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Contingency plan- 2012. 10. 26.

jaykim1953 2012. 10. 26. 08:39

오늘은 10 26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79년 오늘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해에도 10 26일은 금요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조간 신문에 대문짝만한 글자로 박정희 대통령 유고(有故)’라는 보도가 실렸었습니다.

유고라는 단어는 그 당시에 갑자기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후일 유고라는 제목의 소설도 발간 되었습니다. 그 때에 왜 하필이면 유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가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신빙성 있기로는 우리나라 헌법에서 사용된 표현- ‘대통령 유고시(有故時)…’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상황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으로 유고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설명이 제법 그럴 듯 합니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유고시에는 즉시 그 권한을 대행하여야 할 사람이 헌법에 정하여져 있습니다. 이를 영어로는 ‘Contingency Plan’ 이라고 부릅니다. 1960 4.19 혁명 때에도 혁명 일주일 만인 4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합니다. 그러자 대통령의 직을 대신 수행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유고시 대행 최우선순위는 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3.15 부정선거를 통하여 부통령에 당선되었던 이기붕은 부정선거의 핵심으로 지목되어 있어 그 상황에서 나설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서열로는 소위 외----으로 불리는 외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재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의 순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당시 외무부장관이던 허정 장관이 내각수반과 외무부장관을 겸직하며 행정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1963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 (John F. Kennedy)가 암살 당하는 순간 부통령이던 린든 비 존슨 (Lyndon B. Johnson)은 대통령과 같은 차에 동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보다 3대 뒤에 있는 자동차에 타고 대통령을 따랐다고 합니다. 미국 정부의 Contingency plan에 의하여 대통령과 부통령은 같은 자동차에 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존슨 부통령은 워싱톤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 안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사망 확인 즉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선서를 하였습니다. 대통령 직무의 공백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처럼 국가 원수의 자리가 잠시라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 자리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에도 contingency plan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수 많은 일반 대중을 고객으로 하는 금융기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경영의 공백을 막기 위하여서 최고경영자 유고시에는 즉시 직위를 대행할 사람을 미리 정하여 놓아야 합니다.

Contingency plan은 최고책임자의 유고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대한 사전 준비를 규정하여야 합니다. 일상적인 업무에서 책임자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임자가 자리를 비우는 경우 일상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누군가에게 책임자의 권한 위임(authority delegation)이 미리 지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휴가, 출장 또는 여하한 이유로 주요 의사 결정권자가 사무실을 비우게 되었을 때에는 권한에 대한 대리 집행이 위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1990년 불필요한 지방이 뭉쳐서 생긴 혹을 제거하는 수술과 건강상의 요양을 목적으로 약 2달 간의 특별 안식 휴가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무실을 비우는 동안 저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상 업무는 저와 함께 일하면서 제게 보고하던 책임자 세 사람이 공동 서명(cosign) 하는 것으로 저의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이 또한 contingency plan의 일환이었습니다.

외국 금융기관에서의 contingency plan은 마치 국가의 contingency plan과 유사합니다. 최고경영자- CEO (Chief Executive Officer)와 바로 다음 등급(one level down)의 최고 경영자는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 여하한 교통수단에도 동승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부 조직에도 적용됩니다. 제가 근무하던 30년 전에도 Bank of America 서울 지점장과 지점장 유고시 직무 대행을 하게 되어 있는, 서열 2위인 SCO (Senior Credit Officer, 지점 심사 책임자)는 같은 차량 또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였습니다.

과거에는 Bank of America의 본점이 쌘프란씨스코 (San Francisco)에 지아니니 플라자 (Gianini Plaza)라고 불리는 Bank of America Tower 건물에 있었습니다. 이 빌딩은 실제로는 50층 정도의 높이입니다. (쌘프란씨스코는 지진의 위험 때문에 예전에는 고층 빌딩의 숫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영화 타워링’ (Towering Inferno- 관련동영상: Towering Inferno_trailer)에서는 이 빌딩에 특수 그래픽 효과 처리로 100층이 훨씬 넘는 빌딩으로 보이도록 만들어 대화재 장면을 촬영하였습니다. (타워링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대연각 화재를 모티브로 고층 건물의 화재와 얽힌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영화 때문에도 한 때는 아주 잘 알려졌던 건물입니다. 이 빌딩 안에는 Bank of America 의 샘 아마코스트(Sam Armacost) 그 당시 행장(President)이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그의 사무실은 41~43층 근처였습니다. 행장집무실은 2~3 개 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터서 꾸며 놓았고 정확한 행장 집무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외부로부터의 관측과 침입에 대비한 조치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모두 contingency plan의 일부입니다.

일개 은행장에 대하여 이처럼 경호와 보안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영농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영농자금을 빌려 썼으나 농산물의 과잉 공급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영농자금 대출을 제 때에 상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전국적인 영농자금 대출의 공급원인 FCS (Farm Credit System)에서 채권을 강제 회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FCS의 대출 실행기구였던 일부 은행들이 채권자들의 자산 처분(foreclosure)을 집행하였습니다. 일부 농부들은 땅과 가옥에 대한 강제 처분으로 자신의 전재산을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들 가운데에는 트랙터 등 영농장비를 몰고 자신의 영농자금대출을 집행하였던 은행의 은행장 집으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렸습니다. 또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은행장이 출근하는 차량을 자신의 차로 들이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수차례 경험한 다음 대형 은행들은 한결 같이 최고경영자에 대한 경호와 보안을 강화하는 contingency plan을 마련하였습니다.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또 만약의 사태에 즉시 대행 체제를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은 평소의 업무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상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금융기관이 대형화, 세계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위상에 맞는 적절한 contingency plan이 마련되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