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漫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연세가 많이 되신 분들은 오래 전에 장소팔-고춘자, 두 사람이 진행하는 만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세상이나 인정을 비판ㆍ풍자하는 이야기를 함. 또는 그 이야기.
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한영 사전을 찾아 보면, gag, comic talk 이라는 번역이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만요(漫謠)도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만담과 같이 익살스럽게 세상을 풍자하는 노래를 일컫는 말입니다. 만요의 대표적인 노래로는 1960년대 말에 가수 하춘화가 부른 ‘잘했군 잘했어’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영감(왜 불러)
사랑채 비워 주고 십만 원 전세를 받았소
(받았지) 어쨌소
(방앗간 차리려고 은행에 적금을 들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그런데 처음 이 노래가 나왔을 때의 가사는 이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영감(왜 불러)
사랑채 비워 주고 십만 원 전세를 받았소
(받았지) 어쨌소
여기까지는 처음에 나왔을 때에도 같았으나 이에 대한 대답이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서양 춤 배우려고 쌍 나팔 전축을 사왔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전국민적으로 새마을 운동에 앞장서서 열심히 일하는 근면검약(勤勉儉約)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서양 춤이나 배우고 또 서양 춤 배우기 위하여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쌍 나팔(스테레오) 전축을 사는 소비 풍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시절이다 보니 힘 없는 대중가요 작사자, 가수들은 ‘서양 춤 배우려고 쌍 나팔 전축을 사왔지’ 라는 대목을 ‘방앗간 차리려고 은행에 적금을 들었지’ 라는 지극히 건전하고 근면함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하나의 방송금지곡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아마도 이 노래의 작곡, 작사자와 가수들이 ‘웃자고 하는 노래인데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라고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40여 년 전에 ‘잘했군 잘했어’의 작사가가 가사를 바꾸지 않고 정부를 향하여 ‘웃자고 하는 노래인데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 라는 식의 말을 실제로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 공안 기관에 끌려가 치도곤이 났을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물론 심지어는 코메디언들조차도 정부를 향한 비판을 합니다. 정치권에서 오가는 말을 되받아 정치권을 향한 엄포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관련기사: hani.co.kr/2016/10/6_감당할 수 있겠나) 그런데 정작 경제, 금융 분야에서는 아직도 정부의 입김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조차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biz.chosun.com/2016/10/13/한발물러선 한은총재)
이 기사를 일부 발췌해 보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재정과 통화 정책 양면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여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향후 경기 부양 수단에 대해 "통화 정책보다는 재정 정책이 더 여유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대립각을 세우던 모습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우리나라 통화 가치와 물가에 대하여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관리, 통제하여야 하는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경제 성장을 위하여 자신이 책임져야 할 금리 정책에서 조금 더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하였습니다. 이주열 총재는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책이 금리 정책에 앞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은행 총재의 소신이 멀리 해외에서 열리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에서 정부측 대표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와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기도 하였었습니다. (관련기사: hani.co.kr/2016/10/9_유일호-이주열)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기부양을 위하여 금리를 낮추는 등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에 반하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운용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며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중재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견해를 따르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은행과 정부의 의견 조율과정이 어떠하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chosun.com/2016/10/9_한은총재 입을 막지 마라) 이 기사의 행간을 읽어 보면 정부에서는 계속 한국은행에게 정부의 시각, 정책방향을 따라 줄 것을 요구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상황을 극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은의 보고서를 덮어버리고, 한은 총재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관료들의 모범 답안과는 다른 한은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기 때문이다. 국책 경제연구소의 대표 격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박사급 인력은 60여 명인데, 한은은 130명이 넘는다. 이들이 만든 보고서를 국민이 더 많이 볼 수 있기 바란다. 한은 총재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한국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박사의 숫자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으로 보고서의 질과 격을 가늠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의 박사급 연구원 60명과 한국은행 박사급 인력의 수가 120명이라는 것을 계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박사급 연구원의 숫자가 2배가 되더라도 정부기관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중앙은행이 정부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중문화, 대중예술에 조차 정부의 입김이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코메디언을 상대하는 데에도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 해당 상임위원 소속 의원들이 갑론을박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의 틀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진지한 대화와 토론보다는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저만의 착각이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려면 끊임 없는 토론과 지혜를 모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실수의 가능성을 줄여 나가는 것이 좋겠지요. 만요 가사 바꾸듯 경제 정책을 윽박질러서 방향 전환하는 것은 설사 옳은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하더라도 방법이 잘 못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만요의 가사를 바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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