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광주형 일자리- 2020. 5. 1.

jaykim1953 2020. 5. 1. 07:52


최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인한 뉴 노멀에 관한 관심이 고조 되고 있습니다. 저도 이에 대하여서는 칼럼을 통하여 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0. 4. 17. 참조)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우리나라 경제에 크게 영향을 끼칠 사건이 또 있습니다. 지난 4 15일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입니다. 여당이 크게 승리하여 정국의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사회가 전반적으로 좌경화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 번 선거의 결과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게 될는지 관심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이미 크게 좌경화 되어 있어 보이는 노동관련 분야입니다.  약 한 달 전 신문 사설 가운데 이런 제목이 있었습니다. "갈팡질팡 '광주형 일자리' 官주도 사업의 예고된 파행이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20/4/3_광주형 일자리) 이 사설을 보면 노조측에서 그 동안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위하여 합의하였던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조측에서는 노동이사제(勞動理事制)를 요구하여 왔으나 사측과, 광주시측에서 이의 수용을 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주에는 이보다 더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_2020/4/22_노동계는  엎고 정치권은 개입)

위의 사설과 기사를 분석해 보면 광주형 일자리에서 발을 뺀 노동계의 전략은 높은 임금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과 노동이사제라는 새로운 제도의 획득이라는 두 가지 노림 수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저임금의 광주형 일자리로 인하여 기존의 고임금이 비판 받게 될 것을 두려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이사제를 쟁취하는 지렛대로 광주형 일자리를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이사제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노동자의 대표가 참석하여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6. 5. 20. 참조) 그 동안 노조측에서는 이러한 노동이사제를 여러 분야에서 집요하게 요구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경영층에서는 기업 경영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여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정부가 들어선 이후 적극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 결과 서울시에서는 산하 출연기관과 투자기관에 노동이사제도를 이미 도입하였습니다. (관련기사: 서울시 노동이사제 도입_2017. 12. 26.) 지난 4 15일의 선거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원내 다수당이 되었으니 머지 않아 노동계가 원하는 많은 것들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조측에서 집요하게 요구하는 노동이사제의 도입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는 약자이고 선하며 지혜로운 기업의 구성원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기업의 경영 방침과 의사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복리를 향상시킨다는 것은 일견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노조도 있고, 기업이 존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도 노조는 파업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데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파업을 일삼는 노조는 기업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20. 3. 20. 참조)

고용자로서의 기업과 피고용자로서의 노조는 그 입장이 다릅니다. 힘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노동 생산성이 뒷걸음질 치는데도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여서도 안 될 것이며, 기업의 성과에서 노동자의 몫을 제대로 평가하여 보상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이사제는 조금 경우가 다릅니다. 기업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조직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경영층은 전문 경영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고 경영의 각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산과 서비스, 영업 등의 분야는 각 분야별로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역량을 발휘합니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여 성공적인 경영자가 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은 그들이 맡은 노동 분야에서 터득한 것입니다. 노동자를 결코 기업 경영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 경영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여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달 국내 일간지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택시 소유 기사들로 구성된 협동조합 형태의 택시 회사가 내부 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분쟁의 시비 끝에 회사간부의 몸에 인화성 물질을 붓고 불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chosun.com_2020/04/01_착한 택시의 배신) 이 기사 내용 가운데 이 조합의 조합원인 택시 기사의 언급에 주목할 만한 말이 있습니다. "경영진이 모두 조합 소속 택시 기사로만 이뤄졌는데, 회사 경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택시를 몰며 회사 경영을 맡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기업의 발전에 매진하는 것이 옳습니다. 노동자가 경영진이 되어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역으로 경영진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의 자리에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경영진이 전문성과 지식,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산 현장에 자리 잡고 있으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경영진에 자리 잡고 있으면 이 또한 노동자에게 부족한 경영의 전문성으로 인하여 노동자가 성공적인 경영진의 일원으로 탈바꿈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그리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이해 관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경영진과 노동자는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맡은 일을 착실히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경영진을 신뢰하지 못하여 노동이사제를 통한 경영 참여로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러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노조의 이러한 불신을 없애기 위하여서는 신뢰를 쌓기 위한 경영층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택시 협동조합인 쿱 택시도 처음 설립 때에는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경영진과 조합원 사이의 신뢰가 깨지면서 문제의 발단이 비롯된 것입니다. (관련기사:  hani.co.kr_2018/5/20_ 택시의 꿉꿉한 속사정)

-사 간의 신뢰와 관련하여 제가 경험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40 여 년 전 제가 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서 노조 간부로 봉사하던 때의 일입니다. 임금 협상에서 노조는 임금 인상률을 높게 요구하고, 사용자측에서는 낮은 인상률을 제시하여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사용자측 대표로 참석한 연세 지긋한 한국인 부장급 직원은 협상을 시작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다 감안해서 합리적인 인상률을 제시한 것입니다. 노조측에서 그렇게 무리한 요구만 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들은 제가 되받아서 물었습니다;

"좋습니다. 여러 가지를 감안 하셨다 했는데, 그 여러 가지가 무엇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저희도 함께 검토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합리적인 인상률이라면 우리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안하신 여러 가지를 말씀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그 부장급 직원은 몹시 당황하면서 더듬더듬, "물가 상승률 ...." 하고는 더 이상 말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가 상승률은 우리 쪽에서도 이미 제일 먼저 고려한 사안입니다. 지금 말씀에 여러 가지를 감안 하셨다 했는데 그 여러 가지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분은 얼굴만 벌겋게 달아 오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습니다.

그 분은 그저 생각 나는 대로 '여러 가지'를 고려 하여서 우리가 심사숙고 하였다고 이야기를 하였으나 실은 아무 것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조측을 향하여 마치 경영층은 여러 가지 두루 고려하는데 반하여 노조측은 별 생각 없이 높은 인상률을 요구한다는 식의 논조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한 것일 뿐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생각 나는 대로 이야기하여서는 신뢰를 쌓을 수 없습니다. 신뢰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대화하여서 서로 상생(相生)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노조만을 탓하기 전에 경영층에서도 노조로부터 신뢰 받을 수 있는 노사관계를 확립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영진은 경영에, 노동자는 생산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맡아서 전념하는 것이 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광주형 일자리는 애당초 발상부터 쉽지 않은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임금을 동종 업계의 1/2 수준으로 하고 복리후생 등을 시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으로 처음부터 임금 격차를 인정하여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더구나 노조가 1/2임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협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노조는 현재의 임금이 과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에 노동이사제까지 얽히고 섥혀 해결의 실마리를 쉽사리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단순히 하루 공휴일을 즐기는 것보다는 아무쪼록 노사간에 서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win-win 할 수 있는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