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4~2016

한자어 바로 쓰기- 2016. 10. 7.

jaykim1953 2016. 10. 7. 10:10


최근 몇 달 동안 나라 전체가 사드 (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어느 코메디언 한 사람이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현장에 내려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였습니다. 코메디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쌀을 함께 나누어 먹는 나라...'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마도 공화라는 단어에 쓰인 한자 ' 자가 벼 화()자인 줄로 착각하였던 모양입니다. 코메디언이라는 직업이 그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려면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들 아시고 계시겠지만 공화는 한자로 한 가지 공() 자와 화할 화() 자를 씁니다. 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영어의 republic 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 적절한 의미의 글자를 찾으면서 중국 고대의 고사와 얽힌 사람이름 등에서 글자를 따와서 지어낸 단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코메디언이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기 위하여 나름 준비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 한 마디에서 알 수 있듯이 기초적인 한자의 사용에는 많은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려면, 특히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는 주제를 가지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기초적인 한자는 물론 보다 깊이 있는 준비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그는 한자를 제대로 배운 세대가 아니거나 혹은 스스로 한자 공부에 별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는 두 분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한글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면서 어느 날 수업시간에 생각을 날 생()자 깨달을 각()- 生覺이라고 쓰는 것은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각은 순 우리말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필요하다면 한자를 써야겠지만 무분별하게 한자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국어 선생님으로부터는 많은 한자 고사도 배웠지만 잘 못된 한자 사용에 대한 주의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공화(共和)쌀을 함께 나누어…’ 라고 해석하였다면 이 국어 선생님께 야단을 많이 맞았을 것입니다.

또 한 분의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질문을 하실 때에 나변(那邊)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아마도 요즈음 젊은이들은 나변이라는 말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나변은 어찌 나 () 가 변 ()을 써서 어느 쪽인가를 묻는 의문사, 어디라는 의문사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 나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어 단어 명사의 복수에는 단어 끝에 s가 붙는다. 예외적으로 o 로 끝나는 단어에는 s 가 아니라 es 를 붙인다. 예를 들면 hero heroes, potato potatoes와 같이 쓴다. 그런데 여기에 또 예외가 있다. piano, photo, auto 등의 복수에는 es 가 아니라 그냥 s 만 붙인다. piano pianos, photo photos, auto autos 와 같이 쓴다. 그러면 이런 단어의 복수에 es 를 붙이지 않고 s만 붙이는 이유는 나변에 있는가?

다시 정리하면 이 선생님은 질문하실 때에 왜 그런가?’ 라고 물어야 할 때에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라는 단어 대신 나변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당연히 나변이셨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신문에서 조차 한자를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자를 꼭 다시 사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도 한자를 어느 정도는 공부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상당히 많은 단어들이 한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말에 스며든 한자어에 대하여서는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이미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4. 26. 참조)

한자어 가운데 정치와 관련된 용어들은 대부분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단어들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민주, 공화, 주권, 의회, 삼권분립 등의 개념이 전혀 없는 절대왕정 국가들만 있었습니다. 20세기초에 서양의 문물이 들어 오면서 새로운 정치제도에 대한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실제로 민주공화국 형태의 나라가 세워진 것은 대부분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개념에 대한 용어들도 그리 일찍 만들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 반면 경제와 관련된 용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경제라는 단어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금융(金融)이라는 말은 영어의 financing, banking 이라는 말들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런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 비교적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고 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잇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회계학을 배우면서 조금은 의외의 번역을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 marketable securities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유가증권’ (有價證券)이 됩니다. 얼핏 보아도 한문 글자 한 자 한 자의 뜻과 영어 단어와는 그 의미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금 들여다 보면 정확한 번역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어의 marketable 이라는 의미는 시장에서 융통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팔고 사는 거래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Securities 라 함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증권형태로 발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되는 증권형태의 발행물을 의미합니다. 이를 번역하면 유가증권이 정확한 표현인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한자로 쓰인 글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에는 한자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자어의 뜻을 알면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한자 교육을 다시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 할애하는 시간만큼, 혹은 그 보다는 못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을 한자 공부에 할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제, 시장, 금융, 기업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이 한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의미와 용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piano pianoforte, photo photograph, auto automobile을 줄여서 사용하는 축약형 단어입니다. 따라서 piano, photo, auto 등의 단어는 복수를 표시할 때에 단어의 말미에 es 를 붙이지 않고 s 만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