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속음화(俗音化)- 2017. 10. 6.

jaykim1953 2017. 10. 6. 09:46

추석 연휴 기간입니다. 무려 10일 동안의 연휴가 이어지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장기 연휴입니다. 긴 연휴 기간이지만 금요일 모닝커피는 언제나 처럼 제 날짜에 배달하겠습니다.

 
긴 연휴를 맞이하여 인천공항은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전무후무, 인산인해 등과 같이 4 글자로 이루어진 한자(漢字) 성어(成語)가 많습니다. 이를 흔히 사자성어(四字成語)라고 부릅니다.

사자성어 몇 가지를 살펴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는 일들을 간단히 일컫는 한자 사자성어 가운데 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를 우리 말로 '생로병사'라고 읽습니다. '날 生, 노인 老, 병들 病, 죽을 死' 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이 가운데 老 자는 읽을 때 노인 '로'라고 읽지만 맨 앞으로 나와서 쓰일 때에는 '노'라고 읽습니다. 예를 들어 老人은 '노인'이라고 읽습니다. 이를 두음법칙(頭音法則)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감정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는 喜怒哀樂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말로 '희로애락'이라고 읽습니다. '기쁠 喜, 성낼 怒, 슬플 哀, 즐거울 樂'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怒' 자는 성낼 '노'입니다. '로'가 아닙니다. 그런데 '희로애락'이라고 말할 때에는 성낼 '노' 자를 '로'라고 발음합니다. '怒' 자는 원래 음이 '노'이므로 두음법칙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喜怒哀樂을 '희노애락'이라 읽지 않고 '희로애락'이라고 읽는 현상을 속음화(俗音化)라고 합니다.

속음화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한자(漢字)의 원음(原音)이 변하여 널리 통용되는 음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喜怒哀樂의 원음은 '희노애락'임에도 이를 '희로애락'이라고 변화시키는 것이 속음화입니다. 그리고 속음화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발음하는 것을 따르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고어(古語) 가운데 아랫 사람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로 '쇤네' 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인(小人)네' 를 속음화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안에 아무 것도 보관하지 않는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을 헛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한자어 虛間(허간)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쓰기는 빌허(虛), 사이 간(間) 두 글자를 모아서 쓰되, 읽기는 '헛간'이라고 읽습니다. 이 또한 속음화의 한 예입니다.

속음화와는 조금 경우가 다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금융 관련 용어 가운데에는 나름 특이하게 사용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예금을 찾는다.

 

'찾는다'는 단어는 (1)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본다는 의미- 영어의 search, (2) 둘러본 결과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였다는 의미- 영어의 find, (3) 다른 사람(특히 윗 사람)을 방문한다는 의미- 영어의 visit 등으로 쓰입니다. '잃어 버린 물건을 찾아보다가, 결국 찾았다' 라던가, '외할머니를 찾아 뵈었다'와 같이 쓰입니다. 그런데 예금을 인출할 때에도 '예금을 찾는다'고 합니다. 예금을 찾는다고 하면, 예금이 없어져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금을 인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적금을 붓는다.
 
'붓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릇이나 용기에 물 등의 액체를 채워 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금, 보험 등의 금융 상품에 돈을 '붓는다'고 말합니다. 영어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deposit, install, pile up (쌓는다)는 용어들이며, 흔치는 않지만 pour (붓는다)라는 말을 사용하여도 알아들을 것입니다.
 
3. 카드를 긁는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에 우리는 '긁는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아마도 예전에 신용카드 위에 종이와 복사지를 얹어 놓고 롤러(roller)를 이용하여 카드 번호가 읽히도록 하는 모양을 '긁는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용카드의 정보를 읽는 카드 리더 (card reader)를 영어로도 카드 스크레이퍼 (card scrape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어 표현으로도 카드를 긁는다 (scrape)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드를 긁는 것은 아니고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뜻과는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전혀 혼란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엇인가 그럴듯한 표현을 만들어내려다가 엉뚱한 결과를 빚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년 전에 우리나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항 건물 안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리고 그 곳에 '기부 업'이라는 한글 구호와 함께 영어로 'give UP'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포스터 내용의 취지는 기부를 늘리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부(donation, 寄附)를 업(up)하자는 표현을 구호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영어로 'give up'은 포기한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포스터의 구호를 만든 사람은 '기부=give', '상승=up'이라는 단순한 단어를 나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구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사용하지나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엉뚱하게도 포기(give up)를 강조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하였던 것입니다. (관련기사:
 2010/5/9_인천공항과 함께 기부 )

사실 기부라는 단어는 영어의 give를 한자어로 寄附라고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사용하는 의미는 영어의 give 라는 의미 보다는 donation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give 뒤에 up 이라는 부사가 첨가되어 하나의 숙어로서 워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달리하게 될 때에는 섣불리 give를 寄附와 혼용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주 쓰이는 금융 용어 가운데 자칫 의미를 잘 못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있습니다. 바고 '네고'입니다. 네고라 함은 영어 negotiation을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 negotiation은 단순히 협상 또는 교섭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융에서 사용하는 negotiation은 할인(割引, discount)를 의미합니다.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선하증권(船荷證券, B/L; Bill of Lading)과 수출 어음을 수출업자의 은행에 제시하고 선결제를 받는 것을 negotiation 또는 '네고'라고 합니다. 이 때 수출업자가 은행으로부터 수령하는 금액은 어음 표면 금액에서 선이자를 제외한 금액이 됩니다. 즉, 어음 할인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음할인을 일반적으로 negotiation 이라 부르고, 무역거래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어음도 할인(negotiation)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양도성 정기예금증서의 정확한 영문 명칭은 Negotiable Certificate of Deposit (NCD)입니다. 즉, 할인이 가능한 정기 예금증서라는 의미입니다. 할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예금주, 증서 발행은행이 아닌 제 3자가 만기 금액에서 선(先)이자를 떼고 이 증서를 매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제 3자에게 양도가 가능한 예금증서입니다. 영어로 표기할 때에는 할인이 가능하다는 표현에 주목한 반면, 우리 말로 번역할 때에는 제 3자에게 양도가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로 Negotiable Order of Withdrawal (양도가능예금인출증)을 줄여서 NOW라고 하고, 이는 곧 수표(check)을 의미하며, 따라서 NOW account는 당좌 계정이라는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
금요일 모닝커피 2013. 1. 18. 참조) Negotiable 이라는 말은 할인이 가능한, 즉 제 3자에게 인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융에 사용되는 용어들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조금씩 의미를 달리하여 쓰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금융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도 잘 알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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