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ACI FMA- 2020. 4. 24.

jaykim1953 2020. 4. 24. 10:06



"도대체 환율은 누가 정하는 겁니까?"


이번 주 초에 제 고객 한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분 생각으로는 국내 은행들이 거의 같은 환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각 은행에 환율을 정하여 주고 그 다음 각 은행들이 그 환율을 기준으로 고객과의 거래에 적용할 환율을 계산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분이 생각하는 그런 기능을 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외환 시장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곳을 애써 찾자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자국의 통화 가치를 감시하고 지켜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외환 시세는 전적으로 외환 시장 거래자들 사이에 각국의 통화를 팔고 사는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자국 통화의 가치가 너무 급격하게 변동한다면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개입은 그리 흔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 질문을 한 그 분은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무언가 국제적인 기구가 있어서 환율을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 분께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외환 시장에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율의 표시는 기준 통화 (reference currency) 1 단위에 상응하는 표시 통화 (quoted currency)의 단위 숫자로 표시하고, 이를 기준 통화/표시 통화 환율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미달러화 1 달러에 상응하는 한국 원화의 환율이 1,200원 이라면 USD/KRW 1,200 이라고 표시합니다. (국제 표준 기구 ISO에 의한 통화 표기에 의하면 미국 달러화는 USD, 한국 원화는 KRW 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문이나 언론에서는 흔히 원/달러 1,200 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원래의 환율 표시 기준에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달러/원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원/달러 라는 용어가 굳어져 버렸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잘못된 시장 관행입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2. 4. 6. 참조)

그리고 이러한 규칙을 정하는 기관이 있기는 합니다. 영문 약자로 ACI 또는 ACI Financial Market Association (홈페이지: https://acifma.com) 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ACI 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Association Cambiste Internationale 을 줄인 말입니다. 영어로 옮기면 International FOREX (Foreign Exchange) Association 이며 1955년 설립되었습니다. 외환 시장의 관행과 규범을 관장하고 있으며 외환을 취급하는 전세계 금융기관이 가입한 국제기구입니다. 그리고 매년 회원들을 한 곳으로 모아 세계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금년- 2020 년에는 11 18 ~ 21일 기간에 두바이에서 ACI 세계 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ACI는 시장 규범을 회원들에게 알리고, 이의가 있으면 의견을 규합하여 개정하거나, 혹은 투표에 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장 거래에 개입하여 환율 결정에 관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환율을 결정하는 시장 기능은 ACI 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ACI는 자율적인 규정을 제정하고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전세계 각국에 FOREX Club이라는 이름의 친선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Korea Forex Club 이 있습니다. 이들의 연례 세계 대회에 가면 중앙 무대 위에 커다랗게 'once A Dealer, Always A Dealer' 라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한 번 (외환) 딜러는 영원한 (외환) 딜러' 입니다. (어떤 분은 해병대를 떠올리는 문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라고.....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그 분은 자신이 생각하였던 그런 기관은 없다 하여도 무언가 외국환 거래에 대한 규칙과 시장 관습을 다루는 기관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나름 안도하는 듯 하였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Forex Club의 회원이 될 수 있는지도 물어 봤습니다. 외환 거래를 활발히 하는 개인 또는 기관이 회비를 내고 가입하겠다고 하면 회원으로 받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외환관리법상의 갑류 외국환 은행만을 Korea Forex Club 의 정회원으로 합니다. 갑류 외국환 은행은 우리나라 외환관리법에서 해외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허가 받은 금융기관을 말합니다. 시중은행 본점들과 특수은행, 외국은행 국내지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개인이나 비은행 금융기관은 Korea Forex Club 에 옵저버 (Observer) 자격으로는 가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갑류 외국환 은행이 아니더라도 외환 거래를 활발히 하고, 외환 엑스포저를 크게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는 Forex Club 에 가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 합니다. 매년 ACI 세계 대회에 참석하여 국제 금융과 외환 시장의 흐름을 알아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갑류 외국환 은행이 아니더라도 금융 시장과 경제 전반에서 국제금융, 외환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국제금융의 흐름과 새로운 금융 상품의 흐름에서 한 발짝, 또는 반 발짝쯤 뒤쳐져 있는 것을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금융기관 가운데 한 곳인 K사는 통화 스왑, 이자율 스왑 등을 비롯한 국제 금융 거래를 여러 건 하였습니다. 그 거래들을 제가 살펴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스왑 거래를 할 때에는 소위 마스터 계약 (Master Agreement)으로 ISDA (International Swap Dealers Association)에서 만든 약정서에 서명한 다음 매 거래마다 확인서만 교환하는 것이 시장 관례입니다. 그런데 K사는 여러 은행들과 스왑 거래를 하면서 단 한 곳과도 ISDA 약정서를 맺지 않았던 것입니다. K사가 소위 의 위치에 있고, 거래 은행들이 의 위치에 있다 보니 K사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약정서에 서명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다행히 제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회사를 설득하여 ISDA 약정서를 맺도록 하였습니다.

국제 금융과 외환 거래를 하려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거래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거래를 하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국제 금융과 외환 거래의 시장 관행을 관장하는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가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 (globalization)에 발 맞출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