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스카우트- 2018. 4. 13.

jaykim1953 2018. 4. 13. 21:16

제가 프랑스 은행 서울 지점에서 일하던 1980년대의 일입니다이미 없어진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만국내 최고층 빌딩의 고층에 자리잡고 있던 사교 클럽소셜 클럽(social club)이 있었습니다이름은 가버너스 챔버 (Governor’s Chamber)였습니다. ‘가버너라는 단어는 (식민지의총독, (미국의주지사, (가정 일을 돌보는집사책임자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가버너의 여성 명사는 가버니스 (Governess)입니다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http://www.sound-of-music.com)에서 마리아(Maria) 역할을 연기한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가 폰 트랩 가 (von Trapp )의 가정교사로 처음 그 집에 발을 디딥니다마리아의 직분을 그 영화 속에서는 governess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가버너스 챔버에서 의미하는 가버너는 가정집의 일을 돌보는 집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총독이나 주지사와 같은 고관(高官)을 뜻하며그러한 가버너의 방이라는 의미에서 가버너스 챔버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한글 이름으로 바꾼다면 아마도 이 클럽의 이름은 총독의 집무실’ 혹은 지사(知事)의 방’ 이라고 이름하였을 것입니다.

이 클럽은 이름뿐 아니라 실내 장식메뉴음식의 수준 등에서도 상당히 고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었습니다제가 이 클럽에서 식사를 하려고 지점장인 프랑스 인()과 함께 갔었습니다그 곳에서 프랑스 지점장이 세 가지에 놀랐습니다첫째는 그 곳 메뉴는 프랑스어로 씌어 있었는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지점장이 가 본 한국 안의 프랑스 식당 메뉴에는 항상 잘 못된 단어스펠링이 틀리거나 글자를 빼먹은 단어가 꼭 있었는데 그 클럽의 메뉴에서는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두 번째로는 프랑스 지점장이 먹어본 한국에서의 프랑스 음식 가운데 가장 맛이 있었다는 것입니다그의 표현을 정확히 옮기면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먹어본 음식을 포함하여도 그 클럽에서의 음식만큼 맛 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한국에서 먹어 본 프랑스 음식 가운데 최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프랑스 사람이 음식에 대하여 극찬을 하자 지배인이 주방장쉐프를 우리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습니다그러자 프랑스인 지점장이 세 번째로 놀랐습니다주방장이 한국 사람이었습니다지금도 아직 그런 곳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서울 시내 조금 좋다는 호텔의 프랑스 식당에는 거의 대부분 프랑스 사람 주방장을 쓰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클럽은 주방장이 한국 사람인데도 프랑스 주방장이 음식을 만드는 서울 시내 어떤 프랑스 식당의 음식보다도 더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주방장은 아주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어로 프랑스 지점장에게 설명을 하였습니다제가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그 주방장은 그 클럽의 소유주 회사 회장님이 추천하여 프랑스에 있는 최고의 주방장학교로 유학을 갔었습니다그 곳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1년 여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할 때에 수석 졸업을 하였습니다그러자 프랑스 안의 몇몇 레스토랑에서 그에게 스카우트의 손길을 펼쳤습니다그러나 그는 자신을 프랑스로 유학 보내준 사람들과의 의리를 생각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그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리고 그 날 자신의 음식 솜씨를 칭찬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그 주방장과 알게 된 다음 그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한 두 번 더 있었습니다제가 넌지시 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지금 서울에 프랑스 인 주방장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러자 그의 대답은 간단 명료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일류 주방장이라면 프랑스에 있겠죠 한국에 나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도 일류 레스토랑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었습니다.”

제 자랑이 조금 심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외환 트레이더로 일하던 1980년대 초반의 일이었습니다오후 늦은 시간에 일과를 마치고 그 날 있었던 거래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저를 찾는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자신을 헤드 헌터라고 소개하면서제 이야기를 마켓에서 많이 들었다고혹시 직장을 옮길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저는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저의 상황은 당시에 뱅크 오브 어메리카(Bank of America) 서울지점 소속이면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뱅크 오브 어메리카의 남가주 (Southern California) 트레이딩 쎈터에서 외환 딜러로서 일하고 있었습니다헤드 헌터에게 전화 번호를 받고 다음 날 답을 주기로 하고 전화를 일단 끊었습니다집에 와서 잠시 고민을 하였으나 두 가지 이유로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첫째는 저를 믿고 미국으로 보내준 뱅크 오브 어메리카에 대한 신의였습니다만약 제가 미국에 와서 뱅크 오브 어메리카를 떠난다면 그 이후로는 다시는 뱅크 오브 어메리카 서울지점에서는 미국으로 직원을 파견하거나근무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러니 제가 누가 될 지는 모르나 제 다음으로 미국에 올 가능성이 있는 후배 혹은 동료에게 피해를 끼칠 것만 같았습니다둘째로는 저의 비자는 뱅크 오브 어메리카가 스폰서인데 직장을 옮기면 새로운 스폰서가 새로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비자가 나올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다음 날 그 헤드 헌터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 속으로는 뿌듯함을 느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누군가 마켓에서 제 이름을 듣고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저를 스카우트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그 당시의 우리나라와 같이 작은 시장에서는 헤드 헌터가 누군가를 스카우트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때였습니다워낙 몇 안 되는 은행들뿐이었고그 나마 외환 트레이더가 활발히 거래하는 은행은 더더욱 몇 안 되었던 때입니다그런 가운데 저는 미국에서 스카우트의 손길을 경험하였고 그 제의를 거절한 적이 있음에 뿌듯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2 년 후 서울에서 프랑스계 은행에 스카우트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은행의 외환과 자본 시장 거래를 활성화 시켰습니다시장에서의 거래량과 이익 규모를 국내에 있는 외국은행 가운데 1~2위를 다투는 수준으로 키웠습니다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새로운 상품 개발해외 상품의 소개 등으로 국내 기업에게 국제 금융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제가 가장 뿌듯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소위 잘 나가는 트레이더라면 한국으로 나와서 근무할 이유가 없습니다미국의 시장에 비하면 한국의 시장은 여러 가지로 제약도 많고 시장의 크기나 전문성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 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마치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 잘 나가는 선수가 한국의 KBO 프로야구로 올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저도 미국에서 트레이더로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고시장에 이름도 알려져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었습니다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컨트리 트레져러(Country Teasurer: 주재국의 재무최고 담당자)로 스카우트 되었습니다그리고 당시에 국내 외국은행의 외국인 컨트리 트레져러들과 경쟁하여 그들보다 훨씬 더 좋은 실적을 올리고 그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았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 한 번 해 보았습니다혹시라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남다른 좋은 실적을 올려 보이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자랑할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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