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표현의 차이- 2013. 3. 29.

jaykim1953 2013. 3. 29. 09:12

수년 전 저보다 1 년 선배인 금융계 종사자 한 사람이 징계를 받게 되자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재직 중에 자신의 책임하에 투자하였던 파생상품이 궁극적으로 손실을 일으킨 것에 대하여 감독기관이 책임을 물었던 것입니다. 여러 해를 끌어 오던 재판이 몇 주 전에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았습니다. 처벌 규정 자체가 제 선배가 재직 중이던 때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었고, 퇴임한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소급 처벌은 불가하다는, 결국 무죄 취지의 판결이 났습니다. 그러자 제 선배는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금융 당국은 불량식품을 만들어낸 미국 금융회사들과 미국 신용평가회사는 어쩌지도 못하면서 불량식품을 사 먹은 한국 금융회사만 정치적 목적으로 처벌했다

이 선배의 표현이 과연 적절하였는지 쉽사리 동조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투자한 파생금융상품이 정말로 불량식품에 비유될 만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불량식품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하였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이 불량식품 같은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말하려는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의도한 표현에 적확한 단어의 선택과 비유가 아쉬운 문장입니다.

사소한 표현의 차이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잘 못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하여 전달하려는 의사에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주기도 합니다.

글자 한 자의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보여주는 재미 있는 예를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첫째; 경상도 사투리로 뭐라 카드?’ 뭐라 카드?’ 는 다릅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이해하시는 분은 재미 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만, ‘뭐라 카드노?’는 영어로 ‘What did they say?’ 이고, ‘무엇이라고 말하였니?’라는 질문입니다. 그들이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몰라서 물을 때에 하는 질문입니다. 그에 반하여, ‘뭐라 카드나?’ ‘Did they say whatever?’ 이고, ‘(할 이야기가 없을 텐데) 무언가 말을 하였니?’ 라는 의미입니다. , 뭐라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터인데 웬 말이냐?’는 불평 또는 불만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뭐라 카드노?’는 말 끝을 내리고, ‘뭐라 카드나?’는 말 끝을 올려서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오늘 일요일이다오늘 일요일이다는 매우 다릅니다.

이 두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오늘이 일요일이다‘Sunday is today.’ 이고, ‘오늘은 일요일이다‘Today is Sunday.’ 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하여 의사 전달이 다르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말- 언어-입니다. 그리고 한 두 마디의 말을 더하는 것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GM 자동차 주차장 벽에 누군가가 낙서 비슷하게 써 놓은 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GM workers don’t buy a Ford. (GM 직원들은 포드 자동차는 사지 않는다.) 였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의 말미에 누군가가 장난 삼아 한 구절을 덧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But a Toyota. (그 대신 토요타 차를 산다.)

이 문장은 나름대로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GM은 포드 자동차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포드 자동차를 이기는 전략에 몰두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가 들어와서 야금야금 시장을 갉아 먹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GM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판매회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처음에 쓰여진 문장에 단 세 단어를 추가하였을 뿐이지만 문장의 의미가 크게 변질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미국 자동차 시장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조금은 경우가 다릅니다만 우리 말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에도 가급적이면 좋은 단어, 적합한 단어를 가려 썼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광고 카피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10여년 전에 유행하던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기분 좋은 선택이라는 카피, 또는 이와 매우 유사한 문구를 사용하였습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에서도 기분 좋은 선택이라는 광고 카피를 사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이 때에 기분 좋은 선택이라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번역이 있었습니다. 일부 회사에서는 ‘good choice’ 라고 하였고, 다른 회사에서는 ‘best selection’ 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회사에서는 ‘nice choice’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때에 제가 제안하였던 번역은 ‘pleasant pick’ 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제안은 채택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번역 제안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nice choice’ ‘good choice’ 또는 ‘best selection’은 느낌이 기분 좋은 선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광고 방송에서 성우들은 한결 같이 기분 좋~~은 선택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느낌을 영어로도 전달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제게는 남아 있습니다.

우리 말을 쓰면서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외국어를 사용할 때에도 가급적이면 바르고 고운 말, 그리고 상황에 어울리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느낌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말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혹여 파생상품 투자로 인하여 손실을 보았었고, 그를 빌미로 최고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었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앞으로는 파생상품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 그 때에는 파생상품에의 투자가 결과론적으로 그리 기분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잘 못 되어서 파생상품 투자에서 손실을 보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검토하여 앞으로는 똑 같은 잘 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잘 못 된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대형 금융기관과 같은 기관 투자자는 당연히 파생상품에 투자하여 리스크를 분산하고 수익률을 제고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파생상품 투자를 하는 금융기관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감독기관이) ‘뭐라 카드노?’ 라고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뭐라 카드나?’라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당당함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파생상품을 불량식품으로 비유한 것은 조금은 지나친 비유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금융 상품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과 이해로 현명한 투자가 이루어지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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