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 이름이 00 ‘센트레빌’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앞을 자주 지나 다닙니다. 그런데 ‘센트레빌’이라고 한글로 쓴 바로 위에 영어로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이름은 ‘Centreville’입니다. ‘Centreville’이라는 영어 스펠링을 보고 과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센트레빌’이라고 읽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잇점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가운데 하나가 스펠링의 차이입니다. 영국에서는 centre 라고 쓰는 것을 미국에서는 center라고 쓴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스펠링을 얼핏 보아 센트레빌 이라고 읽을 법한 Centreville 은 영어로 쎈터빌이라고 읽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약 ~tre 발음을 ‘~트르’ 혹은 ‘트레’에 가깝게 읽으려면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쌍트레빌’이라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의 GM 사에서 만들어낸 자동차 가운데 Buick 디비젼에서 만든 LeSabre 라는 차가 있었습니다. 이 차 이름의 이름은 ‘르 세이버’라고 발음합니다. Sabre라는 단어는 펜싱 경기를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수 있는 이름입니다. 프랑스어로 ‘사-브르’ 혹은 ‘사-브흐’라고 부르는 칼 이름입니다. 약간 굽어져 있는 칼날을 가진 기사들이 사용하는 칼입니다. 영어로는 ‘세이버’라고 읽고 칼 또는 무력이라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칼로 무장한 기사 또는 기사대(騎士隊)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뭔가 프랑스식으로 멋진 이름을 만들기 위하여 프랑스어의 관사인 ‘Le’를 앞에 붙여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고유명사로 쓰인다는 것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하여‘LeSabre”라고 관사와 명사를 붙여서 한 단어로 썼습니다.
이 차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팔렸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미국 주재원들 가운데서도 이 차를 구입하여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이 차를 ‘르 사브레’ 또는 ‘르 사브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외래어는 그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어 단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실수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10. 5. 참조) 특히 약자(abbreviation)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군대를 다녀 오신 분들이라면 군대 시절에 들었던 여러 가지 영어 약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잘 못 쓰여지고 있는 것을 한 가지 살펴 보겠습니다.
군대에서 비상이 걸리는 것을 흔히들 ‘CPX 걸렸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CPX는 비상과는 관계가 없는 용어입니다. CPX는 Command Post Exercise 의 약어입니다. 우리 말로는 ‘지휘소 연습’이라고 번역합니다. 대체로 지휘소 연습을 하게 되면 해당 부대에는 비상이 걸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휘소 연습이란 가상의 상황을 전개하면서 부대의 지휘부가 작전을 전개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CPX=비상’의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쓰이는 약어 가운데도 ‘우리끼리’ 만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DC’입니다. 최근에는 어느 인기 강사가 “3.1 만세 거사의 민족대표가 당시의 룸살롱에 해당하는 술집에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읽었고, 그 때 그 집 마담이 ‘DC’를 해준다고 해서 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DC는 영어 단어 discount를 일컫는 말입니다. 즉, 할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할인을 DC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뿐일 것입니다.
영어를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DC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Washington DC (District of Columbia)를 연상하거나 혹은 미국 맨하탄에 있는 멕시칸 레스토랑 Dos Caminos를 생각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DC라는 약자가 또 다른 의미로 익숙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DC는 Domestic Credit 입니다. Domestic Credit은 우리 말로 국내여신(國內與信)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만 그냥 ‘도메스틱 크레딧’이라고 흔히 사용합니다. 도메스틱 크레딧은 중앙은행- 또는 통화관리기관-의 해당 권역 안에서 제공되는 모든 여신- 민간, 정부-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 부터 금융지원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의 상황입니다. 그 당시에는 매년 국제통화기금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재정, 금융 분야에 대한 실사를 나왔고 실사 경과를 보고 도메스틱 크레딧에 대한 한도를 설정해 주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에서 설정해 준 도메스틱 크레딧의 한도가 실제로 부족하거나 국내 금융산업 운용에 어려움을 끼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국제통화기금에서 실사를 나오면 우리나라 정부의 경제기획원, 재무부, 한국은행 등에서는 DC 한도의 증액 규모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1980년 6월 신문기사를 보면 (참조: 국제통화기금권고 통화량 27%-1980/6/13) 국제통화기금 협의단이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실사한 다음 권고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총통화량은 물론 국내여신 (DC)에 대하여서도 자세한 의견을 피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으로는 국제통화기금의 이러한 권고안을 무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권고안이 곧 우리나라 금융 통화정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였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이러한 권고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사태에서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지원 받을 때에는 다시 한 번 그들의 권고안에 따른 경제 운용이 불가피하였으나 그들의 구제금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은 그들로부터 크게 제약을 받거나 구속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영어 약자를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 납니다. 저보다 약 5~6개월 정도 먼저 군에 입대한 저의 군 선임병 A가 한 이야기입니다. 때 마침 경계 훈련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을지 포커스와 같은 CPX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A는 저를 조용한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야 너는 사회에서 공부 좀 했으니 알 것 같아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고 내게만 좀 알려 다오. CPX하고 PX 하고 어떻게 다르냐? 그리고 그 둘은 무슨 관계냐?’
저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그 둘은 전혀 관계가 없는 남남입니다. 우연히 이름이 비슷할 따름입니다. 가수 이수미 하고 오니언스의 이수영은 이름이 두 자씩이나 같지만 전혀 관계가 없듯이 CPX하고 PX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제서야 A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이런 것 물어 봤다는 말 하지 마라.’ 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영어 약자를 사용할 때에는 상대방도 확실히 이해를 하는지 확인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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