이라도 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외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습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금융기관이었던 조흥은행은 19세기 말에 설립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흥은행이 2006년 신한은행에 합병되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1950~60 년대에 세워진 국민은행, 주택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가장 연륜이 오래된 금융기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국의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금융기관들에 비하면 일천하기만 한 금융역사입니다. 이미 사라진 은행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남아 있는 금융기관들이라도 오래도록 잘 경영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우리의 역사에 걸맞은 유서 어린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안에 전통 있고 새로운 금융기법에 정통한 금융기관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금융기관을 자꾸 만들기 보다는 기존의 금융기관이 전통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금융기법을 도입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이루어지기를 2015년 새해 벽두에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주택 경기- 2015. 1. 16. (0) | 2015.01.16 |
---|---|
2015 미국 경제 전망- 2015. 1. 9. (0) | 2015.01.09 |
변화 그리고 생존- 2014. 12. 26. (0) | 2014.12.26 |
엄마- 2014. 12. 19. (0) | 2014.12.19 |
Nut Rage- 2014. 12. 12. (0) | 2014.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