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시즌 막바지 경기가 한창입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주 토요일 (9월23일)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 묘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8위와 9위를 확정짓는 경기였으니 그렇게 뜨겁게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해당 팀의 팬들은 마지막 순위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라고 응원에 열심이었습니다.
7대 7의 스코어 상황에서 9회초 경기가 진행될 때였습니다. 주자를 3루에 두고 투수가 플레이트에서 발을 빼고 3루를 견제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자 3루심이 피쳐 보크를 선언하였습니다. 피쳐 보크란 투수의 위장 투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크를 규정하는 룰은 야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한다하더라도 이해를 못하는 미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쨋든 피쳐 보크가 선언되었습니다. 그런데 TV 중계를 통하여 느린 그림을 보여주는 화면에는 피쳐 보크 상황이 아니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였습니다. 오심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보크를 범한 피쳐와 그 팀 감독은 강하게 어필하였습니다. 항의는 약 1분 여 동안 이어졌고, 4심이 모여 약 1분간 논의한 끝에 3루심이 실수를 인정하고 판정을 번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관련기사: 2017/9/24_보크 번복)
그러자 이번에는 상대팀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와 항의를 하였습니다. 어린이들 식의 표현을 빌면 '한 번 하면 땡인데 왜 바꾸느냐?'는 항의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이 항의가 무척 길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6분을 끌었습니다. (관련 동영상: 잘못된 보크 판정) 감독의 항의 내용은 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관중들은 감독의 항의 내용을 짐작만 할 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이유 때문에 경기가 지연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명백한 오심이었고 그 오심을 선언한 심판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판정을 번복한 것입니다. 이 상황은 심판의 오심이라는 매끄럽지 못한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오심을 시정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 팀 감독의 주장은, '오심이라 할지라도 한 번 내려진 판정은 번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팀이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6분 동안 계속하였습니다. 물론 결과는 보크가 아니라는 판정 번복이 유효한 채로 상대팀 감독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상대 팀 감독의 심정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게임에 이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크가 아닌 것을 보크라고 잘 못 선언한 심판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판정을 번복한 상황에서 잘 못된 보크 선언을 유효하게 만들려고 하는 어필은 썩 잘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많은 관중들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6분 여 동안 경기를 중단시키는 것은 관중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보입니다. 아마도 감독 자신도 보크 판정의 번복이 다시 재번복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경기를 누구보다도 자세히 지켜 보고 있었으니 보크 판정이 잘 못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기는 속개되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나 하여야 할까 결국 보크 판정 오심으로 불이익을 받을 뻔 하였던 팀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 날의 경기에는 두 가지 더 재미있는 용어를 적용할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첫째는 스코어입니다. 8대7- 소위 케네디 스코어입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 (John F. Kennedy)대통령이 가장 야구가 재미 있는 스코어는 8대7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이 날의 경기가 바로 케네디 스코어로 마쳤습니다.
두 번째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굿바이 힛트(good bye hit)라고 하는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일본식 표현이고 정확한 영어식 용어는 walk-off win 입니다. 경기를 끝내고 이겨서 걸어나간다는 의미에서 walk off 라는 말을 씁니다. walk-off win 이라는 말은 마지막 이닝이 제 3 아웃까지 가지 않고 끝나는 경우에 이르는 말입니다. 야구는 홈팀이 후공(後攻)이므로 walk-off win 상황은 홈팀에게만 가능합니다. 동점 상황에서 9회말, 또는 연장 이닝의 마지막 공격에서 추가점을 내게 되면 상대팀은 더 이상 점수를 낼 기회가 없으므로 홈팀은 추가 점수가 난 상황에서 경기를 마치고 승리를 확정짓습니다. 이 것이 walk-off win 입니다. 이날은 동점 상황에서 연장 10회말에 점수가 나면서 경기가 끝났습니다.
이 날의 경기는 walk-off win 으로 끝났으며 점수는 케네디 스코어였습니다.
다시 제가 하려는 이야기로 돌아 갑니다. 경기의 승부에 집착하다보면 때로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세계적인 대스타도 그런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1986년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세계적인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는 소위 '신(神)의 손'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공을 쳐서 득점을 하였으나 심판이 이를 보지 못하고 득점을 인정하였습니다. 자신은 손으로 공을 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고 나중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신의 손'과 자신의 머리가 합작한 득점이었다고 둘러댔습니다. (관련기사: 1986/6/24_마라도나 신의 손) 그리고는 내쳐서 결승전에 올라 승리하여 우승을 하였고 월드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진정한 스포츠 맨이라면 정정당당하게 '내가 손으로 공을 쳤으니 득점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승부에 집착하여 경기에 열중하는 동안에는 그러한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생각보다는 그저 이기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앞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경기의 상대팀 감독도 투수 보크 판정의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자신의 팀이 이기게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금융관련 사건도 있었습니다. 2015년 초 사업을 하는 A씨는 국내은행 지점에서 싱가포르 달러로 6천 달러를 환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의 실수로 6천 달러가 아닌 6만 달러를 지급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관련기사: munhwa.com_2015/4/21_10배 환전 고객 영장)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6천 달러를 환전하려던 사람이 6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객 A 씨는 끝까지 자신은 몰랐고 환전한 돈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행측의 고발로 형사재판이 이루어지면서 A씨는 결국 법정에서 자신이 그 돈을 횡령하였음을 자백하고 처벌을 받게 됩니다. (관련기사:hankooki.com_2015/10/17_6만불환전고
비단 이 사건의 A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의 실수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생각을 합니다. 피처 보크 판정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판정 번복을 다시 되돌려 오심을 유지하라고 항의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공을 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판이 보지 못하면 입을 다물고 득점을 올렸다고 환호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스스로도 그리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왜일까요? 더구나 6천 싱가포르 달러를 환전하면서 6만 싱가포르 달러를 받아간 A씨는 (6만달러 - 6천달러 = 5만 4천 달러) 약 4천여 만원을 탐하다가 자신의 인생 커리어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을까요? 4천여 만원이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액수의 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잠시 눈 앞에 있는 적지 않은 금액의 돈에 눈이 어두워 전혀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돈에는 착한 돈과 나쁜 돈의 구분이 없다고 합니다. 돈은 돈일 뿐 착한 돈이라고 더 가치가 크고, 나쁜 돈이라고 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법에는 옳은 방법과 그렇지 못한 방법이 있습니다. 구태여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벌더라고 옳은 방법, 정의로운 방법으로 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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