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보수적 가치관- 2018. 6. 15.

jaykim1953 2018. 6. 16. 01:54

 

 

지금부터 약 20 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미국 뉴 저지의 클로스터 (Closter, NJ)라는 작은 타운에 살 때입니다. 제 작은 아들이 초등학생이었고 봄-여름이면 동네 야구팀, 가을이면 동네 축구팀에 들어가서 운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제 아들이 동네 운동팀에 들어간 다음 자연스럽게 미국 어린이들의 동네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은 가장 먼저 어린이들이 즐겁게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본기에만 의존합니다. 기교를 필요로 하는 플레이라던가 어린이들이 구사하기 어려운 복잡한 작전은 하지 않습니다.

 

축구를 하면 코치들이 요구하는 것은 양쪽 윙(wing)들에게 패스하여 윙들이 볼을 치고 적진 깊숙히 들어가 가운데로 쎈터 (center)하면 중앙에 모여 있는 공격수들이 헤딩을 하거나 발로 차서 슈팅을 합니다. 주말이면 동네 학교들끼리 돌아가면서 홈 앤 어웨이 (home and away) 방식으로 경기를 하였습니다. 주말이면 부모들이 애들을 차에 태우고 지도를 보며 단체로 경기장을 찾아 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소위 사커 맘 (soccer mom: 주말에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데리고 다니며 모여서 정보를 주고 받는 어머니들)들도 직접 목격하였고, 간혹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빠들과도 알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아이들 가운데 좌측 윙으로 뛰면서 돌파를 잘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타일러(Tyler)였습니다. 타일러의 아버지는 주말이면 타일러를 차에 태우고 축구 경기에 데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타일러의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타일러의 아버지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클로스터에서 살았고 지금 타일러가 다니는 클로스터의 힐 사이드(Hillside)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를 아들이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지붕 방수 시행업(roof waterproofing)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그대로 물려 받아 자신이 계속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직업을 묻기에 재무 전문가이며 금융업(banking)과 국제금융(international finance)관련 업무를 한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자신의 일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펜을 거의 잡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학력이 어느 학교인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와는 주말마다 자주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타일러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국 소도시에 사는 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던 가업을 이어받아 계속 같은 장소에서 사업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를 이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자기의 아들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지방 소도시에는 이렇게 집안 대대로 같은 가업을 이어가며 한 곳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은행거래도 대대로 같은 은행을 이용하거나 혹은 동네의 작은 커뮤니티 은행 (community bank)과 거래를 합니다.

 

1980년 대에 미국 달러화의 금리가 연 20%가 넘는 고금리를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10% 초반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대출 금리는 천천히 낮추고 예금 금리는 빠르게 낮추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끔씩 은행들 간에 이자율에 격차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Bank of America는 예금 금리는 다른 은행들보다 빠르게 낮추었고 대출 금리는 가장 늦게 낮추었습니다. 언젠가 금리 조정 문제로 Bank of Americad 의 본점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 총무 (secretary general)로서 참석하였습니다. 회의에서는 예금 금리를 낮추는 것을 더욱 빠르게 하고 대출 금리는 당분간 낮추지 않도록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저는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어 제 앞에 방에서 근무하던 동료 Rodney Fetzer에게 '예금 금리를 급격히 낮추고 대출 금리를 낮추지 않으면 은행 고객이 다른 은행으로 떠나지 않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가 제게 해준 대답이 제게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Most of our banking clients have been with us very long. Maybe since their grandfather's grandfather period. They may not be prepared to shift around to a stranger."

(우리 은행 고객은 대부분 오래 된 고객들이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일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낯선 은행과 새로 거래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거야.)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미국에서의 은행 고객들이 은행에 대한 충성도는 생각보다 매우 높습니다. 한 번 은행 거래를 시작하면 웬만하여서는 거래 은행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서 약 2년 전에 있었던 조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인건비 절감의 일환으로 ATM (Auto Teller Machine- 현금지급기)의 설치를 늘리고 은행 지점을 폐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의 지점이 폐쇄 되었을 때에 은행 고객의 반응을 조사한 것입니다.

 

 

 

 

 

이 표를 보면 미국의 경우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 지점이 폐쇄되었을 때에 은행을 옮긴 사례는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는 유럽이나 영귝, 호주 등의 국가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태리, 말레이지아, 싱가폴 등의 나라에서는 20%를 넘나드는 수준의 사람들이 다른 은행으로 거래 은행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의 지점이 없어져도 거래 은행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30여 년 전에도 금리가 다른 은행보다 자신에게 불리하다 하더라도 금방 거래 은행을 바꾸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거래은행들이 집안 대대로 거래하건 은행이면 더욱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보면 은행 고객들이 보수적(保守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은행 고객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미국의 일반 소시민들은 매우 보수적입니다. 보수적이라 함은 기존의 가치관(價値觀)을 쉽사리 바꾸지 않고 이어가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방법론(方法論)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가치관은 고수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의 비즈니스 가치관을 공유하려 하고, 새로운 은행의 비즈니스 가치관을 테스트하는 리스크(risk)를 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으로 온 가족이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없었고, 자신이 살던 익숙한 동네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아마도 미국의 소도시에 사는 소시민들의 평범한 생활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도 아마 자신의 아버지가 거래하던 은행일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같은 은행을 거래할 것입니다. 미국의 소매 금융업을 알려면 이러한 사회 분위기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변(異變)- 2018. 6. 29.  (0) 2018.06.29
월드컵 2018. 6. 22.  (0) 2018.06.22
관계 (關係)- 2018. 6. 8.  (0) 2018.06.08
말레이지아 1MDB- 2018. 6. 1.  (0) 2018.06.01
구본무 회장- 2018. 5. 25.  (0) 2018.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