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부도 (不渡)- 2012. 10.19.

jaykim1953 2012. 10. 22. 08:21

국내 3대 생명보험회사 가운데 한 곳인 대한생명이 지난 주 화요일 109일자로 회사 이름을 한화생명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업이 이름을 바꾸게 되면 금융에서는 기술적인 부도(technical default)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실제 부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순한 기술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만기에 원리금 상환을 못한 것도 아닌데 부도(default)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해당 부채의 원금 또는 이자의 지급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부채의 주체인 채무자(기업 또는 개인)가 다른 금융기관의 부채, 또 지급 의무 등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우. (타금융기관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여 부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을 크로스 디폴트- cross default-라고 합니다.)

2.     채무자의 재무상태, 부채의 원리금 상환 등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채무자의 법적인 상태- 상호, 법인격 등-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 예를 들어, 원래 이름이 ‘ABC’였으나 이를 ‘XYZ’로 바꾸게 되면, ‘ABC’는 원래 가지고 있던 채무를 상환하지 않고 없어지게 되므로 ‘ABC’가 부도(기술적 부도: technical default)를 일으킨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XYZ’‘ABC’의 채무를 승계한다는 것을 채권자에게 통보하고 채권자가 이를 승낙하면 실질적인 부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한생명이 회사 상호를 한화생명으로 바꾸게 되면 대한생명이 부담하고 있던 각종 채무를 한화생명이 인수한다는 것을 기존의 채권자에게 알리고 채무 승계에 대한 동의(consent)를 받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프로세스는 법률전문가들의 몫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한생명이 채무를 불이행하고 청산한 것으로 간주하여 부도가 발생한 것으로 봅니다.

부도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를 정확히 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도라고 하면 단순히 채무자가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도에 대한 인식이 국제금융시장과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인식하는 부도는 계약 당사자가 약속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계약 또는 약속에 대한 이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not honored commitment)이 부도라는 것입니다. (관련 용어 정의: default 정의) 예를 들어 언제까지 돈을 갚기로 하였는데 갚지 못하였다던가, 또는 선물계약의 만기에 수도를 이행하지 않으면 모두 부도라고 인식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부도’ (不渡)라는 용어는 어음수표법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부도란 어음 또는 수표가 발행자에게 제시되었을 때에 발행자가 어음 또는 수표에 표시된 금액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어음이나 수표가 제시되지 않는 거래에서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부도가 아니라 미지급, 연체 또는 계약 불이행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부도의 발생여부는 채권자(어음이나 수표의 소지자) 아닌 금융결제원에서 결정합니다. 금융결제원에서는 만기가 되어 돌아온 어음이나 수표는 정상적으로는 당일 영업시간 종료 전까지 결제해야 한다. 이를 결제하지 못하는 것이 부도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결제원에는 부도의 처리에 대한 절차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만기가 돼 돌아온 어음이나 수표는 정상적으로는 당일 영업시간 종료 전까지 결제해야 한다. 이를 결제하지 못하는 게 부도다. 그러나 일시적인 자금부족 등을 감안해 즉시 부도로 처리하지 않고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말미를 준다. (이를 연장을 건다고 표현한다.) 이 때까지도 입금이 안되면 '1차부도'가 된다. 만일 1차부도를 내고 그 날 영업시간 종료 때까지도 자금을 결제하지 못하면 '최종부도' 처리된다. 1차 부도는 3번까지 허용한다. 4번째 1차부도를 내면 그날 영업시간 종료 때까지 자금을 결제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1차 부도와 동시에 즉시 최종부도로 처리된다. 최종부도를 낸 기업이나 개인은 금융결제원 어음교환소에서 어음 교환 거래가 정지된다. 최종부도로 금융결제원이 부도공시를 하면 은행은 부도기업의 당좌거래를 정지시키고, 상장회사일 경우 금융감독원이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제 날짜에 결제를 못하여도 연장이 가능하고 그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결제가 안 되면 ‘1차 부도가 됩니다. 그리고 1차 부도가 발생한 날 마감시간까지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최종 부도가 됩니다. 그리고 1차 부도는 세 번까지 허용됩니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의 극동건설도 1차 부도가 발생하였습니다. (관련기사: 극동건설1차부도)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1차 부도는 아직 최종적인 부도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국제금융시장의 거래는 우리나라의 금융결제원을 통하여서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쌍방간의 계약에 의존하여 거래를 하게 되고, 어느 한 쪽 계약자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를 부도라고 간주합니다. 반드시 원금이나 이자의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만 부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주의하여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리게 되면 계약서에 여러 가지 조건이 수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Covenant (약정)라고 표현하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무자(기업)가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비율, 즉 부채 ¸ 자본)을 현재 수준보다 더 이상 증가하지 못하게 한다던가, 임직원 임금 상승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등의 조건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지키지 못하여도 기술적 부도로 간주됩니다.

과거 1980년대 초에 국내 대기업 가운데 한 곳에서 외국은행으로부터 운전자금 대출을 받으며 매출채권회전율(매출액¸외상매출금)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로 약정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치 영업이 잘되고 매출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듯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매출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매출만 일으키고 매출대금을 받지 못하는 거래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를 숨기려고 마치 외상으로 매출한 것처럼 위장하여 외상매출금을 계상하였습니다. 외국은행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매출에 비하여 외상매출금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covenant 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던 이 대기업에서는 과거의 관행대로 허위로 외상매출금을 계상하는 방법으로 무리하게 매출을 일으켜 마치 영업이 잘 되는 듯이 보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산을 마친 직후 채권은행(외국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을 요구 받았으며, 그 이유는 매출채권회전율에 대한 covenant을 지키지 못하여 부도로 간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출채권회전율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더하겠습니다. 원래 매출이 400 이고 외상 매출금이 200인 회사가 가공의 매출 100을 계상하는 예를 보겠습니다;

매출액은 원래 매출 400에 가공의 매출 100이 더해져서 모두 500이 되고, 원래의 외상매출금 200에 가공의 외상매출금 100이 더해져서 외상매출금은 모두 300이 됩니다. 매출채권 회전율은 원래, 매출 400 ¸ 외상매출금 200 = 2 였으나, 가공의 매출 100과 가공의 외상매출금 100이 각각 더해져서 500 ¸ 300 = 1.67 이 됩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원래 매출채권회전율 = 400 ¸ 200 = 2

과대 계상된 매출 채권회전율 =(400 + 100) ¸ (200 + 100) = 1.67 이 됩니다.

매출채권회전율이 2에서 1.67로 낮아졌다는 것은 외상매출이 과도하게 증가하였거나 외상매출금의 회수기간을 연장하였다는 (또는 외상매출금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회사는 채권은행이 우려하였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음이나 수표의 지급을 거절하면 부도가 발생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출의 조건 (covenant)을 지키지 못하면 기술적인 부도가 발생한다는 것을 몰랐던 그 대기업은 값진 레슨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겨루는 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지나간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는 이제 한낱 추억 거리로만 남았습니다. 우리 금융도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류 금융으로 어깨를 겨루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부도를 걱정하는 기업이 없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