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경제민주화의 定義- 2020. 6. 26.

jaykim1953 2020. 6. 26. 06:31

어제 (2020. 6. 25.)는 6.25 한국 전쟁 7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이 날 아침 경제지에는 제 눈을 의심할 만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이젠 한국은행까지 민주화하라니…’ 입니다. (관련기사: hankyung.com-2020/06/24_한국은행 민주화)

저도 작금의 정치인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도입을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에 대하여서는 그리 크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거의 사회주의적인 경제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여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7. 12. 29. 참조) 그런데 이 기사를 꼼꼼히 읽어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금과옥조처럼 들고 나오는 조항이 헌법상에 명기된 경제민주화입니다. 1987년에 개정된 헌법 제 119조 2항에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조항을 자신이 헌법조항으로 삽입하였다고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처음 이 조항을 이끌어낸 당시 국회의원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는 다릅니다. 이 기사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보면:

당시 국회 헌법개정소위 위원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은 그건 (*필자 주: 지금의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말합니다.) 오독(誤讀)이라고 말한다. 헌법 해설서인 《신헌법》(박문각, 1988)을 쓰기도 한 그는 “119조2항의 경제 민주화는 정치 민주화에 맞춰 경제운영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관치를 탈피한 경제운영의 민주화란 뜻이다.

1987년 헌법 개정에 직접 참여하였던 당시의 국회의원의 표현을 빌면 경제민주화란 경제 운영을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많이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가 씌어진 이유는 일부 급진적인 인사들이 한국은행의 민주화를 들먹이며 한국은행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를 대변할 사람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근거도 바로 경제민주화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명기된 경제민주화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민주화와는 다른 내용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금 자의적인 해석을 앞세운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며 거의 사회주의적인 요구를 사방에서 분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대표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 저는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는 근본적인 사고의 기저가 다른 분들이 많이 있기에 그 분들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고 논리 정연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융통화위원회는 금융통화 정책과 경제운용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노동자 대표가 끼어들 자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의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며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를 집어 넣자고 주장하는 분들은 아마도 금융통화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 못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우리나라 금융과 통화에 관련된 정책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입니다. 노동자가 의견을 개진하고 노동자가 개입하여 의사결정에 개입할 곳은 아닙니다.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사회 모든 분야에 노동자 대표가 당연히 개입하여야 할 당위성은 인정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사회 전반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핀다고 하더라도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간다면, 학생 대표도 들어가고, 운동선수 대표도 들어가고, 각 분야마다 자기네들이 금융통화위원회에 들어가야 하는 필요성을 모두 다 들고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중구난방의 비전문가들이 모여서 우리나라의 금융과 통화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관을 구성하려는 것은 그야 말로 봉숭아 학당을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이런 요구는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 노동자 대표, 노조 대표의 참석을 요구할 것입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서는 노동자 대표의 참석이 바람직합니다. 노동자 대표가 참석하여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여야 할 곳에는 당연히 참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대표의 참석을 요구하는 논리적 기초에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공정하지 않은 분야가 금융”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금융은 공정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금융이 설사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노동자 대표가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하면 공정해 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듣기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민주화 라는 단어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아무 곳에나 가져다가 붙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1987년 개헌 당시에는 좋은 의미로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금은 벌써 그 당시의 의미와는 많이 다른 변형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에는내용이 변절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피하여야 합니다.

영어로는 현물출자(現物出資)를 investment in kind 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물출자를 통하여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특별히 이름 짓지 않습니다. 단순히 company set up with investment in kind 또는 company establishment with investment in kind라고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현물출자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물적회사(物的會社)의 변태설립(變態設立)’ 이라고 합니다. (금요일 모닝커피 2016. 12. 2. 참조) 벤쳐회사에서 영업 아이디어, 특허권 등으로 새로운 사업을 창업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전형적인 ‘변태설립’이 됩니다. 내용상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지적 소유권이라던가 영업권을 보호 받는 좋은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변태’ 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마치 하여서는 안 될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회사 설립하는 방법이 ‘변태’라고 한다면 마치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회사를 세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변태설립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십상이므로 가능하다면 조금 더 긍정적이고 듣기 좋은 말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라는 말도 자칫 사회주의적인 경제로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처음 이 용어를 만들 때에는 민간주도 경제라는 좋은 뜻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점점 변질 되어 잘 못 이해되는 경우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같은 의미로 새로운 다른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였으면 좋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민간주도경제’ 라던가 ‘경제의 민간자립’ 등과 같이 정치적인 냄새가 덜 나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한다면 더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용어를 만들 때의 의도와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드는 용어는 가급적 잘 못된 사용을 막기 위하여서라도 보다 정확한 의미로 고쳐져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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