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마음의 여유- 2020. 2. 21.

jaykim1953 2020. 2. 21. 00:16



며칠    미국의 라스베가스 인근에서 커피  스타벅스에 갔었습니다. 저는 우유 소화에 문제가 있어서 우유가 들어가지 않고 콩으로 만든 두유가 들어간 Soy Latte 주문하였습니다. 사이즈와 - 여부를 이야기하여야 하기에, ‘Venti hot soy latte please.’ 라고 주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창구의 여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Oh, that’s my favorite.’ (, 그건  취향인데요.) 이라고 말하며 제가 주문한 것의 선택이 자기 마음에 든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하였습니다.  말을 듣고서 저도 웃으며, ‘Does that imply you want me to buy another for you?’ ( 말은 저보고 댁의 것도 하나 사달라는 말인가요?)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No, no. But, thank you for your offer.’ (아뇨, 아뇨.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라고 웃으며 답했습니다.

커피 숍에서 일하는 젊은 여직원에게 나이  사람이 주책을 부렸다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곳의 사람들은 손님과 종업원이 스스럼 없이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며, 크게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어도 곧잘 웃어 주곤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리  우스개가 아니어도 함박 웃음을  웃어 줍니다.

제가 경험한 경우를  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   전이었습니다.  당시는 타이거 우즈 (Tiger Woods) 전성기였고 거의  경기에서 타이거 우즈는 발군의 실력으로 선두를 차지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시절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고객 회사의 경영진을 모시고 미국  디에고의  호텔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자 마자  고객  분이 오늘도 타이거 우즈가 우승하였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때만 하여도 스마트 폰이 일반화 되기 전이어서 갑자기 결과를 알아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그날 골프 경기의 결과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부 가운데 남편이 대뜸 ‘Yeah, Tiger won the title.’ (, 타이거가 우승했어요.)라고 답하였습니다. 제가  남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저는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타이거 우즈를 칭찬하면서 대뜸 제게, ‘Do you play golf, Jay?’ (당신은 골프를 치나요?)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Yes, I do. Not as good as Tiger, though.’ (, 칩니다. 타이거만큼  치지는 못하지만요.)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마디 이야기가  오가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노인과 대화가 끝난   고객이 제게 물었습니다. ‘아까  분이 박장대소를 하던데 무슨 이야기 때문에 그렇게 웃었습니까?’ 저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대강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고객분은, ‘그렇게 박장대소까지  만한 얘기는 아닌  같아 보이는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느끼기에도 그리 크게 재미 있다거나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서양 사람들은 곧잘 크게 웃으며 공감을  해줍니다. 사소한 유머에도 크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1. 10. 21. 참조) 작은 유머라도 즐기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만큼 웃어줄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고기의 부위를 120  부위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소를 주식으로 먹는 미국보다도 월등히 자세한 구분이라고 합니다.  속담에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는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육식을 우리보다 훨씬  많이 하는 미국에서는 소를 30 정도의 부위로 나누어서 요리를 해먹고, 나머지 부분들은 먹을  없는 것으로 분류해서 폐기 처분해 버린다고 합니다. 유럽의 요리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프랑스도 소의 부위를 35개로 나누어서 식육을 한다고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는  40 정도의 부위로 소고기를 분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용으로 쓰지 않는 부위는 대부분 버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큼 세세히 소고기의 부위를 구분하고 어느  곳도 버리지 않는 지역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일두백미”(一頭百味)라는 말도 합니다. ()  마리에서  가지의 맛을 경험할  있다는 뜻입니다. 하기야 소의 고기 부위를 120 가지로 구분해 놓고 있으니  부위의 맛이 다르다면 가히 (100)미가 아니라 120미에 이를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가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경 사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는 농사를 지켜주는 최고의 도우미였습니다. 그런 소를 소유한다는 것은  () 상징이었으며, 재산 축적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굉장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소를 잡으면  소는 너무도 귀한 식자재였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귀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의 그런 생활 패턴이 남아 있어서인지 우리는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소를  마리 잡아도 버리는 곳을 최소화 합니다. 어찌 보면 적당히 먹을 만한 곳을 30   정해 놓고 무테기로 베어난 다음 나머지는 버리는 미국  서양 음식 문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음식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우리보다는 미련 없이 먹지 않는 부위를 버리는 서양의 식습관이 여유가 있다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 비약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융거래에서도 이런 면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곤 합니다. 최근의 라임 자산 운용 사태에서도 엿볼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손실을  투자자는 모두 막대한 손실률에 경악하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donga.com_2020/2/17_1억이 2천만원) 그런데 냉정히 돌아보면 투자자들 대부분은 시장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원하였음을 부인할  없을 것입니다. 높은 수익률은 거저 생기지 않습니다. 높은 수익률은 높은 손실 가능성의 리스크에서 비롯됩니다. 높은 가능성의 리스크가 이번에 손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요즈음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은퇴한 노년층이라면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투자 수익으로만 수입을 충당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원금이 상당히 많다면 모를까 저금리 시대에 원금을 전혀  대지 않고 수익만으로 자신의 수입을 충당하려다가는 자칫 이번 사태와 같은 낭패를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조금씩 원금을 잠식해 가면서 가급적 오래 동안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있도록 재무 설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축적된 노후 자산으로 얼마 동안이나 사용할  있는지  설계한다면 상당한 기간을 버틸  있습니다. 예를 들어 6 ,  1.2% 이자율이면 매월  200 만원 정도의 금액을 30 동안 인출할  있습니다. 60 중반 혹은 70 다다른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아껴  생각을 한다면 부족한  하지만 아주 궁하지는 않게 용돈을   있을 것입니다. 공연히 원금을 전혀  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높은 수익을 쫓다가는 낭패를 당할  있습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욕심을 줄인다면 라임 사태라던가 또는 각종 금융 사기에 걸려 드는 일은 피할  있을 것입니다.

금융 선진국에서는 자신이 모아 놓은 은퇴 자산으로 은퇴  여생을 즐깁니다. 모아 놓은 자산이 많으면   여유 있는 생활, 그렇지 못하면 조금은 아껴 가면서 생활하면 됩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먼저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