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블랙 아웃- 2015. 8. 7.

jaykim1953 2015. 8. 7. 10:25

8월에 접어들었습니다. 푹푹 찌는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무더위 속에 냉방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그에 따른 전기의 소비도 늘어난다는 보도가 나오곤 하였습니다. 때론 곧 대규모 단전사태가 빚어질 듯한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대규모정전위험_2012.8.6.) 단전에 이를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가 그 동안 전력 공급을 늘리려는 노력을 한 덕분에 이제는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한여름에도 전력예비율이 17~18%에 이른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http://news.mk.co.kr_2015/7/31_예비전력여유)

4년 전에는 가을철 늦더위를 예상하지 못하고 발전소들이 한 여름 극성수기를 무사히 넘긴 안도감 속에 정기 점검을 위하여 발전을 일부 멈추고 있다가 느닷없이 늘어난 전기 수요로 전국적인 정전 사태를 겪었었습니다. 소위 ‘9.15 단전사태라고 불리는 블랙 아웃이었습니다. 그 결과 관련부처 장관이 물러나기도 하였습니다. (관련기사:  2011/9/27_최중경지경부장관사의) 4년 전 우리가 겪었던 정전사태는 그리 오랜 기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듯 합니다. 이제는 단전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30여 년 전에 겪었던 싱가폴에서의 블랙 아웃을 아직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1년 저는 연수(on-the-job training)를 겸한 현지 근무 목적으로 Bank of America 싱가폴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비스 아파트 (serviced apartment)에 살면서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저의 큰 아들과 집 사람, 이렇게 세 식구가 단란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는 18층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싱가폴 건물들은 영국식 층수를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18층보다 더 높은 층에 살고 있었습니다. 1층은 그라운드 층(ground floor)이라 불리고 그 다음 층에는 입주자들을 위한 중간 로비층인 메자닌 층 (mezzanine floor)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층부터 시작하여 제가 사는 아파트가 있는 18층까지 세어 보면 한국식으로는 20층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싱가폴의 고층 건물들은 안전을 고려하여 창문이 아예 열리지 않게 만들거나, 혹은 열린다 하더라도 사람 머리가 도저히 통과할 수 없도록 아주 조금만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제가 살던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건물이 냉방만큼은 아주 시원하게 잘 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큰 아들이 처음 싱가폴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에 멋 모르고 아파트의 유리창을 만지려다가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유리창에 손을 대보면 유리창이 따뜻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뜨겁게 달구어진 것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적도 바로 위에 있는, 이렇게 날씨가 더운 싱가폴에서 냉방이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 것입니다. 좁은 땅 위에 세워진 도시 국가이다 보니 싱가폴 시내에는 30~40 층짜리 고층 건물이 즐비하였고, 이 모든 건물들의 냉방 시설 가동에 소요되는 전기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밤거리의 가로등 조차도 모두 꺼져 있을 때였습니다. 길거리 네온 사인 간판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퇴근시 소등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 규칙이었습니다. 제 아내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싱가폴에 대한 첫 인상은 싱가폴의 창이(Changi) 국제공항에 처음 내린 저녁 시간에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고속도로에 켜져 있던 은은한 나트륨 가로등이라고 합니다. 가로등을 켜지 않던 그 당시의 우리나라에 비하면 전기 사용에 관하여서는 싱가폴은 거의 천국이었습니다.

이런 싱가폴에 블랙 아웃이 덮쳤습니다. 싱가폴은 전기를 전부 외국- 주로 말레이지아-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기가 공급되는 선로에 이상이 생겨 싱가폴 전 시내가 단전이 되었습니다. 1981 8월의 일이었습니다. 에어컨은 올 스톱되었고, 실내등도 비상등만 희미하게 들어올 뿐 더위와 암흑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처음 단전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지난 밤에 쉬지 않고 가동되었던 냉방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어 그런대로 버티는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내는 찜통이 되어 갔습니다. 급기야 전 직원이 퇴근하여도 좋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점심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저도 제 동료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습니다.

건물을 빠져 나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으니 비상계단을 통하여 걸어 내려와야 하였습니다. 제 사무실은 13, 그라운드 층부터 세면 세면 14층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려는 직원들로 붐비기 시작하면서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의 체온 때문에 숨이 턱에 차도록 더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게다가 비상등만 켜 놓은 어둠침침한 계단에서 행여 발이라도 헛디딜까 봐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내려오는 데에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렸습니다. 길거리에는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버스는 북새통을 이루며 택시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싱가폴에는 이 당시에 지하철이 건설되기 전이어서 모든 교통을 버스와 택시에 의존하여야 했습니다. 만원 버스를 겨우 얻어 타고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12시가 다 되어서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아파트에도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18- 우리 식으로는 20- 까지 걸어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내 데스크 여직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대책을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싱가폴 전역이 블랙 아웃 된 상황에서 저를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제가 아파트에 도착한지 불과 10 여분 만에 전기가 들어오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첫 번째로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제 아파트가 있는 18층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앞에는 제 아내가 제 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서 있었습니다. 제 아내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고, 큰 아들 녀석은 기저귀만 걸친 채 아무 것도 입지 않았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는 음식도 전기 레인지로 하고, 온수도 전기로 데우고, 냉방도 전기로 하는 등 모든 것이 전기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들어 오지 않으니 제 아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창문도 열 수 없고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으니 돌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마 창문이 없어서 해가 들지 않는 건물 안 쪽 엘리베이터 홀이 조금 덜 더울까 하여 그 곳 희미한 비상등 밑에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저를 만난 것입니다. 저를 만난 제 아내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 하였고 우리는 재빨리 가벼운 옷 차림으로 갈아 입고 다시 거리로 나가 간단한 점심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것이 제가 경험한 싱가폴에서의 블랙 아웃이었습니다.

전기가 흐르지 않아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다면, 지금의 그리스는 돈이 흐르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 , 유동성이 부족하면 은행은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유동성 부족으로 문을 닫았던 그리스의 증시가 5주 만에 문을 열자마자 폭락사태를 맞았습니다. 당장의 유동성이 필요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 팔고 현금을 확보하려다 보니 투매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관련기사: http://www.hankyung.com/2015/8/4_그리스증시폭락) 전기가 안 들어오는 블랙아웃에도 혼란이 따르고 돈의 흐름이 막혀도 커다란 혼란이 닥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 나라에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돈의 흐름이 막힌다면 그 또한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기를 빕니다.

날이 너무 더워서일까요? 쓸 데 없는 걱정을 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