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닝커피 2011~2013

Bankhaus Herstatt- 2013. 4. 19.

jaykim1953 2013. 4. 19. 08:27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해()가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초등학교 때 반장을 하였던 해, 중학교에 입학한 해 등 여러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해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여러 기억에 남는 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1974년도 있습니다. 1974년은 제가 군대에 입대한 해입니다. 저는 1974 9 11일에 입대하여 32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7 4월말에 제대하였습니다. 학생에서 군인으로의 신분 변화는 제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커다란 변화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편안한 집에서 생활하다가 느닷없이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군인으로서의 적응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군대에 다녀 온 남자라면 느낄 수 있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1974년 이었습니다.

그런데 1974년이 제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1974년은 독일의 쾰른(Köln) ()에 있던 Bankhaus Herstatt (헤어쉬탓트 은행)가 문을 닫은 해이기도 합니다.

Bankhaus Herstatt가 도대체 어떤 은행이길래 제가 특별히 기억을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이 은행이 특별하여서가 아니라, 이 은행이 문을 닫은 경위와 그 후 은행들이 취한 조치들이 특별하였기에 제가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정작 이 은행이 문을 닫을 때에는 저는 이런 은행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으나, 후에 직장에 다니면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배우게 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Bankhaus Herstatt는 독일에서 꽤 잘 나가던 은행으로 외환 거래도 활발하게 하였습니다. 이 은행은 1974 6월에 (제가 군대에 가기 3 달 전에) 문을 닫았는데, 그 과정이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은행은 엄청난 금액의 달러를 매각하고 독일 마르크화를 매입하였습니다. 모든 거래의 결제는 특정한 하루에 일어나게 거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독일의 외환시장이 폐장하는 시각에 맞추어 은행 문을 닫는다고 선언하여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절묘하였습니다. 독일의 외환시장, 은행들은 문을 닫는 시점이었으므로 Bankhaus Herstatt가 받아야 할 독일 마르크화는 모두 결제가 이루어져 이 은행의 구좌에 입금이 된 상태이지만, 미국 뉴욕의 외환시장과 은행들은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상태였고 이 은행이 지불하여야 할 미국 달러화는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미국 뉴욕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이의 시차는 6시간입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오후 5시는 미국 뉴욕의 오전 11시입니다.)

Bankhaus Herstatt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방적으로 미국 달러화를 팔기만 하고 독일 마르크화는 사기만 하는 거래를 하면서, 독일 마르크화를 수령한 직후에 파산 선고를 해버릴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에 거래 상대방들이 기록한 손실- , 받지 못한 금액은 약 6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다행히 어느 한 은행에 집중된 것이 아니고 여러 은행에 분산되어 있어 그로 인한 충격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어서 추가로 파산하는 은행이 생기지는 않았다고 하나, 당시의 화폐 가치로 6억 달러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Bankhaus Herstatt의 파산 이후에 생긴 용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는 합니다. Herstatt 리스크, MDDR (Maximum Daily Delivery Risk), FX Settlement Risk, Delivery Risk 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내용은 모두 동일합니다. 외환 거래를 할 때에 결제되는 장소- 국가가 달라서 발생하는 실제 결제 시점의 차이로 인한 리스크를 말합니다. 흔히들 Settlement Risk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일본 옌화를 매각하고 미국 달러화를 매입한다고 하면, 일본 옌화의 결제가 확정되는 일본의 오후 5시에는 미국 달러화 결제가 이루어지는 뉴욕 시간으로 새벽 4시 혹은 새벽 3시 입니다. (일광절약시간- daylight saving time- 적용 여부에 따라 한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달러화 결제가 확인 되는 뉴욕의 오후 5시는 일본 시간으로 다음 날 아침 6시 혹은 7시입니다. 따라서 13시간 또는 14시간 동안 달러화 결제를 확인하기까지의 시간 공백이 발생합니다. 이 시간 동안 발생하는 리스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30여년 전 제가 처음 외환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에 싱가포르에서 온 강사 조세프 추아 (Joseph Chua)라는 친구는 “settlement risk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각 지역 사이에 시차가 발생하고, 시차로 인하여 지역별로 은행들의 문 닫는 시간이 달라지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지역 사이에서 결제가 일어나는 외환 거래에 있어서는 이러한 결제 시점의 차이로 인한 리스크도 감안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제 리스크로 인하여 외환 거래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여신 한도를 통제하게 됩니다. 먼저, 총계약 금액에 대한 한도인 Contract Risk (계약 금액 리스크)입니다. 이 리스크는 거래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할 (to honor the commitment) 것으로 추정되는 최대 금액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Herstatt 리스크- Settlement Risk입니다. 이는 어느 특정한 날에 결제되는 최대 금액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게 주어진 신용 리스크 한도가 A 은행과는 Contract Risk $ 5천만, Settlement Risk $ 1천만이라고 한다면, 제게 허용된 내용은 A은행과는 총 $ 5천만까지 외환 거래 계약을 할 수 있으나, 어느 한 날짜에 결제가 이루어지는 금액이 $ 1천만을 초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제가 A은행과 $ 2천만의 외환 거래계약을 한다면, 적어도 두 개의 다른 날짜에 수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 날짜에 $ 2천만이 모두 결제가 되도록 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Bankhaus Herstatt 의 파산은 외환 시장에뿐 아니라 전체 은행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큽니다. Settlement Risk 라는 개념이 발전하여 외환거래뿐 아니라 모든 은행간 거래를 되짚어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 예를 한 가지 더 들겠습니다.

BCCI (Bank of Credit & Commerce International)라는 은행이 있었습니다. 아랍계 자본으로 세워진 은행이고 본점이 룩셈부르크에 설립되어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은행업을 영위하는 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이 범죄 집단의 자금세탁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또 부실 경영으로 인한 손실이 누적되어 가고 있으나 이를 교묘한 방법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어 결국에는 1991년 문을 닫게 됩니다. 이 은행이 문 닫기 수년 전부터 은행들- 특히 미국계 은행들은 이 은행과의 거래를 몹시 꺼렸습니다. 신용한도도 최소한으로 축소하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단기- 특히 1 (overnight) 자금을 빌리는 것도 금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돈을 빌려주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신용의 문제라고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 조차 금지하였던 것입니다.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미국 달러화를 오버나이트 거래 조건으로 빌렸는데, 다음 날 뉴욕 구좌에 돈이 안 들어 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혹시 뉴욕에 있는 은행의 실수로 입금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BCCI가 의도적으로 돈을 안 보낸 것인지 확인하려면 뉴욕의 은행이 문을 열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한국 시간으로 밤 10 혹은 11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 전에 하루짜리 자금 빌린 것을 되갚아야 하는 지급 요청을 뉴욕에 있는 은행에 보내야 하는데, 이는 입금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금 요청을 하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BCCI가 의도적으로 입금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빌린 돈이 입금도 되지 않았는데 출금하여 갚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BCCI에서는 단기 자금을 빌리지도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 또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로 인한 결제 리스크입니다. 결제 리스크는 주로 외환 거래에서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기 자금 거래에서도 외환 거래 못지 않게 결제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1974년에 문을 닫은 Bankhaus Herstatt은 전세계의 은행들에게 결제 리스크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준 아주 좋은(?) 반면교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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