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성림(聖林) - 2017. 10. 13.

jaykim1953 2017. 10. 13. 10:24


성림(聖林)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전을 잘 찾아 보면;

성림(聖林) 중국()의 곡부()에 있는 공자()의 무덤을 둘러싼 숲

이러한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이에 뒤 이어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다름 아닌, '미국()의 헐리웃(Hollywood)의 한자(표기'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헐리웃은 씌어 있는 대로 Hollywood 입니다이를 holy() woods(로 잘 못 보았는지혹은 발음이 비슷하여 그냥 그리 적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아무튼 한자로는 헐리웃을 聖林이라고 표기합니다.

한자 표기로 고유명사를 적는 것을 살펴 보면;

나폴레옹 - 나옹 (), 쉐익스피어사옹 (과 같이 발음이 유사한 글자를 따서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명으로는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를 나성(羅城), 샌프란씨스코를 상항(桑港)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그러한 예입니다. 중국 한자 문화권에서는 대부분의 영문 이름이 Hollywood - 聖林또는 Los Angeles -羅城과 같이 한자어로 표기하여 사용됩니다

금융기관의 이름도 예외가 아닙니다.

Bank of America는 그 의미를 따라서 '美國銀行' (미국은행)이라고 부르고, American Express '美國運通' (미국운통)이라고 부릅니다이름에 쓰인 단어의 뜻에 충실하게 번역하였습니다그런가 하면 금융기관 이름을 발음 중심으로 한자어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BNP Paribas Standard Chartered Bank가 그러한 예입니다한자어로 각각 法國巴黎銀行(법국파려은행), 渣打銀行(사타은행)이라고 씁니다. 이 두 가지 이름은 '파리' '스탠다드 차터드'의 발음에 주목하여 한자어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Hollywood 를 聖林이라고 쓰고 Bank of America를 美國銀行이라고 쓰는 것은 의미를 인용한 것이고 Los Angeles를 羅城이라고 쓰고 Standard Chartered Bank를 渣打銀行이라고 쓰는 것은 발음이 유사함을 따온 것입니다. 고유명사를 한자로 표기할 때에는 이렇게 뜻을 인용하는 경우와 유사한 발음을 따오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호텔 이름도 그렇습니다. 페닌슐러 호텔(Peninsula Hotel)은 半島酒店(반도주점)이라고 씁니다. 단어의 뜻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쉐라톤 호텔(Sheraton Hotel)喜來登酒店(희래등주점)이라고 씁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금융용어도 대부분 외국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다른 용어를 같은 단어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정기예금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어의 time deposit 입니다. 보통예금이라고 부르는 것은 passbook account입니다. 일부 금융관련 서적에는 보통예금을 ordinary deposit 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passbook account을 우리말로 보통예금이라 번역해 놓고 이를 또 다시 영어로 재번역하면서 만든 말로 보입니다. Passbook account라 함은 통장을 만들어서 입출금을 하는 예금을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 보통예금이라고 부르는 예금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보험에서는 정기보험(定期保險)이라고 불리는 상품이 있습니다. 정기보험이란 영어의 term insurance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정기간 순수 보장형 상품입니다. 요즈음에는 영어의 term 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순수 보장형이라는 용어를 더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기보험에 대응하는 상품으로는 종신보험(終身保險)이 있고 이는 영어의 whole life insurance를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정기예금, 정기보험에서 똑같이 정기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정기예금의 경우에는 time, 정기보험의 경우에는 term입니다. 다른 영어 단어를 하나의 우리 말 단어로 번역한 예입니다. 영어 단어가 다르다고 하여서 우리 말로 번역하면서도 반드시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의미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면 같은 우리 말 단어라 할지라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금융, 재무, 경제 관련 용어들이 외국어에서 들어왔고 우리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많은 부분이 한자어를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언젠가 공공경제(public economics)를 전공하시는 노교수님 한 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경제학 용어, 사회학 용어 가운데 번역이 가장 잘 된 것은 사회 보장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social security라는 개념이 알려졌을 때에 동양에는 그러한 개념도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어떻게 번역하여야 할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회적 안전이라고도 하였고, ‘공공 안전이라고도 하였으나 이러한 번역은 대부분 security 라는 단어의 번역에서 잘못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Security = 안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서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개념으로 사회보장이라는 번역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어를 우리 말로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작업입니다. 수 년 전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이미 외래 금융용어를 우리 말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다루었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_2014.5.2. 참조) 또한 한자어를 사용하는 데에 따른 고충도 다루어 보았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4. 26. 참조)

그런데 아름다운 우리 말 번역을 놓아두고 애써 의미도 불분명한 외래어를 계속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고속도로를 운행하며 도로상황을 알려 주는 전광판이나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방송에서 계속하여 IC 또는 I/C 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영어의 interchange를 이르는 말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4. 20. 참조) 그런데 영어 사전에서 IC를 찾아보면 integrated circuit의 약자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우리 말로는 집적회로(集積回路)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영어를 자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정작 IC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더 많이 쓰이는 단어는 exit(출구)입니다. 예전 1960년대에 미국에서 발표된 소설 ‘Last exit to Brooklyn’이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 상영될 때에 이 제목을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고 번역하여 간판에 커다랗게 써 붙여 놓았었습니다. 엄청난 오역(誤譯)이었습니다. 원래 의미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고속도로) 출구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영어의 exit을 구태여 interchange라고 쓰고, 더 나아가 이를 줄여서 IC라고 씁니다. 아마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도 얼른 알아 듣지 못할 것입니다. 한 때 (고속도로) ‘나들목이라는 아름다운 우리 말 이름으로 쓰인 적도 있었으나 웬 일인지 나들목이라는 이름은 잘 쓰이지 않고 지금도 대부분의 도로 표지판에는 IC라는 말이 씌어 있습니다.

한 나라 말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세계가 하나의 경제사회가 되어가는 추세 속에서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외국어 용어들을 우리 말로 정확하고 알기 쉽게 의미를 전달하여야 하겠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용어를 번역하며 발음을 따오는 것과 의미를 옮기는 두 가지 형태를 따르는 것을 눈 여겨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잘 못된 번역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말을 지키면서 각종 외국어 용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