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모처럼 홍콩에 다녀 왔습니다. 홍콩은 중국 안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허용되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4. 11. 28. 참조)
홍콩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고가 인도가 설치된 곳이 많아서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에 차도를 건너 다니지 않고서도 이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가 인도는 대체로 지붕이 있어서 비가 오더라도 비를 맞지 않습니다. 일부 구간은 외부와 벽으로 차단되고 냉방을 하여 주기도 합니다. 홍콩의 날씨는 대체로 습하고 더운데 냉방이 되어 있는 고가 인도를 다니면 쾌적한 기분으로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좋습니다. 홍콩 시내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을 합니다.
저도 홍콩 시내에서는 주로 도보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방문하는 지역이 대체로 도심지역인 쎈트럴과 깜종 (金鐘, Admiralty), 완차이 (灣仔) 지역이어서 도보로 10분~15분 정도만 걸으면 웬만한 곳은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협 건너 카울룽(九龍) 반도 쪽으로 가는 스타 페리 (Star Ferry)선착장도 쎈트럴과 완차이 두 곳에 있어서 카울룽 쪽으로 건너 갔다가 돌아올 때에도 원하는 곳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표지판이 영어뿐 아니라 한자어로도 씌어져 있습니다. 택시를 的士, 버스를 巴士 라고 쓴다던가, 빌딩을 大厦 라고 쓰는 것은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표현입니다. 的士 나 巴士 는 발음에 맞추어서 글자를 빌어 쓴 것이고, 大厦는 의미를 살려서 쓴 것으로 보입니다.
표지판 가운데 문을 당겨 여는 곳에는 영어로는 pull이라고 쓰고 한자로는 拉(납)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밀어서 여는 곳에는 영어로는 push, 한자로는 推(추)라고 써 놓았습니다. '推' 자를 보면서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 한자 시간에 배운 '推敲'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推敲는 밀 '추' 자와 두드릴 '고'자로 이루어진 말이지만 읽기는 '퇴고'라고 읽어야 합니다.
옛 시간을 더듬어 기억해 보면 '퇴고'라는 말은;
오래 전 중국의 어느 시인이 시를 쓰다가 달 밤에 중(僧)이 외 딴 집 대문을 밀고(推) 들어간다는 표현과 두드리고(敲) 들어간다는 표현을 두고 어느 것을 쓰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며칠을 두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만 길을 가면서 고관대작이 지나가는 길 한 가운데 막아 서게 되어 붙잡혀 갔습니다. 고관대작이 어찌하여 그가 가는 길을 막느냐고 묻자 그 시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이 推 자와 敲 자 사이에 결정을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고관대작도 함께 고민을 하다가 자기 생각에는 敲 자가 더 좋겠다고 충고하였다는 고사입니다. 그 이후 글을 쓰고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일컬어 '퇴고'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매주 글을 쓰면서 퇴고라는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글을 다 쓴 다음 한번 또는 두 번 정도 읽어 보고 금요일 아침이면 바로 발송을 합니다. 발송을 하고 나서 다시 읽어 보면 아차 싶은 실수 또는 잘못된 표기,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른 표현 등이 발견되어 당황하기도 합니다.
'推敲'는 중고등하교 시절 한자 시험에 자주 나오는 단골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樂山樂水'는 '낙산낙수'가 아니라 '요산요수'라고 읽어야 합니다. '樂'자는 즐길 '락' 자이면서 동시에 좋아할 '요' 라고도 쓰입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요산요수라고 읽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한자 시험에 자주 나오던 문제입니다.
그런데 언어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곤란함도 있습니다. 제가 싱가폴에서 경험하였던 일입니다. 해산물 식당에서 제 친구가 음식을 주문하며 '소똥'을 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서 '소똥'을 시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 친구는 오히려 놀라면서 저 보고 '소똥'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소똥'이 무엇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소똥은 말레이지아 말로 오징어' 라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맨하탄 한인 타운 끄트머리에 가면 '만두 바'이라는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bar'형태의 음식점이 있습니다. 마치 일본 음식 '스시' 바를 연상하게 만드는 바 형태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음식 만두를 알게 되어 충격을 받는 사람이 예전 같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집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들은 '소똥' 못지 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만두를 영어로 'man doo' 라고 써 놓았고, 이 말은 '사람 응가' 라는 의미입니다. 어린이들이, 또는 젊은이들이 치기 어린 말로 대변을 doodoo 혹은 doodee 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이를 줄여서 그냥 doo 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man doo는 영락 없이 '사람 응가'가 되고, 우리는 그 것을 맛 있게 먹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은 다른 언어의 발음과 흡사하여 생긴 오해일 뿐입니다. 오히려 잘못된 외국어 작명(作名)이 화를 자초하기도 합니다. 여러 해 전에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도 지적한 적이 있던 '쿨 피스'는 공연히 음료 이름을 '시원한 소변'이라고 지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10. 5. 참조) 만두는 원래 우리 말인데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조금 이상하게 보인 것이자만, 쿨 피스는 영어를 쓰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연히 영어 이름을 잘못 지어 스스로 망신을 자초한 경우입니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국민기업을 영어로 번역하면 National Enterprise, People’s Company 등으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확실하게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국민기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학술적으로나 산업계에서 정해진 바 없이 그저 두리뭉실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우리들에게 가장 자주 쓰였던 때가 1990년대 말 소위 IMF 외채 위기 당시에 경제 위기 때였습니다. 그 때 경제 위기를 자초한 중심에 서 있던 기업 가운데 하나가 당시 기아자동차였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상황은 국내보다도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남미 쪽에서 기아자동차가 인수한 회사가 부실이 크다고 알려졌고, 해외 수출도 현지 재고만 많이 늘어났을 뿐 판매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기아자동차가 구제금융, 지분 매각 등의 구제책을 들고 나와도 해외 투자자들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아자동차 사태의 진행상황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먼저 기아자동차 임직원들이 가두 시위를 하며 ‘국민기업’ 기아자동차를 살리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관련기사: 1997.7.21. 기아살리기 국민협의체) 그러자 이번에는 정부와 채권단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회사 경영진을 압박하면서 구조조정을 강요하였습니다. (관련기사: 1997.8.1. 기아 채권단 회의) 그렇지만 기아자동차의 회장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고 법정관리라는 극약 처방으로 회생을 기도합니다. (1997.9.26. 기아자동차 법정관리)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기아 경영진의 퇴진뿐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릅니다. (관련기사: 1998.4.30. 김선홍 구속)
이 당시에 김선홍 회장이 줄곧 입에 담은 말이 ‘국민기업’입니다. ‘국민기업’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80년대 후반 포스코 (당시 포항제철)의 주식을 국민주라는 이름으로 공모하면서 포스코를 국민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제학이나 경영학 교과서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은 용어가 국민기업입니다. 어떤 기업이 국민기업인지 정확한 정의도 없습니다. 이런 애매모호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기업에 어울리는 그럴 듯한 별칭을 지으려면 창작에 버금가는 연구와 고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단번에 이름을 짓기 보다는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서 잘 다듬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무심코 사용하는 많은 말들 가운데에는 조금 더 정확한 의미로 정제되고 다듬어져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국민기업이라는 단어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신중한 어휘 사용이 필요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퇴고의 중요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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