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Melting Pot - 2021. 8. 20.

jaykim1953 2021. 8. 20. 05:38

미국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커다란 샐러드 볼 (salad bowl) 혹은 멜팅 팟 (melting pot)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샐러드 볼이란 여러 채소를 한 그릇에 넣고 섞어서 샐러드를 만들어 낸다는 말로 각 채소의 모양과 맛은 변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샐러드라는 음식을 구성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멜팅 팟은 모든 금속 (또는 재로)가 다 녹아서 하나의 새로운 금속 (또는 완성품)이 된다는 의미에서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커다란 멜팅 팟에 녹아들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샐러드 볼은 하나의 문화에 녹아들지 못하고 각 인종마다 자기의 문화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미국에도 한국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나름대로 한인 커뮤니티가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LA) 주변이나 뉴욕시 부근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코리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라스베가스 일원에도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라스베가스의 북서쪽 지역에 가면 큰 사거리 한쪽에 코리아 타운이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놓여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Korea Town, Las Vegas, NV 참조) 코리아 타운뿐 아니라 미국 곳곳에는 재팬 타운, 차이나 타운이 많이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차이나 타운 부근에 리틀 이태리 (Little Italy)라는 이태리 타운도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를 형성하는 데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였고 그 이민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룩하였다고 보면, 미국은 분명 멜팅 팟입니다. 그런데 또 각 지역에 있는 이민자들의 커뮤니티에 가보면 아직도 완전히 미국에 동화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자기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샐러드 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 나라의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곳곳에는 지역 이민자들을 위한 지역 은행- 커뮤니티 뱅크 (community bank)가 있습니다. LA의 코리아 타운에도 1980년대 초반부터 한인 커뮤니티 은행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한 때는 상당히 많은 은행들이 들어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경제 상황의 부침을 겪으면서 인수 합병 등을 거쳐 지금은 10여 개의 은행이 활발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미국 안에 있는 우리나라 커뮤니티 은행들도 상당한 수준의 금융기관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구나 초기 한국 커뮤니티 은행의 주주들은 대부분 금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세탁소, 리쿼스토어 (liquor store) 등의 사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 또는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부 건설, 무역 등의 사업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주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주명단에 금융을 전문으로 하였던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주들은 주인으로서 은행의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때로는 고객을 데리고 와서 직원들에게 소개하며 영업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 초반에 있었던 실제 사례입니다. K은행의 주주인 J 씨는 고객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대출을 알선합니다. 그런데 이 대출 고객은 시장 금리인 7~8% 보다 낮은 6%의 금리로 대출을 해달라고 조릅니다. 신용도에 따른 금리 스프레드는 고사하고 시장 금리보다도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 달라는 고객 앞에 직원들은 난감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주주인 J 씨의 얼굴을 보아 안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모여 협의를 한 끝에 방법을 도출하였습니다. K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재정증권의 수익률이 약 6% 인데 이 재정증권으로 채권시장에서 Repo를 통하여 채권을 환매조건부로 판매하면 5.7% 수준에 자금을 조성할 수 있으니 이렇게 조성된 자금으로 J 씨가 소개한 고객에게 6%의 금리로 대출을 일으킨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러한 조치는 매우 센스 있는 일처리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자금 운용은 자산-부채 관리의 ABC를 벗어난 것입니다. 처음 K은행이 미국 재정 증권을 매입한 자금은 이 은행의 자금 풀(pool) – 자본금, 예금 등으로 구성된 은행에서 사용 가능한 자금 전체 –에서 인출한 것입니다. 그동안의 자금 운용은 자금 풀에서 인출하여 미국 재정증권에 투자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금 풀의 코스트가 6.5%이고 미국 재정 증권 수익률이 6% 였다면 이 거래를 통하여 이 은행은 0.5%의 손실을 일으키면서 미국 재정 증권이라는 건실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유 미국 재정 증권으로 Repo를 하여 자금을 5.7%에 조성하면, 원칙적으로는, 6.5% 의 자금을 자금 풀로 환원시키고, 미국 재정 증권 Repo로 조성된 5.7%의 자금으로 6%의 미국 재정 증권에 투자하여 0.3%의 수익을 올리는 거래를 일으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금 풀에 반환한 6.5%의 코스트를 가진 자금은 새로운 거래에 쓰여야 합니다.

이러한 처리가 자금 운용의 원칙이고 ABC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은행에서는 미국 재정 증권 Repo로 구성된 자금을 자금 풀에 되돌려 보내지 않고 5.7%의 자금 코스트에 약간의 신용 스프레드를 얹어 주주인 J 씨가 소개한 고객에게 6%의 금리로 대출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결과 J 씨 소개로 K은행에서 대출을 일으킨 고객에게서는 5.7%의 자금 코스트를 기반으로 0.3%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인식한 반면, 미국 재정 증권에의 투자는 여전히 0.5%의 손실을 보는 거래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 커뮤니티 은행들의 자금 운용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원칙을 따르지 않고 편법과 변칙적인 운용으로 은행 전반의 자산-부채 관리를 망가뜨리기 일쑤였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형태의 편법 운용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07~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글로벌 파이낸셜 위기 (Global Financial Crisis)를 겪으면서 많은 커뮤니티 은행들이 뜻하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고, 리스크 평가에서 매우 낮은 평점을 받아 재무건전성을 개선하라는 감독 당국의 지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커뮤니티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자금 운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글로벌 파이낸셜 위기 당시에는 미국에 있는 한국 커뮤니티 은행들의 주가는 폭락하였고, 감독 당국으로부터 재무개선 명령을 받지 않은 은행이 거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런 어려움을 대체로 슬기롭게 이겨냈습니다. M&A를 통하여 몸집을 불리면서 자본의 건전성을 향상시키고, 상당한 규모의 부실자산을 상계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금융산업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 리스크 관리, 자산- 부채 관리의 원칙을 지키는 것 등이 교훈이었습니다. 이제는 미국 안에 있는 한국 커뮤니티 은행들도 규모나 내용면에서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없지 않으나 과거에 비하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과거와 같이 우리식을 주장하면서 원칙에 어긋나는 경영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미국 안에서 한국 커뮤니티 은행들이 성장하면서 전반적인 한국 커뮤니티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커다란 멜팅 팟의 구성원으로서 모자람이 없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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