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7-2019

가짜 서류- 2018. 12. 14.

jaykim1953 2018. 12. 15. 12:45



최근 인터넷에는 일천억 원짜리 수표가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어차피 가져 보지 못할 금액의 돈인데 구경하면서 기분이라도 좋아지라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맨 위에 쓰여진 자기앞수표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은행에서는 자기앞수표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수표는 한국은행이 발행한 자기앞수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면 은행장 명의로 발행하지 않고 지점장 명의로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쨌든,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통화- 돈을 발행하기는 하나 수표를 발행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일반인을 상대로 은행업을 영위하지 않으므로 일반인을 위한 수표를 발행할 일이 없습니다. 한국은행은 상업은행들을 상대로 은행을 위한 은행의 역할을 합니다. 은행간의 자금 거래에는 한국은행을 이용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한국은행에 계좌를 열 수 없습니다. 한국은행에 계좌를 열 수 있는 것은 금융기관뿐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저 수표는 버젓이 한국은행이 발행한 자기앞수표입니다. 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가겠지만, 금융인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러한 거짓 수표는 그저 웃음거리로 넘길 수 있으니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표를 가지고 실제 상행위나 금융거래를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일천억은 1 다음에 영이 11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오히려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스개 목적이 아닌, 말도 안 되는, 금융 상식이 조금만 있어도 거짓이라는 것이 바로 드러나는 거짓말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실례를 살펴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저와 잘 알고 지내던 B씨가 하루는 뉴 저지에 있는 제 사무실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제게 서류 한 장을 펼쳐 보여 줬습니다. 그 서류에는 맨 윗쪽에 큰 글씨로 'Stand-by L/C' 라고 씌어 있고, 그 아래 내용은 ABC 은행이 XYZ 회사를 위하여 미화 1 천만 달러의 보증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B씨는 제게 이 서류를 믿고 XYZ 회사에 돈을 빌려 주어도 되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기가 막혀서 B씨를 쳐다보고 절대로 빌려 주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B씨에게 Stand-by L/C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Stand-by L/C는 일종의 보증서입니다. 예를 들어 ABC 은행이 XYZ 회사를 위하여 보증을 서준다면, Stand-by L/C를 발행하여 주는데 Stand-by L/C는 수익자(beneficiary)에게 발행해 줍니다. XYZ회사가 ABC은행의 보증으로 PQR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한다면, ABC은행의 Stand-by L/C PQR은행에 줍니다. 그러면 그 Stand-by L/C를 바탕으로 PQR은행은 XYZ회사에게 여신을 제공합니다. 이 거래에서 ABC은행은 PQR은행이 XYZ 회사에 제공한 여신 가운데Stand-by L/C에 명기된 금액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Stand-by L/C는 이렇듯 발행은행과 수익자 은행 사이에 주고 받게 됩니다. 차주(借主, borrower)- 이 경우 XYZ 회사는 Stand-by L/C의 실물을 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본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있던 B씨는 XYZ 회사가 가지고 있는 Stand-by L/C를 보고 그 것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B씨는 Stand-by L/C가 어떤 형식으로 발행되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XYZ회사도 Stand-by L/C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리숙해 보이는 B씨에게서 돈을 빌려 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XYZ 회사가 B씨에게 보여준 Stand-by L/C에는 ABC 은행이 어느 은행에게 보증을 서주는지도 표시 되어 있지 않습니다. Stand-by L/C를 개설하려면 보증 은행과 피보증 은행 사이에 코레스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코레스 관계란 correspondence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두 은행 사이에 서로의 신용을 인정하고 L/C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보증서가 아니라 L/C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발행 은행(issuing bank), 수익자 은행 (beneficiary bank) 사이에 주고 받는 것이 마치 수출입 L/C의 거래와 유사하여 L/C- Letter of Credit이라고 부릅니다. 수출입 거래의L/C는 발행 은행(Issuing bank)이 통지 은행 (Advisory bank)에게 L/C를 보내면 통지은행이 수출업자에게 L/C가 도착하였음을 알려줍니다.  L/C를 바탕으로 수출을 하고 선적서류와 L/C를 네고 은행 (Negotiation bank)에 제출하여 수출 대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L/C를 바탕으로 L/C를 믿고 은행간에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자금 흐름을 손쉽게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이러한 거래에서 신용 보증은 L/C 발행 은행이 부담합니다. 수입업자의 신용을 바탕으로L/C 발행 은행이 신용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Stand-by L/C도 발행 은행이 신용을 보증합니다, 그런데 그냥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Stand-by L/C 상에 기록된 거래와 금액에 한하여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증을 제공하는 상대방 금융기관도 명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Stand-by L/C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보증서만 있으면 그 보증서를 믿고 돈을 빌려 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금융은 그렇게 엉성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규칙이 있고, 시장 관행이 있습니다. 만약 기존의 관행과 규칙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에 따른 계약서와 법적인 보완이 있어야 합니다.


맨 앞에 보여 드린 수표에 관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하면서 오늘 글을 맺겠습니다.


한국은행의 자기앞수표 발행인이 한국은행장 박강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에는 은행장이 없습니다. 한국은행의 최고책임자는 한국은행 총재입니다. 지금이라도 지갑에서 아무 돈이나 한 장 꺼내 보시면 인물이 그려진 앞면 아래 쪽 가운데쯤에 한국은행 총재라고 씌어 있고 검은 색 사각 도장이 윗줄에 한국은’, 아랫줄에 행총재라고 찍혀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앞면 윗쪽에 한국은행권이라고 쓰고, 아래에는 붉은색 동그란 도장으로 총재의인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500원권 지폐, 5000 지폐 참조)


혹시라도 앞으로 금융 관련 거래에서 거짓말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으시려면 사소한 것들도 관심 있게 보아 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