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더 잘할 수 있었는데... - 2018. 5.4.

jaykim1953 2018. 5. 5. 04:14

지난 주의 금요일 모닝커피에서는 제가 부족하다는 말로 시작하였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이 번에는 제가 보여주었던 부족한 면들을 솔직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 고객 가운데 L이라는 분이 제게 언젠가, ‘당신은 닥터 노 같아’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007 시리즈 가운데 Dr. No 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Dr. No 라고 불렸습니다. 제 고객 L도 제게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면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저의 의견을 물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L이 제게 보여준 사업은 한결 같이 리스크가 크거나 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하였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의견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이 되고 리스크를 부각시키면서 손실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3~4 차례 제가 ‘no’라는 답을 줄 때에는 L도 저를 신중한 사람이라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no’라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반대로 ‘yes’라는 답을 거의 안 하게 되자 L도 조금은 짜증이 났던 것입니다. 결국 인구 2만이 조금 넘는 도시에 3천 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짓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는 것을 제가 극구 만류하자 L은 화를 벌컥 내며, ‘망해도 내가 망할 테니 당신은 빠지시오.’라며 그 프로젝트에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J는 제가 권하는 투자 프로젝트를 검토만 할 뿐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주변 데이터를 정리하여 사업성에 대한 검토와 전망을 소상히 알려 주면, J는 늘 ‘검토해 볼께요.’ 라고 답합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아마도 J의 눈에는 제가 미덥지 못하였던 모양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J가 ‘닥터 노’인 셈입니다.

 

저의 또 다른 고객 C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새로운 구조의 투자 전략을 C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저의 계획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C는 그의 부하 직원에게 저의 제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서 C의 부하직원과 함께 미팅을 주선하였습니다. 그 미팅에서 C의 부하직원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일을 추천하는 제가 싫다는 내색을 드러내 놓고 하였습니다. 저와 잠시 대화하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C의 부하직원은 제 제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내를 가지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설명하였으나 이미 관심이 없는 문제에 대하여서 부하직원은 더 이상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의 제안은 거절되었습니다. 그러고 약 1년이 조금 지난 다음 우연히 C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C는 제게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C는 제가 건네준 제안서를 그 때까지도 보관하고 있으면서 시장의 변화에 따른 제 제안의 결과를 계속 지켜 보았던 것입니다. 시장은 제가 예상한 것만큼 저의 제안에 유리하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제 제안의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좀 더 강력하게 추천을 하였어야지 그렇게 밋밋하게 제안을 하면 어떻게 하는가’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사실은 L에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들 가운데 일부는 결과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었던 것들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L이 투자를 하였더라면 꽤 큰 돈을 벌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제가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만류하여 L은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L이 막판에 투자한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는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아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였습니다.

 

J는 다른 프로젝트를 통하여 돈을 잘 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제안하였던 프로젝트도 결과적으로 J가 투자하였더라면 적지 않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도 앞 날을 예측하지 못 합니다. 다만 재무적인 리스크에 대한 저의 의견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제 의견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의 예측과 판단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내주는 것이 트레이딩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1980년대 초반 미국 LA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면서 매 순간순간 의사결정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보다는 항상 잘못한 결정이 더 많았던 것만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샌프란씨스코에서 근무하면서 저의 멘토인 닥터 타운젠드 워커 (Dr. Townsend Walker)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제게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Jay, no one can always make a right decision. What is important is you- a trader has to make money. Your job is not to forecast correct, but to make money. And people tend to remember bad things big and long. Chances are your decisions may have been half correct and half wrong. But you recall half wrongs more than half rights. Counting on baseball hitters your average must be better.’

 

(이 보게, 아무도 항상 옳은 결정만 내리지는 못하네, 중요한 것은 트레이더인 자네가 돈을 벌었느냐 하는 것이지. 자네의 주요 책무는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라네. 그리고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을 더 심각하게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지. 아마 자네가 내린 결정이 대강 반은 잘 했고 반은 잘 못한 수준일거네, 그런데도 자네는 잘못된 반을 기억하는 것이겠지. 야구 선수의 타율에 비하면 반만 맞춰도 잘하는 것 아닌가.)

 

제가 통계를 내 본적은 없지만 저의 결정이 닥터 워커의 말대로 반쯤은 잘했고 반쯤은 잘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저는 실패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금요일 오후 전세계 시장이 끝나갈 때쯤 LA 시장만 열려 있는 상황에서 뉴욕에 있는 한 은행에게서 5백만 달러 거래 요청을 받고 가격을 제시하였다가 거래를 하게 되었는데, 거래 직후 바로 시장이 반대로 움직여서 쩔쩔 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날 수 만 달러의 손실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주 발표되는 저의 성적표는 대부분의 경우 이익을 내고 있었습니다. 한 주일 거래 결과 손실을 낸 기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닥터 워커의 말대로 제 예측의 정확성보다는 제가 결과적으로 돈을 벌어서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나누어 주는 지난 주일의 성적표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붉은 숫자(손실)로 쓰인 성적표를 받아 쥔 주에는 한 주일 내내 어떻게 해서는 지난 주의 손실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저도 몇 번인가 붉은 숫자의 성적표를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저는 흑자가 적자보다는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로 적자를 여러 주 동안 지속한 트레이더는 강제로 1~2 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게 되고, 다시 거래를 시작하여서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면 강제 퇴출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LA에서 근무하는 동안 캐나다 달러를 거래하던 W라는 트레이더는 은행에서 강제로 내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퇴근 시간에 W가 자기 개인 사물을 주섬주섬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수근대기 시작하였습니다. W가 나간 후 저도 제 옆에 있는 트레이더에게 W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He is asked to leave.’ (나가라고 그랬대) 라고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프라이빗 뱅킹 업무를 할 때였습니다. 제 고객 K가 수익이 날 만한 주식을 매입해 달라하여 면밀한 검토 끝에 몇 종목을 추천하였습니다. 그러자 K는 그 가운데 한 종목을 매입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쯤 후 다행히 K가 매입한 종목은 약 10% 가까이 상승하였습니다. 저는 K가 보유한 종목을 점검하고 더 이상 상승여력이 크지 않을 것 같아 K에게 매각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자 K의 반응은 ‘자꾸 거래 수수료만 챙기려 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강력하게 매각을 추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 주일 남짓 되어서 갑자기 K가 보유한 종목의 가격이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K와 저는 상의 끝에 잠시 시장을 관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3~4일 만에 가격은 폭락하여 K의 매입 단가보다도 10% 이상 하락하였습니다.

 

시장의 움직임이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된 사람들끼리 의견이 갈렸을 때에는 참으로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공연히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였다가 만에 하나라도 잘못 되는 날에는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제가 크게 잘못하지 않은 듯한 스토리 뿐이었습니다만, 저도 대형 사고를 몇 번 저질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3. 4. 5. 참조) 누구도 완전하지 못한 만큼 실수도, 잘못도 다시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후회하면서 혼잣말을 합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